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갑진년에도 58년 개띠 노동자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거꾸로 돌아가는 듯하던 세상이
다시 뒤집어지는 반전이 계묘년 끄트머리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갑진년 봄에 결실을 맺는 위대한 반전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의 주인공 신돌석씨는 올해도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새아침이 오는 것을 거부하며 거부권을 남발하는 이들을
거부하는 이들의 힘찬 아우성과 몸부림으로
우리 현대사에 매우 중요한 갑진년 한 해는
그야말로 값진년이 되리라 믿습니다.
갑진년에는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댁내 평안하시고
무엇보다 우리 공동체 모두가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2024. 1.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노조법 2, 3조 개정안과 함께 거부권이 행사된 것이 방송3법이다. 이 법은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묶어 통칭하는 이름이다.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신돌석씨도 관심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다. 윤석열 정권이 언론 장악, 그 중에서도 특히 방송 장악을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방송3법과 어떤 관계이고, 왜 거부권까지 행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땡전 뉴스라는 말이 있었다. 9시 뉴스가 시작되면서 땡하고 울리면 바로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앵커의 멘트가 시작되는 것을 비꼬는 데서 나온 말이었다. 1987년에 6월항쟁이 일어나고 이듬해에 방송사마다 노조가 생기면서 그런 행태는 많이 시정되었다. 그 과정에서 언론사 노조들, 특히 방송사 노조들의 눈물겨운 투쟁들이 있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수신료거부운동 등으로 언론 민주화 투쟁에 동참했다.

1980년대 후반 이후로 노동운동에서도 언론민주화투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언론 종사자들이 노동자이기도 하고, 노조가 결성되고 활동하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노동운동에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절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일단 직선제는 관철되고 민주화 열기는 있었지만 엄연히 군사독재정권의 2인자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을 하고 있는 시절이었다.

신돌석씨는 공영방송 노조들의 파업을 지지 지원하기 위해 지역 이곳저곳에 유인물을 살포하던 기억이 났다. 그때 많은 유인물을 뿌렸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국민의 나팔수가 될 것인가, 독재정권의 앵무새가 될 것인가’라는 제목의 유인물이었다. 어떤 언론인의 인터뷰도 실었다. 자기가 언론인 생활 20년을 하면서 지금처럼 자부심을 가졌던 적이 없다고 하였다. 1987년 시위대에게 항의를 들으며 시위대열에서 쫓겨날 때 정말 참담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른바 문민정부라고 하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방송노조들과 방송사 혹은 정권의 관계는 상당히 달라졌다. 탄압도 있었고, 교묘한 언론 통제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방송을 비롯한 언론이 군사독재정권 시절처럼 막무가내로 장악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이 사회 다른 분야들도 모두 그렇듯이 제도적으로 매우 허술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정권이 바뀐다든지 하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 허점을 이용해서 방송을 장악한 것이 이명박 정권이었다. 당시 KBS 사장을 말도 안 되는 ‘배임’이라는 구실로 쫓아냈다. 사장은 법원의 판결에 따랐을 뿐인데 그것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이미 사장은 바뀐 뒤였다. 그 후로 공영방송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이 쫓겨나고, 이사회가 다시 구성되는 등의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악순환은 근절되어야만 하였다.

신돌석씨는 방송3법에 대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법률개정 국민동의청원’을 하면서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이 청원은 시민 5만 명이 직접 본인 인증을 통해 진행한 것으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상정됐다. 해당 법안이 특정 정당이나 국회의원 발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파를 초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약 1년 만에 법안은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사실 민주당이 집권 시절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 법 통과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은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국힘이나 지지자들은 니네가 정권 잡았을 때는 모르쇠하다가 이제야 그러냐고 한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고 그런 점에서 민주당은 대오각성해야 한다. 하지만 국힘이 거부권의 명분으로 내세우듯 민주당 편향의 이사회가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정치권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는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이다.

방송3법 개정안의 핵심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방송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공영방송의 지배 구조를 바꾸는 것인데, 이사회를 대폭 늘리고, 사장도 시민이 추천하자는 것이다. 그 동안 법적 근거 없이 여야가 장악해온 KBS·EBS·MBC(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추천권을 방송·미디어 학회, 시청자위원회, 언론 현업인 단체 등에 부여하고, 사장 선출 시 성별·연령·지역 등을 고려한 100인의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사추위)를 구성하는 내용이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그 동안 공영방송 이사진은 여야가 KBS 7대4, 방문진이 6대3 비율로 추천해왔기에 집권 세력이 바뀌면 이사진 해임과 사장 교체가 강행되는 문제가 반복돼왔다. 현행법상 KBS 이사는 방통위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 방문진·EBS 이사는 방통위원장이 임명한다고 규정할 뿐 어디에도 여야 개입 근거가 없다. 그러다 보니 방통위가 방송장악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곳이 되었다. 그래서 방통위는 합의제로 운영되는 것이 원칙인데 윤석열 정권이 그것을 깨버렸다.

정권의 방송장악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최근 KBS를 보면 알 수 있다. 사장이 바뀌자마자 갑자기 프로가 없어지고, 진행자가 인사도 못하고 그만두었다. 특히 9시 뉴스라면 핵심 프로인데 그 진행자인 앵커가 시청자들한테 그만둔다는 말도 못하였다. 이런 횡포가 없다. 그 뒤로 KBS는 완전히 5공 시절 같은 뉴스를 내보낸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북한의 포 사격 등을 10여 분 내보낸 뒤에야 보도한다. 그것도 거의 대통령실과 여당 입장이다.

방송장악을 위해 먼저 방통위를 장악했다. 취임하자마자 윤석열은 이동관을 방통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이명박 때 방송장악을 진두지휘했던 사람이다. 윤석열 정권은 극우적인 행태를 보일 사람으로는 이명박 정권 때의 인물들을 기용했다. 이 사람이 종편 만드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방송사 노조 파괴에도 주로 그의 공작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이동관이 탄핵 위기에 몰리자 재빨리 사표를 쓰게 하더니 이어서 검사 선배를 임명했다. 그는 이명박의 BBK에 대한 수사 때 혐의가 없다고 발표한 사람이다. 윤석열의 직계 선배 특수통이라고 한다. 방송에 대해서는 전혀 경험이 없음은 물론이다. 검사가 정부 여기저기 말도 안 되는 자리에 임명되더니 드디어는 방통위라는 자리까지 차지하였다. 그야말로 검찰독재이고, 그것으로 방송장악을 하여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의도이다.

사실 종편 문제를 비롯한 언론 문제에서 전임 문재인 정권에 책임이 크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지금의 방송3법을 정권을 잡았을 때 처리했으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데 그때는 머뭇거렸다. 그 의도는 뻔한 것이다. 정권을 잡아서 방송을 길들일 수 있는데 그것을 시민의 손에 넘겨주기 싫었으리라. 그러다가 정권을 빼앗기고 난 뒤 윤석열 정권이 예상을 뛰어넘는 폭압으로 방송을 장악하자 부랴부랴 시민들의 청원에 의한 법을 발의한 것이다.

수구적인 종편도 문재인 정권 때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재승인 심사에서 탈락시킬 점수가 나왔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고 봐주다가 결국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수구종편들은 이전과는 달리 기사회생했다. 특히 윤석열 정권 들어서는 알게 모르게 지원을 받으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신돌석씨는 식당 등에서 수구 종편 방송을 보면 정말 속이 터졌다. 시각은 둘째치고 사실 자체도 왜곡해서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 번에 걸쳐 모두 여섯 가지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2023년은 저물었다. 연말에 통과된 이른바 쌍특검법이 어떻게 될지가 관심사였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거부권을 또 행사할 것이라고 봤지만, 이전과는 다른 것이 자기 마누라가 관련된 것이니까 그렇게 노골적으로 하랴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국회에서 통과되자마자 거부권 의사를 비치더니 이송되자마자 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권을 행사하는 이유가 선거용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가 웃을 소리다. 일찌감치 발의된 김건희 특검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고 그 기간이 지나게 만든 것은 바로 국힘당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선거용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전 정권에서 충분히 수사했다는데 그때 검찰이 누구의 지휘하에 있었냐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김건희를 소환조차 하지 못했고 윤석열 정권에서 흔하게 된 압수수색 한번 없었다.

그리고 김건희 계좌가 주가조작에 쓰였고, 주식에 대한 통정매매를 했으며, 김건희 모녀가 얻은 수익이 무려 23억원이라고 한다. 이것은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 기록된 것이다. 한동훈은 이것이 전 정권 검찰이 작성한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을 확인해 보니 바로 자신이 법무부 장관이던 시절의 검찰이 만든 것이었다. 참으로 웃기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 70% 이상이 특검에 대해 찬성하는 것이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쌍특검법의 하나인 대장동 50억클럽특검은 개발사업으로 특혜를 받은 전직 판검사들에 대해 특검을 통해 밝혀내는 것이다. 곽상도의 아들이 50억 원을 퇴직금으로 받은 것 때문에 꼬리가 드러난 이들의 커넥션이야말로 윤석열이 즐겨 사용하는 부패 카르텔이다. 이런 자들끼리 서로 주고 받으면서 온갖 비리를 저질러 온 것이다. 그것을 낱낱이 드러내어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것이 민초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이다.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1월 5일에 재의결요구라고 하는 거부권을 의결하는 임시국무회의가 열리고, 윤석열이 곧바로 결재를 함으로써 2024년 새해도 거부권으로 시작되었다. 1월 4일에 진보적인 교회에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이 모여서 ‘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을 결성하고 기자회견도 하였다. 신돌석씨도 지역 사람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그때는 1월 13일에 규탄대회를 하자고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급하게 되었다.

거부권을 행사한 다음 날인 1월 6일에 바로 긴급행동이 열렸다.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던 재야원로들과 민주투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전국비상시국회의, 민중진영을 대표하는 전국민중행동, 시민운동의 연대체인 시민단체연대회의가 모처럼 거부권 비상행동을 함께 결성하여 첫 집회를 열었다. 갑자기 열린 집회였고 날씨도 추워서 많은 사람이 모이지는 못했지만, 이후 거부권을 거부하는 투쟁의 봉화가 오른 셈이었다.

이 날 주요 연대조직과 특검법 발의한 4개 원내 정당이 발언에 나섰다. 신돌석씨는 특히 시민사회단체 한 사람의 연설이 마음에 들었다. 작년의 거부권이 농민, 간호사, 노동자를 적으로 돌리고, 방송장악을 통해 독재를 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면, 그 민낯이 드러난 것이 이번 거부권 행사라고 하였다. 탐욕스러운 자기 마누라, 함께 부패의 사슬이 되었던 정치판검사 선후배들을 봐주자는 것이다.

발언하는 사람은 이런 것을 우리가 두고만 본다면 개 돼지와 다를 바 무엇이냐고 하였다. 그러면서 박근혜를 누가 탄핵시켰습니까 하고 청중에게 물었다. 국회가 한 것이냐? 헌법재판소가 한 것이냐? 아니다. 바로 촛불 든 시민들이 한 것이다. 시민들의 압박이 국회에서 여당을 분열시키고 2/3 찬성이라는 표로 탄핵을 가결시켰고, 보수적인 재판관이 많은 헌법재판관들이 전원 일치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저들의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압박을 넣어서 국회에서 재의결하도록 하자고 한다. 재의결이 되려면 2/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작년에 있었던 여섯 개 법안은 모두 그 문턱을 넘지 못해서 결국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양상이 다르다. 국힘당에서 공천 탈락하는 자들이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 그것 때문인지 민주당은 일단 재의결 표결에 들어가지 않고, 이해충돌이라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한 상태이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 통과를 3일 앞두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감히 거부권을 행사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자고 하였다. 자기 마누라를 보호하기 위해 특검법을 거부한 자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리가 없다. 지금까지 이태원 참사를 대해 온 태도만 보아도 그렇다. 집회가 끝나고 행진이 시작되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집회 참여 인원이 적어도 행진으로 바뀌면 대열이 길다는 느낌을 주었다. 인도의 시민들의 반응은 좋았다.

여론 조사 결과가 그렇듯 이태원 참사 특별법도 통과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거부권을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도 하고, 압박도 하고 있지만 결국 국힘당의 건의하고 윤석열이 행사할 태세이다. 그러면서 새로 협상하자고 한다. 과연 이들이 인간인지 신돌석씨는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든 면피나 해보려고 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행태는 10년 전 세월호 참사 때보다 이 사회가 더욱 후퇴한 듯한 느낌을 준다.

 

편집자 착오로 연재가 하루 늦게 게재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 편집자 주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