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이 2021년 8월 18일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서 영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추도사를 하고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했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홍범도 장군이 2021년 8월 18일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서 영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추도사를 하고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했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윤석렬 정권이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시도하면서 내세운 논리가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입을 통해 드러난 적이 있다. 지난 9월 2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그는 민주당 김병주 의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 억제를 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에서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는 것이다.

이종섭 장관의 그 말이 조금이라도 설득력이 있으려면, 최소한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 완장을 차고 당시 연해주에 살던 동포들을 괴롭혔거나, 아니면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시기에 소련 공산당 당원으로 북(조선)을 지원하는데 앞장섰거나 하는 정도는 되었어야 한다. 백보를 양보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은 이미 1937년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쫓겨 간 신세가 되었다. 스탈린에 의해 자행된 고려인 강제 이주 사태의 희생자 중에 홍 장군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홍범도 장군이 공산당 당원이 된 계기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홍 장군은 봉오동 전투(1920년 6월)에서 일본군에 대승을 거둔 후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전투(1920년 10월)에서도 완벽한 승리를 이끌었다. 그 후 증강된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연해주로 넘어가게 되었다(1921년). 당시 연해주에는 많은 동포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는데, 추수철이 되면 불법 농작물이라고 공산당 관리들이 하도 곡식을 몰수해 가니 동포들이 홍 장군에게 공산당으로 입당해 막아달라고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

홍범도 장군은 카자흐스탄에서는 극장 수위로 일을 했고 이후 정미소 노동자로 살다가 1943년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장군은 생전에 이미 부인과 아들이 일본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독립투쟁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머나먼 이국에서 그렇게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런 홍범도 장군이 마치 우리민족에게 무슨 큰 잘못이나 저지른 것처럼 날조된 역사관을 퍼트리는 윤석열 정권을 보면 독립군 때려잡던 일본군 앞잡이 같다.

이 자리에서 윤석렬 정권에게 분명히 말한다. 당신들 생각이 그렇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육사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라고. 당신들이 철거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철거하고 싶다고. 다만 내가 흉상을 철거하려는 이유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추악한 거짓논리가 아닌 철저하게 칠천만 우리민족의 화해와 협력, 나아가 홍범도 장군의 입장에 선 애국애족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오래전부터 공개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이 자리에서 좀 해야겠다. 그동안 진보적 언론이나 역사 관련 단체에서조차 한 번도 문제의식을 드러낸 적이 없는 사안이다.

먼저, 나는 윤석열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전임 문재인, 박근혜 멀리 노태우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어느 정부도 홍범도 장군을 비롯하여 우리 독립운동 선열들을 추모하고 모실 자격이 없다는 걸 말하고 싶다. 왜 그런가? 역대 정부에서부터 쭉 독립투사들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일제 치하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분들이 오늘날 같은 분단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일제에 맞서 싸운 것이 아니다. 그 분들이 생각한 독립은 지리적으로는 일제 강점기 전의 한반도 모습을 온전히 되찾는 것이고, 정치·외교적으로는 외세의 물리력과 간섭이 없는 완전한 자주독립 국가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 이 나라는 어떤가. 선열들의 그런 정신을 이어받기는커녕 외세(미국)의 분단 놀음에 덩달아 춤을 추며 북(조선)쪽 형제들을 핍박하고 적대시하는 군사 놀음을 끊임없이 자행하고 있다.

더 개탄스러운 것은 남쪽 정부가 그런 짓을 벌이면서 홍범도 장군을 비롯하여 독립투사들의 그 고귀한 이름을 전투함 명칭에 함부로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이름짓기가 아니라 북(조선)을 아예 우리 민족사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민족분열 책동이고 없애야 할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저급한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쪽 정부가 얼마나 못된 짓을 하고 있는지 아래 표에서 확인해 보자.

위 표에 나와 있는 잠수함의 용도는 무엇인가. 이종섭 전 장관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북(조선)쪽의 형제·동포들을 때려잡기 위한 수중 전투함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제 침략자에 맞서 싸운 독립투사 홍범도, 안무, 김좌진, 윤봉길, 유관순 열사 등의 이름이 이제는 형제·동포들을 때려잡는 전투함의 명칭으로 도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홍범도 장군과 안무 장군은 북쪽이 고향 아닌가. 일제 강점기 전의 선열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외적의 침입을 막고 이 땅을 지킨 고귀한 분들이다. 그런 분들의 존함을 같은 형제·동포들을 핍박하는데 도용하고 있으니 하늘에서 선열들이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민족의 화해와 협력,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던 문재인 정부가 육사에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설치한 건 철없는 짓이었다. 선한 취지에서 시작된 행위라고 해서 그 결과마저 반드시 선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 세상 이치다. 매사에 그런 개념 없는 짓을 한 것 때문에 윤석열 같은 못된 자들에게 정권을 빼앗긴 것이다. 독립투사들과 역사적 인물들의 명의가 도용된 것은 잠수함 뿐 아니라 수상함에도 있다.

위 표를 보니 최근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 등장하는 강감찬 장군의 이름도 보인다. 모두가 외적의 침입을 물리친 역사적 인물들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정말 묻고 싶다. 도대체 남쪽 정부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민족사 전체를 아우르는 역사적 인물들의 명의를 독점하고 함부로 도용할 수 있는가를 말이다.

안타깝게도 올해가 분단 78년째다. 분단 이전의 역사는 남쪽 정부의 역사도 아니고 북(조선)쪽 정부의 역사도 아니다. 오롯이 우리민족 전체의 역사다. 결코 어느 한쪽이 역사를 독점할 수도 없고 배척해서도 안 된다. 북쪽 사람들 역시 홍범도 장군이나 안중근 의사 등 독립투사들과 역사적 인물들을 존경하고 본받으려고 한다. 나라가 통일이 되어 하나로 되었을 때에는 홍범도함, 안중근함, 이순신함, 광개토함 등등 얼마든지 당당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래선 안 된다.

우리 헌법 4조에 평화통일을 지향한다고 명시되어 있듯이, 통일의 상대인 북쪽의 형제·동포들을 핍박하고 공격하는데 독립투사들과 민족사 주요 인물들의 명의가 도용되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그것은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일 뿐 아니라 갈등과 불신을 조장하여 폭력적으로 목적을 달성하려는 반통일 반민족적 행위이다.

역지사지 해 보라. 북(조선)에서 자신들의 해군 잠수함 명칭을 홍범도함, 김좌진함, 안중근함 등으로 명명하고 남쪽을 공격하는 훈련을 해대면 우리의 심정이 어떻겠나? 어처구니없고 몹쓸 짓 아닌가? 그러니 육사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면 안 된다고 윤석열 정권을 규탄하고 나선 독립운동 관련 단체나 역사학계, 시민사회진영의 모습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거꾸로 윤석열 정권이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려는 불순한 의도는 결과적으로는 선한 행위가 될지도 모른다. 북쪽 형제·동포들을 적대하는 군대의 장교를 양성하는 학교에 당신의 흉상을 모셔 놓고 있으니 홍범도 장군이 하늘에서 비통해 하고 있지 않겠는가, 장군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마지막으로 군통수권자인 윤 대통령에게 충고한다. 걸핏하면 헌법 정신에 충실하자고 말하는데, 그게 진심이라면 오늘부터라도 해군 전함에 사용하는 독립투사들과 역사적 인물들의 명의도용부터 없애야 한다. 그런 기본부터 지키는 것이 헌법 4조의 평화통일 정신에 부합하는 행위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길 바란다.
 

리인수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연세대학교행정대학원 국제학 석사

사할린한인역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언론소비자주권행동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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