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께서는 소화기와 화재 대비 물품을 준비하시고 온열기구 등 사용에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최근 연이은 한파에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화재가 많아지면서 관리사무소 ‘안내방송’이 잦다. 연말에는 추위로 인한 동파 대비와 “제발 고층에서 빨래 좀 하지 말라”는 안내를 속보처럼 내보냈었다.

외출했다가 들어오는 길 복도에 비치된 소화기 위치를 확인하고 관심 1도 없었던 소화전을 열어본다. 저 소방호스는 어찌 사용해야 하는지 외려 고층 입주민의 막막함이 몰려온다. 내친김에 아래층 계단 중간 옥상으로 향하는 비상문도 열어본다. 지붕형 옥상이라 재난 시 피난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재난훈련과 재난가방은 지진, 쓰나미 등 자연재해 연관어인 줄 알았는데 언제, 어디서 재난과 사고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현실이다. 재난이 일상인 시절을 산다.

불의 고리

집에 들어와 TV를 켜니, 새해 첫날 가슴을 출렁이게 했던 일본 노토반도에 9일 만에 또다시 규모 6.0의 강진이 발생했다. 1월 1일 일본 노토반도를 강타한 규모 7.6의 지진 이후 천여 차례 이상 지속된 여진의 하나라고 하기엔 규모가 너무 크다.

1885년 이후 이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 중 가장 강한 지진으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13년 만에 큰 쓰나미가 발생해 한반도 동쪽 바다까지 출렁였다. 31년 만에 동해 묵호에 85㎝, 부산에는 20㎝의 쓰나미가 관측됐고 경북 문경 지역 지하수 수위가 1m 넘게 출렁였다고 한다.

자연재해 앞에 인간이 그어놓은 국가라는 경계가 점점 더 무색해져 간다. 노토반도 지진 보도 화면에 ‘우리나라에는 영향 없음’이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지구는 한 덩어리 아닌가?

자연재해 이후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았던 ‘황궁아파트’ 입주민과 아파트에 들어가려는 외부인들 간의 생존을 건 폭력을 그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오버랩된다. 
재난영화는 더 이상 스크린 안에만 존재하지 않음을 문득 깨닫는다.

일본 지진조사위원회는 일본 동쪽에 위치한 ‘난카이 해안협곡’ 대지진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며 최악의 경우 사망자만 32만 명에 달할 것으로 가정하는 보도를 내놓는다. <매일경제> 1월 7일자 보도에 따르면 최대 34m에 달하는 쓰나미가 몰려와 소실되는 건물이 240만 채, 이재민은 95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경제적 피해액은 일본 국가 예산의 2배가 넘는 220조 3000억 엔(약 2,011조 원)으로 추산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피해액의 11배가 넘는다.

크게는 한반도가 포함된 유라시아판과 미국이 포함된 북미판이 서로 밀고 있는 형국이고, 호주판과 필리핀해, 태평양판까지 4개의 판이 복작이며 몰려있는 일본에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전까지 최대 54기까지 핵발전소가 건설된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재해나 전쟁이 터질 때마다 핵발전소의 안전부터 걱정하게끔 설계된 이 모순은 대체 무엇일까?

활성단층 위 핵발전소

진원지에서 불과 60km 떨어진 시카핵발전소에서는 진도 5강을 감지했다고 알려졌다.
지난 1월 11일 일본 <NHK> 보도에 따르면 시카핵발전소는 생각보다 더 흔들렸던 것으로 보인다. 지진 발생 시 지각의 흔들림을 나타내는 단위가 ‘갈’인데 1호기의 경우 918갈(Gal·최대 지반 가속도)로 예상했으나, 검증 결과 이번 지진으로 받은 흔들림은 957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예상을 넘는 흔들림에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정지상태인 시카핵발전소 1·2호기도 타격을 입었다.

이번 지진으로 시카핵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수조의 물이 넘치고 변압기 배관이 망가져 기름 1만9800ℓ가 새어나가 인근 해역이 오염됐다. 변압기 배관 고장으로 방사능 계측기가 망가져 15~30km의 방사선량 측정 또한 불가능한 상태이다.

운영사인 호쿠리쿠 전력은 예비전력인 비상용디젤발전기 5대로 사용후핵연료 수조 등 주요시설의 전기공급은 이상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여진의 가능성을 고려해 빠른 복구와 원인규명을 촉구했다.
핵발전소는 멈춰도 사용후핵연료 열을 식히기 위해 수조에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 전기공장을 돌리기 위해 끊임없이 전기가 필요한 셈이다.

노토지진은 120km 떨어진 가시와자키가리와 핵발전소에서도 진도4~5강의 지진이 감지됐고 사용후핵연료 수조에서도 767.46L의 물이 넘쳤다. 총 7기의 핵발전소가 정지상태인 것은 그나마 천운이었다.

14기의 핵발전소가 몰려있는 일본 최대 핵발전소 밀집 지역인 후쿠이현에서도 진도4의 지진이 감지됐다. 운영사인 간사이전력이 가동 중인 오오이 3·4호기와 다카하마 1·2·3호기 모두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다카하마 1호기는 올해로 가동 50년이 되었고 2·3호기도 40년을 훌쩍 넘은 노후핵발전소로 가장 위험한 핵발전소이다. 게다가 2기가 재가동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노토지진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대체로의 관측이다.
<마이니치신문>은 “노토반도 북부에서는 2020년 12월께부터 지난해 말까지 3년간 특정 지역에서 나타나는 지진의 진동 크기나 피해 정도를 나타내는 진도1 이상 지진이 506회 발생했다”라고 보도했다.

계속된 여진으로 땅이 물러지는 액상화 현상도 걱정이다.
진원지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는 약 10개의 활성단층이 있으며 그것들이 한꺼번에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
활성단층 위, 핵발전소는 일본에만 있을까?

월성 6기·고리 10기 활성단층 위에 지어져

지난해 1월 행정안전부는 2017년부터 5년 동안 조사한 동남권 단층 조사 결과 고리, 월성 인근지역에 16개의 활성단층 분절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 이중 규모 6.5 이상의 강진이 일어날 수 있는 설계 고려 단층도 5곳이 확인되었고 그 이상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었다.
분절은 지진이 날 한 번에 움직이는 단층 구간으로 살아있는 가까운 미래에 지진 발생을 예고하는 지표를 의미한다.

지난해 3월 <한겨레신문>과 <MBC> 보도에 따르면, 16개의 활성단층 분절 가운데 5개가 핵발전소 반경 32㎞ 안에 있고 길이가 1.6㎞ 넘는 설계고려단층이다.
지진 발생 가능성이 커 짓지 말아야 할 곳에 핵발전소를 지었다는 이야기다. 읍천단층은 월성핵발전소와 불과 1.8km 거리에 있다.

최근 월성핵발전소 반경 32km 지역에서 규모 6.5~7.0의 지진을 촉발할 수 있는 활성단층이 추가로 7개 발견되었다. 1977년 기준 부실한 지진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가동 중인 월성 2·3·4호기는 지진에 취약한 구조이다. 당장이라도 월성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지반가속도 재평가를 통한 원자로 내진설계가 시급하다.
활성단층 위에 한창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도 있다.

고리, 월성 핵발전소 반경 30km 내에는 380만 명의 부산, 울산, 양산시 주민들이 산다. 
쓰나미, 지진 그리고 이어진 핵발전소 사고에 대비한 ‘복합재난’ 대책은 현재 없는 상태다.

땅의 울음소리

지진 대국 일본은 이시카와현에서 발생한 진앙을 중심으로 반경 250km 내에 22개의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해왔다. 사용후핵연료 수조 물이 넘치고 변압기 배관이 파손된 시카핵발전소 2호기는 활성단층 문제가 제기되었음에도 재가동을 코앞에 두고 있었고, 반경 250km 내 7기의 핵발전소 재가동을 승인했다.

지진으로부터 더는 안전하지 않은 한국도 신규핵발전소를 추가 건설할 계획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1월 중 발표할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는 최소 4기 이상의 신규핵발전소 건설계획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는 보도가 나온다.

또한 한수원은 지난해 고리2호기와 한빛1·2호기 수명연장에 이어 한울 1·.2호기 수명연장 절차를 진행 중이다. 올해 월성 2·3·4호기도 수명연장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영구폐쇄해야 할 노후핵발전소들의 수명연장으로 국민의 수명이 단축될 판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후쿠시마현에 살던 젊은 엄마는 딸아이를 껴안고 마루 밑에서 지진의 흔들림을 견디면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엄청난 땅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인간의 탐욕에 경종을 울리며 땅이 울어댄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온통 4월 총선과 국회의원을 향한 고군분투에만 관심을 둔다.

아무래도 방독면과 소화기, 재난가방을 준비해야겠다. 각자도생의 시대이니...

 

이태옥 원불교환경연대 정책위원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자연도 인간도, 우주도...

한낱 인간의 욕망이 지구를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꿈꾼다.

에코아나키스트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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