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자력갱생의 상징인 첫 전기기관차 ‘붉은기’ 1호. 1961년도산 이 전기기관차가 오늘도 힘차게 달리고 있다고 한다. [사진-조선신보 갈무리]
북한 자력갱생의 상징인 첫 전기기관차 ‘붉은기’ 1호. 1961년도산 이 전기기관차가 오늘도 힘차게 달리고 있다고 한다. [사진-조선신보 갈무리]

북한 자력갱생의 상징인 첫 전기기관차 ‘붉은기’ 1호가 오늘도 힘차게 달리고 있다고 재일 [조선신보]가 24일 평양발로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1961년에 만들어진 ‘붉은기’1호는 오늘도 두 줄기 궤도 위를 힘차게 달리며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 수행을 위한 집단적 혁신을 힘있게 추동하고 있다는 것.

신문은 “조선의 사회주의건설 역사는 자력갱생의 역사이다. 그리고 첫 전기기관차 ‘붉은기’호는 조선에서 자력갱생의 상징으로 되고 있다”면서, 첫 전기기관차가 생산되기까지 과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김일성 주석이 1959년 8월 어느 날 갓 준공한 서평양철도공장(당시)을 찾아 이곳 노동자, 기술자들에게 “한번 대담하게 전기기관차를 만들어 보라”고 지시를 내렸다는 것.

이에 신문은 “조선에서 증기기관차도 몇 대 만들어 보지 못한 그 때에 전기기관차를 생산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아름찬 일이었다”고 상기했다.

즉, 그 부속품만 해도 3천여 개나 들어가는 고속도차단기를 비롯하여 전기기관차에는 고도의 정밀성과 견고성을 요하는 1만 4천여 종에 무려 18만 개나 되는 부속품이 들어가야 하였는데, 북한 내에는 설계도면은 물론 부속품생산에 필요한 공구, 지구조차도 없었다는 것.

그러나 김 주석의 믿음과 결심에 공장의 노동자, 기술자들이 앞장서 전기기관차 생산에 떨쳐나섰다고 한다.

김 주석은 노동자, 기술자들이 마음 놓고 설계제작사업에 전심할 수 있도록 전기기관차 생산을 촉진시킬 데 대한 내각명령을 내렸다. 즉, 내각명령에서 전기기관차 제작에 요구되는 모든 자재와 설비들을 무조건 우선적으로 보장하며 전기기관차 제작을 백방으로 협조할 데 대하여 지시한 것.

그리하여 전기기관차 제작을 공장만의 사업으로가 아니라 전국가적인 사업으로 되게 한 이 조치에 의하여 설계제작사업을 다그쳐나갈 수 있게 되었다.

전기기관차 제작에서 제일 걸린 고리는 고속도차단기.

전기기관차 생산에서 수십 차례의 실패 끝에도 성공을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보수주의, 신비주의자들은 기다리고 있은 듯이 머리를 쳐들고 날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콩을 먹자면 이빨이 있어야 한다’고 줴치는가 하면 고속기차단기만은 수입해야 한다”고 제기해 나섰다고 한다.

이에 김 주석은 “누가 뭐라고 하든 흔들리지 말고 전기기관차 제작을 끝까지 밀고 나갈”데 대하여 간곡히 교시했고, 그리하여 공장의 노동자, 기술자들은 그처럼 힘든 고속도차단기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결국 1961년 8월 30일 전기기관차 제작에 성공했다.

이에 김 주석은 “우리는 증기기관차를 만들지 않고 전기기관차를 만들었으니까 기관차 생산에서 한 계단 뛰어넘은 셈”이라고, “증기기관차는 산업혁명시기부터 쓰는 것이지만 전기기관차는 공산주의시기에 쓰는 것”이라고, “동무들이 대단한 일을 하였다”고 높이 치하했다.

아울러, 김 주석은 전기기관차의 이름을 인류의 이상인 공산주의를 상징하여 ‘붉은기’호라고 지어주고 차머리에 붉은기를 달도록 했다고 한다.

신문은 “조선에서 전기기관차 제작은 이렇게 실현되었다”면서 “조선의 전기기관차는 지난 62년간 680여만km를 무사고 주행을 보장하고 있다. 올해도 지난 9월까지 나라에서 주어진 연간 수송계획을 완수하였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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