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58년 개띠 노동자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설마 설마 했던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분노하면서도 낙심하고 두려움에 떠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신돌석씨는 이 모든 일이 우리가 진전한 데 따른 역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거대한 힘인 듯하지만 사실은 몰락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일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시작되었으나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고, 낡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으려고 완강히 버티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되돌리려는 세력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에 쐐기를 박고, 많은 사람들의 힘을 모아서 나가야 합니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귀한 삶이 존중받을 때 세상은 제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일을 위해 신돌석씨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삶들이 모여서 반드시 역사가 다시 제자리를 잡아가고 전진해 갈 거라고 확신합니다.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와 응원과 질책을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23. 9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신돌석씨는 늘 그렇듯이 5시50분쯤 눈을 떴다. 일을 나가야 할 날이면 이때부터 씻고, 아침을 먹는다. 일을 나가지 않는 날이면 뒷산에 올라간다. 이전 같으면 약수를 떠오곤 했었는데 뒷산에 너댓 군데 있던 약수터가 전부 부적합으로 폐쇄되었다. 큰 산에는 어떤지 모르겠다. 이제는 약수라는 것도 설악산, 지리산 이런 데나 가야 마실 수 있는 것일까? 하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여 사는데 약수가 온전할 리가 없겠지.

일을 나간다고 해야 이제 일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요양원에서 주간보호로 나오는 어르신들을 송영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아내도 따라 일어나서 아침을 차려 주곤 하였다. 안 그런 날도 있기는 하였다. 아내가 일거리가 많아서 밤늦게까지 일하거나 하는 날에는 아내는 그냥 누워서 잤다. 그러므로 젊을 때처럼 아침 식사 차리는 것이 아내 몫인 것은 아니었다. 하긴 젊었을 때도 아내가 출근했으므로 꼭 아내 책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식사에 대해 책임감을 넘어서서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신돌석씨 부부라고 해서 예외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적어도 신돌석씨 세대로는 극복하기 힘든 몸에 밴 관습이 아닐까 하고 신돌석씨는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전혀 일어나려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을 때는 적어도 미안하다는 식으로 이것저것 차려 먹고 나가라고 코치 정도는 했는데 오늘은 아무런 말이 없다.

어제 윤자 남편 장례식장에 간다고 했는데 한 시가 넘어서 들어왔다.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하고 그냥 놔두고 혼자 먹었다. 그런데 아내는 어떻게 윤자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일까? 그리고 만났으면서도 왜 신돌석씨에게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일까? 윤자는 신돌석씨가 노동운동이란 걸 하면서 처음으로 소모임 지도를 했던 여성노동자였다. 그 소모임에는 윤자 말고도 덕자, 신자가 있었다. 그래서 자자매라고 농담식으로 부르기도 했었다.

지금은 ‘자’로 끝나는 여자 이름이 없고 심지어 일본식 이름이고 촌스럽다고 해서 개명까지도 하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흔한 이름이었다. 유명인도 ‘자’로 끝나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다. 대통령 부인에서부터 가수, 배우, 탤런트까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 정도 나이가 된 사람들은 그냥 그 이름으로 사는데, 신돌석씨 또래 전후로는 개명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신돌석씨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몇 명 있었다.

셋 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시다일을 하면서 미싱을 배웠기 때문에 나이는 어렸지만 미싱사로서 경력이 꽤 되었었다. 신돌석씨가 처음 만났을 때 윤자와 덕자가 열 아홉 살이었고, 신자가 열여덟 살이었다. 아내는 스물한 살이었다. 당시에 노동자 출신으로 소모임에 조직되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았으므로 아내도 윤자를 잘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친하다고 볼 수는 없었는데 어떻게 남편 장례식에 갈 정도로 아는지 궁금했다.

신돌석씨는 그냥 우연히 만났겠지 여겼다. 아내가 덕자와는 가끔 연락하니까 덕자가 알려주어서 함께 갔을 수도 있겠지 생각하니 자기가 궁금해하는 것이 좀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왠지 아내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은 지우기 힘들었다. 밥을 다 먹고 개수대에 그릇을 넣고, 설거지는 하지 못했다. 이럴 때면 항상 ‘설거지는 물에만 담가도 절반은 한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맞는 말 같지만 사실 설거지하기 싫은 것을 합리화하는 말이겠지.

문을 열고 나가는데 아내가 몸을 옆으로 돌리는 소리가 났다. 분명히 깨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럴까? 뭔가 심기가 불편한 것 같은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윤자를 안 본 지는 벌써 40년 가까이 됐다. 아내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고, 거기서 어떤 감정이 생겨서 그러는 것일까? 덕자 말고 또 온 사람은 없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송영을 하면서도 계속 떠올랐다.

윤자, 덕자는 같은 공장에 취업을 했던 선미라고 하는 학생 출신 노동자가 조직해서 소모임을 만든 뒤 조직에 보고했는데, 조직에서 신돌석씨에게 지도선을 하라고 했다. 소모임을 지도하는 사람을 그 당시에는 지도선이라고 불렀다. 신돌석씨가 지도선이 된 뒤 신자를 윤자가 데려 왔다. 그래서 세 사람이 한 소모임의 구성원이 되었다. 신돌석씨는 다른 소모임에 참관이나 보조식으로 들어간 적은 있지만 온전히 지도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신돌석씨가 지도선이 되자 이들은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성이지만 같은 노동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친근하게 대했다. 좀 친해지자 호칭을 뭘로 하냐고 하면서 신돌석씨를 놀려 먹으려고 하기도 하였다. 아저씨라고 해야 하냐, 오빠라고 해야 하냐, 아니면 형이라고 해야 하냐. 그러다가 결혼했으니 형부라고 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신돌석씨는 그때 아내와 막 동거를 시작했던 때였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그 소모임 지도를 그만하게 될 때까지 호칭은 하나로 결정되지 않았다. 이렇게 불리기도 하고 저렇게 불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호칭 없이 그냥 대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소모임을 하면서 신자는 부담을 느꼈는지 한 달 만에 그만두었고, 윤자와 덕자 둘이 계속했는데 덕자는 지금까지도 아내와 간혹 보곤 하였다. 알고 보니 덕자는 아내와 같은 공장에 다닌 적이 있던 사이였다. 아내가 미싱을 할 때 시다일을 하던 사이였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덕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신돌석씨를 형부라고 불렀고, 아내를 보러 가끔 집에도 놀러 오곤 하였다. 그러나 윤자는 연락이 끊겼고, 덕자도 윤자의 소식을 모른다고 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이번에 처음 만난 것인지 아니면 그 동안 만나 왔는데 신돌석씨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인지 하는 것들이 모두 궁금하였다. 신돌석씨가 유달리 신경을 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없지 않았다.

윤자, 덕자와 함께 소모임을 하던 1986년 가을은 무척 살벌한 때였다. 위장취업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공단 주변의 노동자들 주거지에 사복형사들이 수시로 들이닥쳤다. 미행도 많았고, 불심검문도 많았다. 그 틈을 뚫고 노동운동조직들은 많은 유인물을 뿌리고 다녔다. 이때 상황이 신돌석씨에게 얼마나 정신적 압박이 되었는지 꿈에서 형사들한테 털리고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는 꿈을 여러 차례 꾸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제일 고통스러운 꿈은 다시 군대 가게 되는 꿈이라고들 한다. 신돌석씨도 제대 이후 그런 꿈을 몇 차례 꾸었다. 헌병들이 잡으러 온 적도 있고, 영장이 나왔는데 이건 잘못 된 것이라고 말을 하려는데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도망을 쳤는데 절벽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면 소리를 지르고 엉엉 울다가 깬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형사들한테 털리는 꿈을 꾸게 된 것이었다.

신돌석씨 조직에서도 털린 방이 있었고, 같은 지역의 다른 조직들에서도 몇 군데가 털렸다고 하였다. 잡혀간 사람들은 예외 없이 무수히 구타를 당하고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오로지 위장 취업한 학생 출신 노동자를 한 명이라도 대라는 것이었다. 그런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고, 그러다 보니 하나 둘 잡혀가는 일이 생겼다. 미리 알아서 튀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장에서 갑자기 사라진 사람은 대체로 위장 취업한 사람이었다.

그날도 소모임을 윤자와 덕자의 방에서 했다. 모임이 끝난 뒤 덕자는 안산에 사는 오빠 집에서 제사가 있다고 먼저 일어났다. 밤이 늦으면 워낙 불심검문이 심했기 때문에 소모임을 끝내면 그 집에서 그냥 자고 오라는 것이 조직의 지시 사항이었다. 그런데 덕자가 가버렸으니 좀 곤란하게 되었다. 윤자와 둘이서 한 방에서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윤자가 붙잡았다.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섭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가서 소주와 맥주를 한 병씩 사왔다. 둘이서 술이나 마시면서 이야기나 좀 하자고 했다. 안 된다고 하면 더 이상해질 것 같아서 그러자고 하였다. 자기가 밤에 혼자 있는 것을 왜 무서워하는지 아냐고, 윤자가 맥주를 두 잔째 마시면서 물었다. 신돌석씨는 별 생각없이 어렸을 때 귀신 이야기 좋아했냐고 가볍게 답했다. 그 말에 윤자는 꿈꾸는 듯 멍해진 표정을 지었다. 그 눈이 참 예뻤다고 신돌석씨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친구 때문에 그래요. 연선이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참 예쁜 애였는데… 꼭 탤런트처럼 예쁘게 생긴 애였어요.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에요. 성수동에 있을 땐데요. 기숙사에 있다가 둘이서 맘이 맞아서 자취를 시작했어요. 두 달쯤 되었는데 날이 무척 더웠어요. 야근 마치고 몸 씻고 자리에 누웠는데 그만 문 닫는 걸 잊어버린 거예요. 한참 자는데 이상한 거 있죠. 글쎄 연선이 위에 어떤 놈이 칼을 목에 대고서 올라탄 거예요.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데 칼을 나한테 대면서 소리가 나가면 죽여 버리겠다고 하더라구요. 꼼짝 못하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쳐다보기만 했어요. 기가 막히더라구요. 근데 다음날 또 왔어요. 불안해서 잠을 못 자고 있는데 똑똑 두들기더라구요. 미친 놈. 이젠 길 텄다 싶은가 봐요. 안 열어 주니까 글쎄 창 쪽으로 가서 칼로 모기장을 쫙쫙 그어 놓는 거예요. 별 수 없이 열어 줬어요. 그리고 또 연선이는 당했어요

한동안 윤자의 말이 끊어졌다. 윤자는 신돌석씨에게 소주 한 잔을 따라 준 뒤 자기도 맥주 한 잔을 또 들이켰다.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윤자의 두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고, 숨이 점점 가빠왔다. 이 이야기를 계속 듣는 것이 좋은 일인지 신돌석씨는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만 듣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런 신돌석씨의 생각에는 아랑곳없이 윤자는 하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그렇게 며칠이 갔어요. 그 놈은 몇 번 더 왔죠. 왜 신고하지 않았냐구 사람들은 말하지요. 신고요? 웃기는 얘기죠. 결국 연선이는 집을 나갔어요. 물론 회사도 안 나갔고요. 며칠 동안 소식을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으레 그렇듯이 다른 연락처를 아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경찰에서 찾아왔어요. 연선이가 영동대교 아래에서 발견된 거예요. 다리에서 뛰어내린 거죠. 내가 그걸 보고… 그걸 보고… 연선이라고 확인해 줬어요.

시골에도 연락해 줬는데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어요. 공장 친구들 몇이서 연선이 사촌오빠란 사람과 함께 화장했어요. 그리고 그 재를 산에 뿌렸어요. 저기 도봉산에 가서요. 도봉산에 연선이가 좋아하던 조장 오빠하고 놀러 간 적 있었거든요. 근데 그 오빠는 오지 않았어요. 연선이 이야기를 해주려고 해도 쌀쌀맞게 외면했어요. 어쩌면 그럴 수가 있냐 싶었어요. 그리고는 다른 애하고 연애를 하더라구요.

신돌석씨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적이 당황되기도 했다. 한참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신돌석씨는 아무 말없이 이불을 깔았다. 내일 일도 해야 하는데 이제 자야지. 고작 그런 말만 했다. 그리고는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들어와 보니 윤자는 자는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신돌석씨도 한쪽 귀퉁이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자다 깨다를 몇 번 되풀이하면서 이상한 꿈들도 꿨다.

아내가 뭐라고 막 소리를 쳤다. 이어서 헤어진 순덕이가 나타났다. 역시 신돌석씨를 향해 큰소리로 꾸짖었다. 신돌석씨도 소리쳤다. 그런데 순덕이의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순덕이가 달려들었다.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그리고는 신돌석씨를 자빠뜨리려 하였다. 신돌석씨도 안간힘을 쓰며 버둥댔다. 그런데 생시와는 달리 순덕이의 힘을 당해내기가 힘들었다. 순덕이와 엎치락 뒤치락 하며 싸우고 있는데 뭔가 이상해서 눈을 떴다.

윤자가 품에 안겨 있었다. 너무나 놀라서 화닥닥 일어났다. 윤자는 깨어 있었던 것 같았다. 신돌석씨는 그러고 있는 자신에게 너무나 화가 치밀었다.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담배를 한 대 피웠다. 하지만 이대로 집으로 간다면 윤자에게 너무나 상처가 될 것 같았다. 방으로 들어갔다. 불이 켜져 있었다. 윤자는 일어나 앉아 있었다. 이제 가셔도 될 시간이네요. 윤자의 목소리는 뜻밖에 침착했다. 시계를 보니 다섯시 반이었다.

밖은 아직 어두웠지만 이때쯤에는 경찰도 없다는 것을 신돌석씨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인물을 뿌릴 때 일부러 이 시간대를 택하곤 했었다. 가기는 가야겠지만 이대로 간다는 건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할 말이 딱히 없었다. 그럼 좀 더 자. 먼저 갈게. 겨우 이런 말만 던지고 허둥대면서 밖으로 나왔다. 안녕히 가세요. 윤자가 하는 말이 들릴락 말락 하였다.

신돌석씨는 윤자와 그런 일이 있던 그 날로 소모임 지도선을 교체해 달라고 조직에 보고했다. 자기가 남자라서 구성원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사실 그런 점도 있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있었던 일이나 윤자와 나눈 이야기는 전혀 보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학생출신 노동자인 선미가 이들의 지도선으로 되었다. 물론 선미는 본명이 아닐 것이다. 당시에는 으레 가명들을 썼다.

얼마가 지난 뒤 윤자가 소모임을 그만두고 공장도 그만두었다는 말을 들었다. 선미가 신돌석씨를 만나 전한 말로는 윤자가 신돌석씨에게 이 한마디를 꼭 전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연선이란 애는 없다구. 그런 애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 애라는 것이었다. 무슨 뜻일까? 세월이 많이 흐른 뒤 덕자에게 들은 이야기들과 윤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이리저리 맞추어 보았다. 뭔가 그림이 그려졌지만 신돌석씨는 의식적으로 그것을 완성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덕자 말로는 윤자는 남자만 보면 무서워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남자에게 자신이 여자임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한 번도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신돌석씨는 어째서 칼 들고 들어온 놈이 연선이라는 애만 겁탈했을까가 의문이었었다. 이제 뭔가 풀리는 것 같았다. 다시 만난다면,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아니 그때 그런 것을 좀 알기라도 했다면 좋은 상담을 해줬을 텐데.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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