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우(한미일연구소 상임대표. 언론사회학박사)

 

이 소설은 한국예총을 통해 등단한 작가들의 모임인 예술시대작가회의가 2023년 12월 발간한 동인지 39집에 기고해 실린 필자의 작품이다. /필자 주

 

“여보, 이렇게 갑자기 가버리면 어떡해요. 어허허헝.”
“아니야, 나 죽지 않았어.”
“으흐흑흑.”
“아니라니까. 나 멀쩡하다고. 나 살아있어.”
그는 고함을 친다. 아내가 멀쩡하게 누워있는 자신의 몸을 부여안고 통곡을 하고 있어서다. 그는 일어나려 발버둥을 친다. 침대에서 빨리 일어나고 싶다. 울고 있는 아내에게 내가 살아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상체를 일으키려 한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몸이 바닥에 딱 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는다. 마치 접착제로 등이 침대 매트리스에 붙어버린 것 같았다.
“안 돼. 난 살아있어. 여보, 정신 차려. 나 좀 일으켜 세워줘.”
“아이고, 여보, 난 어떡해요. 아이들하고 어떻게 살라고 이렇게 가시는 거예요.”
“아빠. 아빠. 흑흑.”
“아빠, 일어나세요.”
그는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자신의 몸을 붙잡고 우는 것을 보면서 화가 났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자신을 죽었다고 울고 있으니 말이 되지 않았다. 그는 고함을 지르려했다. 그러나 갑자기 입이 얼어붙은 듯하고 목이 콱 잠기면서 말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끙,끙.”
그가 온몸을 뒤틀면서 목소리를 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허사였다. 목구멍에 천근만근 무거운 쇳덩이가 누르는 듯 꽉 막혀버린 것이다. 그는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았다. 그는 손을 들어 허공을 쥐어뜯으려 한다. 그때였다.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아준다. 그는 덕분에 자리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킬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는 너무 고마워서 큰 소리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런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 눈앞이 뿌옇게 되는 것 같더니 그의 전신이 허공에 붕 뜨는 것이 아닌가. 그는 깜짝 놀랐다. 이게 웬일인가 싶어 또 고함을 지른다. 아내에게 큰 소리로 도움을 청한다.
“여보, 나 어떻게 된 거야.”
그러나 아내는 계속 흐느껴 울 뿐이었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아 두 손을 허우적대면서 아내에게 더 고함을 치려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의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것 같더니 맹렬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사지를 버둥거린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었다. 무언가 억센 힘이 자기 팔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몸뚱이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 귀에서 윙윙하는 바람소리가 크게 들린다.
“아이고, 나 죽네. 여보, 나 좀 살려줘.”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른다. 그러나 그것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가 고함을 지르려 하지만 입만 버둥거릴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더욱 기를 쓰면서 면서 사지를 버둥거린다. 자기 손목을 잡고 있는 힘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힘은 더욱 강하게 그의 팔목을 잡았고 그리고 더욱 빠른 속도로 그의 몸이 날아갔다.
“아아악.”
그는 절망감에 비명을 지른다. 그는 앞이 안보이지만 이미 아내와 아이들은 곁에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는 무서웠다. 무엇이 자기를 잡아채서 날아가고 있는가. 그는 귓속에서 바람소리를 느낀다. 온 몸에서도 바람소리가 난다. 그는 공포에 질려 고함을 더 크게 지르려 했다. 그러자 벽력같은 소리가 그를 제압했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 같으면서도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귀청이 터질 것 같아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뜻을 알아들었다. 그 목소리는 그를 공포에 질리게 했다.
“닥쳐라. 이놈아. 네 놈은 지금 지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예엣, 지옥이라고요?”
“그래. 네 놈이 평생 지은 죄가 무거워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요? 전 착하게 살았어요.”
“웃기지마라. 이놈아. 네 놈이 지은 죄 값을 네가 치러야 할 것이다.”
“당신은 누구세요? 누구신데 그런 말씀을 하세요?”
“내가 너를 담당한 저승사자다.”
“예엣?”
“그래, 난 지금 널 지옥 입구까지 데려왔느니라. 이제 내 임무는 끝났다. 잘 가거라.”
목소리가 천둥 같은 소리로 말하더니 그의 팔목을 잡았던 힘이 풀리면서 몸이 갑자기 밑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아아악!”
그가 고함을 치면서 사지를 버둥거리는데 낙하하는 것 같은 몸이 갑자기 멈춘다. 그리고 눈이 번쩍 뜨이면서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눈앞의 광경에 소스라치듯 놀랐다. 그는 커다란 대문과 같은 건축물 앞에 서 있었다. 그 건축물 지붕은 엄청나게 큰 기둥 두 개가 받치고 있다. 그 대문 양쪽에 문지기가 서있다. 문지기는 처음 보는 괴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 대문 앞에는 그와 똑같은 모습을 한 인간들이 줄지어 서있고 문지기가 이름을 부르면 “네, 여기 있습니다.”하고 고함을 치면서 문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등 뒤에서 그를 떠미는 사람들의 힘에 밀려 대문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는 가지 않으려고 버텼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그를 앞으로 밀어대고 있었다.
“왜 미느냐!”
그는 고함을 지르면서 사람들을 흘겨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대문 쪽을 향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아무 표정도 없고 흐느적거리면서 움직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들은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니는 식으로 대문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으흑.”
그는 놀라서 그들을 보다가 자기 몸뚱이를 살펴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기의 발도 땅에 닿지 않은 채 허공에 떠 있었다. 그는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몸을 대문 쪽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그가 대문을 지키는 문지기 앞까지 밀려왔을 때 큰 목소리가 자기 이름을 호명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예, 여기 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붕 뜨더니 대문 안으로 빨려들 듯 들어갔다.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갑자기 몸이 땅 바닥에 뚝 떨어진다. 그리고 벽력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 잘 왔다. 나는 이곳을 지키는 저승사자다. 네가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자 빨리 일어나 네가 가야할 곳을 가도록 하자. 네가 들려야할 지옥의 방이 너무 많아 서둘러야 한다.”
그는 목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무시무시하게 생긴 괴물이 그를 지켜보면서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그는 괴물의 말을 듣고 속으로 ‘이곳이 지옥이라고?’하면서 놀랐다. 그러면서 괴물을 향해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눈은 떴지만 다른 부분은 전혀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전신에 기운이 없어 손가락 하나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는 눈만 멀뚱멀뚱하면서 엉거주춤 서 있자 자신을 저승사자라고 소개한 괴물이 커다란 손으로 그의 목덜미를 낚아채듯 움켜쥐었다. 괴물은 이어 그의 몸뚱이를 번쩍 들고 앞으로 내달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승사자가 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생전에 한반도 통일문제 전문가라며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 상태다. 결과적으로 너도 큰 죄를 저지른 것이다. 네가 이곳에 보내진 이유다. 너는 앞으로 분단 책임을 묻는 여러 지옥의 고통을 차례차례 뼈가 부서지도록 맛보아야 한다. 너는 남북한 분단으로 인해 생긴 비극의 종류만큼 그에 대한 죄 값을 치러야 한다. 네 죄는 너무 무겁고 다양해서 여러 지옥 방에서 끔직한 맛을 보게 될 거다. 내가 네놈을 여러 지옥에 안내하마.”
그는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랐다. 자신이 남북 분단의 죄 값을 치러야 한다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왜 그런 죄값을 치러야 합니까. 억울합니다.’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가 입만 벙긋벙긋하면서 허우적대며 외친다.
“살려주세요.”
“이놈아, 너는 지금도 네 죄를 깨닫지 못하느냐? 원래 하나였던 한민족이 남북한으로 찢어진 것 아니냐?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간에 분단을 해소하지 못하고 서로 갈라져 싸우면서 세월을 보낸 죄가 크다. 분단국의 모두에게 무한 책임이 있는 거다. 너는 특히 통일문제 전문가처럼 굴었으니 그 죄가 매우 무겁다. 그러니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저승사자는 그를 질질 끌고 가더니 한 곳에서 그를 짐짝처럼 내동댕이쳤다. 거기에는 칼산지옥 방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얼핏 바라보니 그곳은 산 전체가 칼날로 박혀있다. 그는 맨발로 그곳을 지나가야했다. 칼날은 마치 열대림의 수풀처럼 빼곡히 박혀 있다. 그곳을 지나가는 동안 그의 발과 다리는 살이 갈라지고 뼈가 부서졌다. 엄청난 고통으로 정신이 가물가물 해졌다. 저승사자는 그를 채찍으로 몰아간다. 그가 칼산을 넘어가는 동안 몸은 갈가리 찢어졌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그의 몸이 넝마처럼 찢어졌는가 하면 어느 틈엔가 다시 원상대로 돌아왔다. 이런 고통의 과정이 수없이 되풀이 되었다. 그가 파김치가 되어 늘어지자 저승사자가 외쳤다.
“네놈이 첫 번째 지은 죄 값을 치렀는데 맛이 어떠냐? 말 안 해도 잘 알지. 그럼 다음은 맷돌지옥으로 가볼까. 서로 갈라져 치고받고 전쟁까지 한 죄에 대한 죄 값을 치러야 하는 곳이 그곳이니라.”
저승사자는 그를 맷돌지옥 방으로 끌고 가 발로 차 처넣었다. 그곳은 그의 몸과 영혼을 맷돌에 넣고 콩을 갈 듯이 갈아댄다. 그의 살과 뼈, 피는 물처럼 갈라져 맷돌 밖으로 질질 흐른다.
“으아악.”
그는 형언할 길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또 질렀다. 맷돌에 갈려나온 그의 영혼과 몸은 다시 원상대로 돌아간다. 그러면 또다시 맷돌질이 시작되었다. 동일한 과정이 끝없이 되풀이된다. 그는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 외쳤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분단의 죄를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그는 맷돌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저승사자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러나 저승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다. 그는 사력을 다 해 저승사자에게 빌며 도와달라고 외쳤다. 아무 소용이 없다. 얼마나 그런 고통의 시간이 지났을까. 저승사자는 맷돌 지옥에서 그를 끄집어낸다. 이어 송곳 지옥 방에 그를 내던진다. 전신을 빈틈없이 송곳으로 찌르는 형벌이다.
“분단된 조국으로 인해 겪어야 할 고통은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
저승사자는 그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그가 겪는 고통이 심할수록 저승사자는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짓는다. 즐기는 듯 했다. 그는 지은 죄만큼 송곳질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송곳 지옥 다음은 불지옥 방이다.
“분단의 죄를 태워 없애야 한다.”
저승사자는 그를 수천, 수만 도의 불바다 속에 던져 넣었다. 남북 분열과 대립 과정에서 저지른 편 가르기 죄업을 말끔히 태워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살과 뼈가 불길 속에 타서 없어진다. 그러면 몸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불에 타는 고통이 반복된다.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린다. 까무러쳤다가 깨어나기를 수없이 되풀이 한다. 뼈를 재로 만들어 버리는 불길 속에서 나뒹굴기를 얼마나 했을까. 저승사자가 숱 덩이가 된 그를 불구덩이에서 끄집어 올렸다. 이어 그가 던져진 곳은 얼음지옥 방이다.
“분단의 차가운 고통에 대한 죗값을 치러라.”
분단으로 인한 서러움과 애간장이 타들어가는 이산가족의 슬픔, 동족끼리 증오를 주고받은 죄가 몸속에서 고드름이 되어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 살을 짓이기고 뼈를 부러뜨리는 얼음 고드름으로 그의 몸은 넝마처럼 찢어발겨졌다. 신경 마디마디가 모두 얼어붙다가 파열되는 과정이 끝없이 이어졌다. 얼음지옥의 고통이 끝난 뒤 그는 벌레지옥 방에서 던져졌다.
“분단으로 망가진 것들에 대한 죄가 얼마나 큰지 아느냐.”
저승사자는 그에게 분단으로 멀쩡했던 것들이 망가진 것에 대해 속죄하라고 외쳤다. 분단의 파괴에 대한 업보를 털어내는 지옥이었다. 장미꽃이 벌레의 밥이 되듯 그의 몸뚱이 모든 땀구멍에 벌레들이 파고든다. 살을 파먹고 피를 빨았다. 전신의 살과 뼈가 파 먹히면 다시 몸뚱이가 재생된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고통이 전신을 파고든다. 그가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는 과정을 수도 없이 겪은 뒤 넝마처럼 늘어지자 저승사자가 외쳤다.
“다음은 태풍지옥 방의 맛을 즐겨라.”
그곳 역시 분단에 대한 가혹한 형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하나였던 강토가 찢어지면서 외세에게 동족이 시달리게 한 죄를 묻는 지옥 방이었다. 초강력 태풍의 수십 배 되는 바람 앞에서 그의 몸뚱이는 헌 옷처럼 찢어져 허공에 흩어졌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된 순간 그의 몸이 다시 원상태로 복원된다. 이어 태풍으로 몸이 찢어지는 고문이 되풀이 되었다. 그 다음은 망치 지옥 방이었다. 분단의 고통에 연루된 죄에 대한 문책을 하는 곳이다. 그는 온몸을 쇠망치로 짓이겨 종잇장처럼 얇게 될 때까지 두들기는 망치 지옥 방에서 고통을 당했다. 망치는 그의 전신을 두들겨 밀가루 반죽처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고통은 그 이전의 지옥에서 보다 더 지독했다. 종잇장처럼 얇아진 몸뚱이는 이어 원상으로 회복되어 같은 형벌이 가해졌다. 그는 이어 아귀지옥 방으로 떨어졌다.
“분단으로 인한 배고픔의 죄가 무엇인지 확인해 봐라.”
아귀지옥 방에서 그는 지독한 배고픔에 시달리다 제 살을 뜯어먹는 고역을 겪었다. 저승사자는 분단으로 인해 발생한 식량난 속에서 인육을 먹어야 할 정도의 참상이 벌어진 것에 대한 죄 값이라 했다. 아귀지옥 방에 떨어진 존재들은 하나같이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이것저것 마구 먹을수록 더 심해져 오는 배고픔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결국 제 손과 발, 그리고 제 몸뚱이의 살을 파먹는 참혹한 고통을 당했다. 그도 자신의 살과 뼈를 다 먹고 입만 남았을 때 다시 전신이 재생되었다. 이어 또다시 제 살을 뜯어먹는 참혹한 과정을 되풀이 했다. 다음은 전투지옥방이었다.
“분단 속에서 살육을 행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
저승사자는 남북으로 나뉘어 죽이고 죽는 크고 작은 싸움을 벌인 죄에 대한 형벌이 행해지는 전투지옥방에 그를 내던졌다. 그는 그곳에서 헤아릴 수 없이 반복되는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살아나 또 죽는 과정을 되풀이해야 했다. 그는 죽기 직전의 지독한 두려움, 죽음을 당하는 과정에서의 끔찍한 공포 등을 겪어야 했다. 그 뒤로 그는 이름을 붙일 수조차 없는 여러 지옥 방들을 차례로 돌면서 분단에 따른 죄가 그토록 많은 것에 전율했다. 그는 저승사자가 끊임없이 자신을 새로운 지옥 방의 입구에 처박을 때마다 한없는 절망감 속에 애원도 하고 울부짖으며 용서를 빌었다. 그는 다시는 분단의 죄를 짓지 않겠다고 외치면서 저승사자에게 매달렸다.
“살려주세요. 다시는 남북이 분열되어 싸우는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평화롭게 재통일이 되도록 제 모든 것을 바쳐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 고통은 면케 해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는 목청껏 외치며 간절히 애원했다. 그러나 저승사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기진맥진해서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저승사자의 자비를 구했다. 그러자 저승사자가 자못 자비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네가 인간의 역사에 대해 연구를 좀 했다고 들었다. 그게 사실이냐”
“예 그렇습니다.”
“왜 그걸 연구했느냐?”
“통일에 도움이 될까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인간사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통일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
“분단도 인간의 됨됨이가 빚어낸 비극의 하나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를 연구한 것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것을 지금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겠느냐?”
“예? 그, 그럼 저를 고통을 면케 해주시겠습니까?”
“이놈아 조건 달 것 없다. 내 들어보고 판단할 터이니. 시작해 보거라.”
“예, 알았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끙끙거리며 정리했던 인간의 역사에 대한 연구 자료를 머리에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인간은 자신들을 동물과 신의 중간에 있는 존재라고 얘기합니다. 그럴 듯한 말이죠. 양다리 걸치면서 자신을 합리화 시킬 수 있는 장치인 것이죠. 인간은 자신을 신이라 추켜세우지만 다른 사람은 동물 같다고 비하하는 것입니다.”
“분단되면서 남북이 서로 그렇게 상대를 비하하고 짓이기려 한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이런 저런 정치사상, 이론을 앞세워 그 짓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것이 큰 죄악이니라.”
“네 그렇습니다.”
“너도 통일운동하면서 그런 면을 부각시킨 것 아닌가?”?
“아, 네. 그건 아니고.”
“말 얼버무리지 말고 인간의 역사에 대해 계속해봐.”
“네. 알겠습니다. 인간이 신과 동물을 들먹이는 것은 내로남불을 합리화시킬 때 자주 써먹는 대표적인 수법입니다. 인간의 영악스런 면이 이 부분에서 돋보입니다. 인간은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 인간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착취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입니다. 인간은 생존경쟁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면서 잔인성을 드러내는 인간의 본성을 합리화시키는 재주가 뛰어나죠. 동시에 인간의 잔인성은 지독합니다. 남의 고통에서 인간은 쾌락을 느낍니다. 과거 왕이나 황제들이 죄인을 사형을 시킬 때보면 그 잔인성이 나타납니다.”
“그렇다 해도 지옥에서 하는 것보다 더할 수가 있느냐?”
“아 그건 비교검토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럼 계속 해봐.”
“네. 인간이 오랫동안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는 방법을 연구해놓은 것을 보면 굉장합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거나 생선회를 뜨듯 사람의 피부를 조금씩 칼로 발라내고, 작은 벌레 굴속에 묶은 채로 넣어 벌레들의 먹이가 되게 하죠. 뾰족하게 송곳처럼 깎은 기둥을 등골 아래로 쑤셔 넣어 어깨부근까지 밀어올린 뒤 그 기둥을 수직으로 세워 땅에 박아놓는 방식도 있죠. 될 수 있는 한 오랜 시간 고통을 가하면서 서서히 죽이는 식입니다. 허리를 두 동강내는 식으로 잘라 버리거나 끓는 물, 기름에 넣어 죽이고, 사지를 묶은 밧줄을 소가 끌게 해서 몸을 갈기갈기 찢어 죽게 하는 방식 등은 빨리 사망케 하는 것이라 상당히 인도적인 면이 있어요. 이런 사형 장면은 지구에서 1백 년 전까지 많은 국가에서 대중들에게 큰 구경꺼리로 제공되었어요. 잔인한 서커스와 같다 할까요. 대중들은 일벌백계의 효과를 노리는 지배자들의 명령에 따라 구경나오기도 했지만 사형수가 흘리는 피나 그들의 옷가지, 소지품, 그들을 사망케 한 밧줄 등을 구하려 했다지요. 그것들이 신통력이 있다면서 서로 가져가려고 난리를 쳤죠.”
“그래? 인간이 남 괴롭히는 데는 아주 재주가 뛰어나구만.”
“그렇습니다. 제 말씀을 더 들어보시면 더 잘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래? 말해 봐.”
“인간의 잔인성은 대량 학살에서 확인됩니다. 인간의 역사나 기록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잔인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인간은 전쟁에서 많이 죽일수록 영웅이라고 칭송합니다. 전쟁은 인간을 악마로 만들지요. 세계 2차 대전 때는 최고 1억 3천 만 명이 죽었고 세계 1차 대전 때는 1천 5백 만 명이 죽었습니다. 인간은 적이나 증오의 대상은 다 죽인다는 것을 당연시 합니다. 히틀러는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1천만 명이 넘는 사람을 독가스로 살해했습니다. 히틀러가 전쟁에 승리했다면 그는 영웅으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성경에 나오는 신은 분노의 신이고 동물조차 관용치 않은 존재로 묘사됩니다. 기독교 신은 물로 심판할 때 지구상의 모든 동물도, 노아의 방주에 남은 것을 제외하고 다 죽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딱 한번 썼다는 핵무기는 어떻습니까? 핵무기는 투하되는 지역의 모든 생명을 싹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종교의 절대자가 인간을 불로 심판해 몽땅 처치한다는 예언이 나와 있는데 인간이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꼴이라 할까요? 인간들이 즐기는 영화는 어떻습니까? 현실 속에서 죽이고 죽는 일이 반복되는데 그래도 질리지 않은 듯 또 죽이는 영화가 만듭니다. 영화는 경쟁적으로 잔혹한 방식의 살해 장면을 넣으려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돈을 주고 영화관을 찾아갑니다. 간접 살인을 즐기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저승사자인 나도 듣기에 좀 거북하구나.”
“그럼 그만할까요?”
“건방진 소리.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해.”
“네, 알겠습니다. 인간이 남을 죽이기 전에 다른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고안한 고문은 또 어떻습니까? 골방에 가둬놓고 매질하거나 불로 지지는 것, 주리를 트는 것 같은 고문은 점잖은 편입니다. 일부 국가의 기록을 보면 말 뒤에 나체로 묶어 놓고 말을 대로변으로 달리게 하는 고문, 볼에 십자가형태의 쇠로 지지는 고문, 손발의 근육을 끊는 고문, 바다물속에 묶어두는 고문, 큰 길에 몸만 묻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하는 고문 등 그 방법이나 고통을 주는 형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합니다. 좀 더 예를 들어볼까요? 분뇨 속에 잠기게 해놓고 방치하거나 대소변을 먹게 하는 방법, 타는 불 위를 맨발로 걸어가게 하는 방법, 거꾸로 매달아 놓고 밑에서 불을 때는 방법, 등에 상처를 내고 그 곳에 펄펄 끓인 납을 붓는 방법, 머리카락을 천장에 매다는 방법, 발가벗겨 바늘 끝으로 전신을 찌르는 방법, 손톱을 모두 뽑아 놓고 손끝을 바늘로 찌르는 방법, 손가락, 귀, 코, 혀, 남근, 유방 등을 순서대로 잘라내는 방법, 뱀, 거머리, 거미, 벌, 개미, 독충 등을 통이나 상자에 가득 채워 알몸인 사람을 그 속에 가둬두는 방법, 발바닥을 계속 깃털 같은 것으로 간지럽게 해서 웃다가 기진하게 만드는 법 등이 기록으로 나옵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인간의 속성이란 추악한 것 그 자체입니다. 지구상의 어느 동물도 고문을 행하지 않습니다. 인간만이 합니다. 인간의 추악한 면이 더 있습니다.”
“야, 너도 인간이면서 다른 인간을 그렇게 매도할 수 있나?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렇기는 합니다. 말씀드리다 보니 좀 부끄럽습니다.”
“그것 알면 됐어. 계속 해봐.”
“네. 인간은 교활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신이라고 하는 절대자를 찾아 경배하고 의존하려는 데서 나타납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범죄적 자질을 절대자 숭배를 통해 물 타기 하려 합니다. 낮에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밤에 절대자에게 기도하면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비는 식입니다. 일주일 내내 남을 괴롭히고 사기를 치다가 일요일이 되면 딱 몇 시간 동안 신을 경배하면서 자신의 죄가 다 씻어졌다고 자위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오른 손이 범하는 죄를 왼손이 모르게 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수많은 신들을 만들어 경배하면서 자신의 죄책감을 털어내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신과 종교를 찾는 인간의 열정은 식을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물리적인 힘을 가장 강력한 지배력으로 여기면서 그것을 소유하려 온갖 짓을 다 합니다. 그 힘은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지구촌을 지배하는 가장 원초적인 힘은 역시 경제력과 무력이라는 것을 인간은 잘 알고 있습니다. 될수록 많은 재화와 강력한 무기를 지니는 개인이나 단체, 사회 또는 국가가 지배력을 행사합니다. 그래서 개인 간에도 끊임없는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단체나 사회, 국가 간에도 서로 땅을 빼앗고 재물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그치질 않습니다.”
“그런 면은 남북한도 마찬가가 아닌가?”
“예. 솔직히 그렇습니다.”
“너도 마찬가지 죄를 짓다보니까 이곳에 끌려온 거라고. 그것을 잊으면 안돼.”
“네 명심하겠습니다.”
“계속 해봐.”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란 전쟁하기에 지치거나 전쟁 준비를 하는 기간 동안의 싸움이 없었던 기간에 불과합니다. 이런 모습은 지구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동물의 세계와 다른 모습입니다. 동물들은 배고파서 살생을 하는 것이지 그것을 즐기기 위해 하지 않아요. 동물은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있는 먹잇감이 눈앞에 있어도 그냥 놓아두잖아요. 물론 동물들은 왕성한 생명력에 이끌려 자신의 영토를 지키려 하고, 한 무리 속에서 지배권을 다투면서 죽기 살기로 싸우기는 합니다. 그러나 동물들의 그런 모습은 종족 유지라는 궁극적 목표에 집중됩니다. 그들은 가장 강한 수컷만이 암컷을 차지해 가급적 강한 자손이 태어나게 합니다. 나이 들어 힘이 빠진 동물은 우선 외모에서부터 생기를 잃고 성적인 매력이 상실됩니다. 이는 매우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병들거나 노쇠한 동물의 새끼는 건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속성에도 동물처럼 자신의 종족을 유지하려는 그런 본능이 태초부터 유전되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그런 속성은 동물보다 매우 복잡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자기 자신을 드려다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도 네 자신을 들여다 볼 능력이 있나?”
“예. 조금은 있습니다. 많이는 없구요.”
그가 말을 마치고 저승사자의 눈치를 살피려는데 이게 웬일인가? 저승사자가 갑자기 화를 내면서 그를 마구 때리고 할퀴기 시작했다. 그는 너무 어처구니없고 당황스러웠다. 자신은 저승사자가 허락한데로 길게 인간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지옥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승사자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 그에게 무시무시한 폭력을 퍼붓는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워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그래도 폭행은 계속됐다. 얼마나 그렇게 했을까. 그는 “살려 주세요”라고 외치다가 제 목소리에 놀라 퍼뜩 눈을 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저승사자는 간데없고 웬 어여쁜 여인이 그의 옆에 앉아서 자신을 돕고 있는 것이 아니가. 그는 저승사자가 여인으로 변신했는가 싶어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아악, 저승사자님. 살려주십시오.”
그가 외치자 그 여인이 그를 부드럽게 만류했다. 그녀는 그를 다시 자리에 눕히면서 말했다.
“고생하셨죠? 지옥의 고통이 굉장했지요? 이제 그런 고통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이 이곳에 오시기 전까지 거쳐야 할 시련의 시간은 이제 끝났습니다. 그리고 모르셨겠지만 저승사자가 당신을 지옥에서 괴롭힌 것은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랍니다. 그것은 당신이 꿈속에서 경험하신 거예요. 꿈을 꾸신 겁니다. 그것은 모르셨지요? 호호호.”
여인이 말을 하면서 웃자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함치듯 말했다.
“그것이 다 꿈이었다고요?”
그는 그 여인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저승사자에게 지옥의 여러 방을 끌려 다니며 끔찍한 고통을 당해야 했던가. 그런데 그게 모두 꿈이었다? 그녀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더욱이 이 여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누구 길래 갑자기 나타나서 그에게 황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단 말인가. 그는 혼란스러워 눈을 감았다. 그러자 무서운 지옥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 생생한 고통의 순간들이 몽땅 꿈속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그럴 수 없었다. 수많은 지옥 방에서 얼마나 고생했는가 말이다. 뼛속까지 저려오던 아픔은 난생 처음 겪은 지독한 것이었다. 칼날지옥과 맷돌지옥 등을 돌면서 당해야 했던 분단 책임에 대한 질타와 징벌의 과정은 얼마나 괴로웠던가? 그런데 그것이 몽땅 꿈이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끌려간 수많은 지옥과 그곳에서 되풀이 되던 무서운 고통의 기억은 너무도 생생했다. 온 몸에서 아직도 그 때의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현장의 모습들도 눈앞에서 훤하다. 그는 몸서리치면서 전신의 털들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식은땀이 솟았다. 그것이 꿈이었다니, 그 무서운 시련이 꿈이었다니 다행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이 여인은 도대체 누가란 말인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저승사자의 지옥 방에서 벗어나 이처럼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우.”
그는 한숨을 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지옥에서 시달린 꿈속의 아픈 경험이 너무 지독했던 탓인지, 도무지 기운을 차릴 수가 없다. 그는 눈을 감았다.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악몽을 꾸다가 벌떡 일어났다. 지옥에서의 그 지독한 형벌 방에 내던져지는 꿈을 꾸다가 깬 것이다.
“후유~ 또 꿈을 꾸었구나.”
그는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선잠이 들었다 하면 지옥에서 고통 받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악몽에서 깨어나면 식은땀을 흘리면서 뒤척였다. 이를 지켜보던 여인이 그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사실, 저승에 지옥은 없답니다. 더욱이 천당도 없구요. 단지 그것은 인간이상상하는 세계일뿐입니다. 꿈속의 지옥일 뿐입니다. 내 말 이해하시겠어요?”
“글쎄요. 그것이 정말 이예요?”그가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여인이 갑자기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 자기 말을 믿지 못하는 그가 원망스럽다고 말하면서 울음소리가 커졌다. 그는 그 모습에 쩔쩔매면서 “그게 아니고 사실은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여인이 그에게 등을 돌리더니 더욱 큰 소리로 흐느껴 운다. 그가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여인의 등에 손을 올리자 그 여인이 벽력같이 고함을 질렀다.
“이 놈아. 어디다 손을 대느냐. 난 네놈을 속여서 괴롭히려는 저승사자다. 이놈아, 분단 상황에서 서로 속이고 속은 죄가 얼마나 큰지 아느냐. 네 놈이 한반도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죄가 크다. 이놈아.”
말을 마친 여인이 갑자기 괴물과 같은 저승사자로 둔갑하면서 그의 몸뚱이를 집어 들어 공중에서 훼훼 돌리더니 땅바닥에 내팽개친다. 그는 몸이 산산조각 나는 엄청난 고통을 느껴 고함을 질렀다.
“아아악.”
그는 너무 고통스러워 눈을 번쩍 떴다. 눈앞이 환해지면서 무슨 소리가 왕왕거렸다. 저승사자가 어디 있나 살폈다. 그러나 없었다. 여인으로 변신했던 저승사자는 없었다. 그는 이게 웬일이냐 하면서 주위를 살폈다. TV가 보였다.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뉴스였다. 그는 여기가 지옥인가 하고 두리번거리면서 겨우 상반신을 일으킨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거실 한 쪽의 문이 벌컥 열린다. 그러면서 웬 사람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는 너무 놀라 고함을 질렀다.|
“아악.”
그러자 그 사람도 같이 놀라면서 외친다.
“아이, 여보. 왜 고함을 그렇게 지르고 난리예요.”
“...”
“당신이 갑자기 문을 열어 깜짝 놀랐네,”
“맨날 보는 안사람을 보고 왜 놀래요? 쯧쯧,”
“...”
“TV는 보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틀어놓고 자면 어떻게 해요. 시끄럽게.”
“...”
그는 아내가 안방에서 걸어 나오면서 말하자 여전히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아직도 자신이 어디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내가 거실 불을 켠다. 그는 사방을 둘러본다. 공간이 낯익었다. 그의 아파트 거실이었다.
그제야 그는 한숨을 푹 쉬면서 벌렁 눕는다. 한참 있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웬 꿈자리가 그 모양이냐.”
아내가 그를 보고 말했다.
“안방 침대에 가서 편히 주무세요. 소파에서 자니까 깊은 잠이 안 들잖아요. 그리고 내일 당신 남북통일 관련한 세미나 토론자로 나간다고 했죠?”
“응, 그렇지. 벌써 내일인가?”
“당신이 챙겨야지 잊고 있었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그는 아내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리모컨을 찾아 TV를 끈다. 아내가 혼잣말로 툴툴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음날 세미나에서 통일과 분단에 대해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까를 생각한다. 그러다가 꿈 생각이 나면서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지금까지 통일을 위해 최선을 다 했나? 혹시 분단에 기생하는 식의 논리로 살아오지 않았나?’
그는 한반도 분단 현실을 돌아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혹시 타성에 젖어서 분단 현실의 핵심문제에 눈을 감거나 외면한 적은 없었나? 주변부 문제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면서 세월을 보내지 않았나? 자기가 주장하는 통일 논리가 과연 현실을 바꿀만한 진실성과 추진력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국가보안법이 별문제가 아니라고 하거나 미국이 한국의 군사적 주권을 가져간 비정상적인 상태를 정상적인 것으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오지 않았나? 주한미군 사령관은 유엔군, 한미연합사 사령관 모자까지 쓰고 1인 3역을 하면서 한국에 대해 갖가지 군사적 통제를 가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하면 한반도 전면전쟁이고 그것은 한민족 전멸을 의미하지 않나? 남북한은 서로 핵으로 타격하겠다고 으르렁거리는데 이를 어떻게 평화공존 쪽으로 물꼬를 돌릴 수 있나? 북한에 대해, 남한에 대해, 미국과 일본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비판하면서 최상의 통일방안을 만들려 노력했나? 북한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은 국보법에 의하면 반국가단체요, 그 구성원들 모두 반국가단체에 속한다. 북한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그들은 남한의 법에 의해 범법자의 신세가 된다. 이게 정상인가? 정치, 사상이나 이념은 시대에 따라 부침하고 생멸하는 것인데 국보법은 이념을 민족보다 우선시 하고 있다. 동서이념 대결은 냉전과 함께 종식되었다는데 국보법이 21세기에도 존재하는 게 정상인가?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라는데 국보법에 의해 북한에 대해서만은 국민을 생각하지도 접촉하지도 못하게 되어있다. 국보법은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는데 이게 말이 되나? 국보법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남한의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고 진보의 정상적인 발전을 막는 악법아닌가? 헌재는 왜 이 법이 합헌이라고 판단하는가? 그들은 진영논리에 함몰된 법 기술자라서 그런가? 북한이 정치와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북한에 아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해 어찌해야 할 것인가? 수구세력이 하는 것처럼 규탄하고 박멸하려 앞장서야 할 것인가? 북한은 핵무장을 한 상태로 한반도 전면전은 민족 공멸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서로 체제에 대해 인정하고 주민들의 상호교류협력이 보장되도록 하면서 느슨한 국가 연합체제로 가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통일 방식은 미래의 남북한 주민들이 선택하는 것으로 해야 하는가? 주변 외세는 한반도 통일을 반대하는데 어찌 해야 할 것인가? 외세는 분단을 부추기고 남북한은 서로 으르렁댄다면 한반도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고 그에게 해답을 요구하는데 그는 자신 있게 답변을 하지 못한다. 그는 가슴속이 답답해지면서 심호흡을 해본다. 그러나 가슴속은 여전히 꺼림칙하고 머릿속은 착잡하다. 그는 일어나 거실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간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그는 깜깜한 허공을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꿈속의 지옥을 생각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쉰다. 밤하늘 저쪽에서 유성하나가 그가 사는 아파트 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끝>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전 민언련 이사장
전 한겨레신문 부국장
전 한성대 겸임교수

제2회 조용수언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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