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기독교에, 특히 천주교에는 ‘고해성사(告解聖事, Confession)’라는 의식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개신교파에는 ‘고해성사’가 없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비판하거나, 혹은 비판하도록 강요받는 19세기말에 만들어진 ‘자아비판(自我批判, Self-criticism)’이란 자기 검열 행위도 있다. 이번 글은 필자가 기독교인으로 우리 민족 앞에 드리는 ‘고해성사’이자 ‘자아비판’이다.

1. 치졸한 사대주의

사대주의(事大主義, Sadaejuui, flunkyism, toadyism)의 사전적 의미는 “자국보다 강한 국가, 세력에 복종하거나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주의”를 말한다. 사대주의는 외교⸱정치적 사대주의와 문화⸱사상적 사대주의, 경제⸱사회적 사대주의 등등이 있다.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외교적 사대와 문화와 경제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적 사대는 어느 정도 용인될 수가 있지만, 국내 정치와 사상(정신) 및 사회에서의 사대를 조장하는 것은 매우 치졸한 행위이다.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도록 한 정치적 행위는 사상적이고 사회적인 사대주의를 만연시켰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사대성을 청산하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고구려를 계승하였음을 주장한 고려 태조 왕건(王建, 877~943)은 자주적 인물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고려 중기, 특히 12세기 중반에 이르러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사서 『삼국사기』를 저술한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은 문화적 사대주의를 생각한 초기의 초보적인 사대주의자였으나, 유학이 조선의 국시가 되자 조선은 사대주의 국가가 되어 버렸다.

2. 사대주의의 폐해

대한제국이 망한 것은 조선왕조 사회지배층의 정치적 사상적 사회적 사대 정신에 있다. 전략 전술적 사대가 아니라, 완전히 사대에 굴종한 종놈이 되어 버렸다. 친일파란 모화사대주의자(慕華事大主義者)들이 주인을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대의 대상은 이제는 태평양 전쟁의 전승국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일제의 대한제국 침략을 용인한 미국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일제의 강제점령과 한반도의 분할, 그 모든 원인은 사대에 굴종하고 사대를 받들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사대주의 모리배들에게 있다. 조선왕조 고종이 추구한 사대주의의 줄타기는 결국 대한제국을 지켜주지 못하였다. 미국은 대한제국을 지켜주겠다는 상호방위조약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일제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었다.

3. 기독교에 팽배한 신사대주의

대한제국 시대에 출현한 민족주의 선각자들에 의한 민족사관과 민족정신은 사대주의를 벗어나려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항거였다.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처절함 몸부림이었다. 우리 민족의 정신을 개혁하기 위한 모색의 한 방도에서 기독교를 수용하였지만, 조선왕조 말기에 우리 민족이 수용한 기독교는 미국화된, 특히 자본화된 미국주의적인 기독교이다. 미국 기독교의 특성이 지금은 우리나라에 더 심화하여 있다. 그들의 특징은 미국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의식과 시온주의(Zionism), 백인우월주의, 남성우월주의를 보인다.

미국화된 기독교에서, 미국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건국한 나라이므로 “미국의 지배로 세계의 평화 질서가 유지되는 상황을 추구한다(Pax Americana).” 따라서 그들은 친유태적인 시오니즘 성향을 보인다. 하나님이 창조한 첫 인간 아담을 백인으로 보며, 흑인은 아담의 아들 카인의 후손으로 보고, 여성은 첫 남성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으므로 남성의 부속물이라 인식하고 있다. 한국의 많은 목사와 기독교인은 친미국이며, 친이스라엘이다. 조선시대에 유교가 모화적(慕華的)이었다먄, 현대의 한국 기독교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숭상한다.

4. 가당치 않은 4개국 합체 국기

『4개국 합체 국기』, 2023년 Ⓒ이적. [사진 제공 – 이양재]
『4개국 합체 국기』, 2023년 Ⓒ이적. [사진 제공 – 이양재]

얼마 전 이적 목사가 페북에 올린 고발성 짙은 사진을 보니 이스라엘의 국기 아래에 미국의 국기를, 그 아래에 우리나라 국기와 일본 국기를 연이어 넣은 4개국 일제 깃발이 있었다. 가당히 않은 4개국 합체 국기이다.

기독교인들이 숭상하는 이스라엘은 성경에 의하면 기원전 1047년부터 기원전 930년까지 존속했던 국가였다. 1047년에 판관 사무엘에 의해서 사울이 이스라엘 민족의 왕이 되어 나라를 세웠다. 이후 다윗이 왕위에 올랐고,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까지 이어지다가 르호보암 때 북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925년 솔로몬 사후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으나 200여 년 후인 기원전 721년에 아시리아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남유다 왕국은 기원전 586년경에 바빌론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남유다의 백성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서 나라를 재건하지 못하였고, 때로는 식민지로서 분봉왕이 세워지기도 하였으나, 그마저도 기원후 70년경에 로마에 의하여 완전히 망한다. 우리가 주로 유태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로마에 의하여 멸망한 식민지 유대국의 후예들이다. 1948년 5월 14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유태인이 중동의 팔레스타인 고토에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우리나라의 기독교에서 단군 왕검(王儉)을 부정하는 이유는 단군 왕검의 조선 건국 연대가 기원전 2333년으로서, 그때는 유태인의 시조 야곱보다도, 야곱의 조부 아브라함보다도 수백 년 먼저이며, 모세가 출애급하여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에 자리를 잡기 900여 년 전이기 때문이다. 단군을 부정해야 기독교인들에게 우리 민족이 이스라엘의 단 지파에 속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정신 의식에서 우리나라의 국기보다도 이스라엘의 다윗의 별 국기를 높이 올리는 것이며, 그 다음을 기독교를 전해준 미국의 성조기를 높이는 것이다. 우리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태극기 아래에 일본의 일장기를 붙이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미국 한국 일본을 하나의 연합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심한 일부 개신교인들이다.

5. 맺음말

성경적 의미에서 우리 민족의 의미를 찾자면, 먼저 「사도행전」 17장 26절을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라고 하는 것이다. 『구약성서』 「창세기」 제11장에 바벨탑 이야기가 있다. 그 기록에는 하나님이 바벨탑의 건립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각 족속의 언어를 달라지게 하여 각 족속이 온 지면에 흩어지게 하였다고 한다.

유럽의 산업혁명 시대에 유태인은 온 유럽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산업혁명의 19세기 후반에 영국인 니콜라스 맥레오드(Nicholas McLeod)가 일본 요코하마에 살면서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연구하여 1879년에 한 책을 발행하였다. 『Korea and the ten lost tribes of Israel., with Korean, Japanese and Israelitish Illustrations.(한국과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열 지파, 한국, 일본, 이스라엘 삽화와 함께)』이라는 책이다. (참조; 『국혼의 재발견』 - 제2회 연재분)

이 책에서 우리 민족을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열 지파라고 규정하여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왜곡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역사적인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유태인의 선민의식(選民意識)과 미국의 종이 되어 버린 사대성이 우리 기독교 내에 흐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초기 개신교인 가운데, 이준(李儁, 1859~1907) 열사의 『한국혼 부활론』에는 우리 민족정신의 부활을 부르짖고 있다. 그렇다. 초기의 우리나라 개신교인들은 우리 민족이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열 지파 중 하나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준 열사의 경우처럼 국혼의 부활을 주장하였고, 게일이나 헐버트 등등 개신교 초기의 선교사들도 한국의 고대 문화를 『성경』에 종속시키려 하지 않았다. 4개국 합체 국기는 일부 맹신적인 기독교인의 현주소이다. 신사대주의의 실체를 보여준다. 이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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