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간토대학살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국회 토론회가 지난 1월 25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됐다. [사진 - 장영식 작가]
1923년 간토대학살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국회 토론회가 지난 1월 25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됐다. [사진 - 장영식 작가]

1923년 간토대학살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국회 토론회가 지난 1월 25일 개최됐다.

토론회는 재단법인 씨알과 시민모임 독립, 한국YMCA전국연맹, 국회의원 유기홍·강민정·양정숙·용혜인 의원실 공동 주최로 “간토학살,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의 의의와 방법”을 주제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렸다.

간토학살 100주기를 맞아 지난해 3월 여야 국회의원 100명이 공동발의한 ‘간토대학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세계시민운동 차원으로 ‘간토학살’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에 권고적 의견을 요청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로, 오수성 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대표가 좌장을 맡았다.

토론에 앞서 최초로 관련법을 발의한 민주당 유기홍 의원이 인사말을 했다. [사진 - 장영식 작가]
토론에 앞서 최초로 관련법을 발의한 민주당 유기홍 의원이 인사말을 했다. [사진 - 장영식 작가]

토론에 앞서 최초로 관련법을 발의한 민주당 유기홍 의원은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이뤄져서 100년 전 발생한 일본의 잔혹한 제노사이드 범죄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주최자들과 참석자들을 격려하고 각오를 다졌다.

토론회는 1, 2주제로 나눠 1주제는 '간토대학살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적 의견 조치의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최지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제했고,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최 교수와 이 교수는 1923년 9월 1일에 발생한 간토대지진이 일본 정부의 조작된 유언비어로 인해 조선인 학살로 번지는 과정에서 무고한 재일조선인 6,661명이 끔찍하게 학살당한 사실을 지적하며, 간토대학살을 어떻게 국제법적 사안으로 만들 것인가를 발제, 토론했다.

1948년, 제노사이드 협약에 명문화된 제노사이드 구성 요건인 ‘특정 집단을 파괴하려는 의도’와 ‘집단 구성원의 살해, 중대한 신체적 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간토대학살은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대학살)로 규정되며, 제노사이드 범죄는 1968년 총회 결의 이후 공소 시효가 없다는 점에 기초하여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이장희 교수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유권적 해석을 구하는 권고적 의견 요청을 유력한 방법으로 제시했다. [사진 - 장영식 작가]
이장희 교수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유권적 해석을 구하는 권고적 의견 요청을 유력한 방법으로 제시했다. [사진 - 장영식 작가]

최지현 교수와 이장희 교수는 한국과 일본을 동등히 세우는 국제사법재판소의 재판에 응할 가능성은 가해국 일본이 불응할 것이 명확, 현실성이 없기에 국제사법재판소에 유권적 해석을 구하는 권고적 의견을 요청하는 방법이 유력할 것이라 말했다.

이는 한일 간에 재판 관할권 문제에 구애받지 않고 유엔 총회 또는 안보리, 유엔 전문기구 등이 한국이 요청한 간토대지진 조선인 집단 학살의 법적 성격 사안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에 법적 의견(유권적 해석 입장)을 구하고 검토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앞서 말한대로 집단살해죄는 1968년 유엔 총회 결의 이후 강행규범으로 판단되어 공소시효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에 근거, 국제여론을 일으켜 일본 정부를 압박하며,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유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도록 한국 국회를 압박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원호 씨알재단 이사장이 제2 토론 주제 발표에 나섰다. [사진 - 장영식 작가]
김원호 씨알재단 이사장이 제2 토론 주제 발표에 나섰다. [사진 - 장영식 작가]

제2 토론 주제인 '간토대학살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적 의견이 갖는 의의와 캠페인 방법론 -세계시민운동으로의 발전 가능성' 발제에 나선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은 “간토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지난해 9월 3일, 도쿄 아라카와 강 둔치에서 6,661명 희생자의 넋을 달래는 추도제를 지내고 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김 이사장은 간토대학살이 명백한 제노사이드라면 인류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아야 하고, 그렇다면 또 다른 학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그 방지책을 마련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을 예로 들어, 러시아가 키이우에서 남쪽으로 후퇴하면서 우크라이나 민간인 1만 명 이상을 죽이고 사망자 가운데는 499명의 어린이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간토대학살과 다를 바 없는 폭력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이사장은 간토대학살 문제를 유엔인권이사회나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는 캠페인을 시작하고 그 방법으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을 비롯한 SNS와 영어로 된 전용 홈페이지를 마련, 세계 시민들로부터 청원서를 받도록 하겠다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했다.

또한 정기적인 학술세미나 및 국제 영화제에 출품할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한일예술단체의 합동 공연, 간토대학살에 대한 뮤지컬 등을 제작, 국제무대에 올려 문화예술적 측면으로도 세계인의 관심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일본 정부가 간토대학살에 관한 책임을 인정하여 한일 관계가 바로 서고, 나아가 인류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이 지구촌에 견고히 뿌리내리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씨알재단은 일본 정부에 사과와 사죄를 강요하는 소의를 내세우려는 게 아니다. 일본 정부에게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를 호소하되, 이 일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진정한 세계 평화의 원동력이자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발제를 마쳤다.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 - 장영식 작가]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 - 장영식 작가]

이어 토론에 나선 『1923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의 저자 민병래 작가는 간토조선인대학살의 뿌리였던 인종주의, 차별과 배제는 여전히 일본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면서 그렇기에 간토대학살은 현재도 진행 중이라고 진단하며,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기 위해 한국, 일본, 중국 시민사회가 연대하여 한중일 시민법정을 꾸릴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민법정을 통해 국민소송단과 모금활동을 펼쳐나가며 한중일 관련 연구자, 한중일의 추도사업실행위원회 등을 결성, 각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며 활동할 때 씨알재단이 제안한 세계시민운동을 더불어 견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정숙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번 토론회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매우 뜻깊다.”며, “간토대학살 참상의 정확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당위성과 필요성을 다짐하며,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으로서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를 설치하는 특별법안’이 통과되도록 여러 의원들과 국회 차원의 노력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토론회의 의의를 평가했다.

 

신아연 작가 shinayoun@daum.net

소설가 겸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강치의 바다’, ‘사임당의 비밀편지’ 등 저서 11권.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