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참배로 또 다시 호들갑이다. 일본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가 추계 예대제(例大祭, 제사)에 공물을 봉납한 것과 함께, 지난 18일에는 여야를 초월한 일본 의원 96명이 집단 참배한 것이 그 발단이 되었다.

우리 외교부 역시 통례적 투정인 양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며 반응했을 뿐이고, 중국 외교부도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을 따름이다. 아니 그 외의 다른 방법도 없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1868년 보신전쟁(戊辰戰爭)부터 제2차 세계 대전 및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일본군 전사자의 신위 총 246만여 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그 중 태평양전쟁 이후에 사망하여 안치된 신위가 213만여 위로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더욱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의 전쟁범죄자가 합사된 관계로 지금도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많은 장소다. 그럼에도 국립현충시설을 따로 갖추지 않은 일본인(특히 우익)들에게는 일본제국주의와 국가신도(國家神道)를 상징하는 일종의 성지(聖地)와도 같은 곳으로 역할하고 있다.

우리와도 무관치 않다. 운양호 사건, 임오군란, 갑신정변, 청산리전투 등 우리와의 충돌로 사망한 33위의 위패도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징용이나 징병 등 강제로 끌려가 희생된 한국인 2만 1천여 명의 신위가 합사되어 있어, 우리에게는 아직도 큰 앙금으로 기억되는 공간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법적으로 일본 정부와 관계 없는 민간종교단체에 불과하다. 그러나 독특한 탄생 배경과 더불어, 천황제ᅵ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일본 국가신도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일본군국주의 전통이 스며있는 일본의 정치(인)의 중심 역할을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일본의 국가신도는 고대 제정일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미[神]·천황·국민·국가는 모두 조상이 같다고 보고, 인간의 정치와 신의 뜻이 일치할 때 번영한다는 시각이다. 1868년 메이지유신 때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정식 국교(國敎)였다.

1945년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일본을 항복시키고 국가신도를 폐지함과 함께 신사에 대한 정부 보조금과 지원을 금지했다. 그리고 천황의 신성을 부정하는 포고령도 발표한다. 이러한 조치는 전후 일본의 평화헌법에도 그대로 이어졌으며 이전에 정부가 관할했던 신사 역시 대부분 신사신도(神社神道)로 개조되었다.

그럼에도 일본의 신도는 일본 사회의 정서적 국교로서의 기능을 잃지 않았다. 이른바 일본의 공민종교(公民宗敎, civil religion)로서의 역할이 그것이다. 공민종교란 말을 처음 사용한 루소(J. J. Rousseau)는 그의 『사회계약설』에서 “한 인간이 그것 없이는 훌륭한 공민이나 충실한 백성이 될 수 없는 사회적 감정”이라고 정의하였다. 국교가 아니더라도 한 국가의 시민(국민)이기에 믿게 되는 국민적 신앙이 바로 공민종교라는 의미다.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로버트 벨라(Robert. N. Bellah)는 현대 미국에서 종교성과 국가정체성이 결합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공민종교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적용한 인물이다. 그 역시 공민종교 현상은 모든 국민의 삶에서 발견될 수 있으며, 이는 사람들의 역사적 경험을 초월적인 사실과 연관하여 설명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인들을 하나의 통일된 집단의 구성원으로 느끼게 하는 정체성의 근원, 또한 그들의 생활 속에서 재생산되는 국가적 상징과 과거에 대한 기억에 신성성 내지는 절대성을 부여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공민종교로서의 신도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가장 강하게 발산시키는 공간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다.

야스쿠니 신사는 매년 1월 1일 신년제(新年祭)로 시작하여 12월 31일 대불식(大祓式)까지 그 제례행사가 끊이지 않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일본에서의 야스쿠니 신사는 가족이나 조상을 기리기 위해 개인적 신앙으로서의 참배로부터, 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과 전범들을 국가적인 희생자로 간주하고 그들을 영원토록 기리는 국가적 숭배 의미로의 참배까지 다양하게 중첩되는 것이다.

특히 일본에서의 국가적 단결을 위한 상징적 제스처와 국민의 단결을 재활성화하는 역할로써, 야스쿠니 신사 참배만한 정치적 이벤트가 없다.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수단이나 통치의 한 방편으로 이용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우리가 반야스쿠니 시각(anti-Yasukunperspective)으로 일관하는 반면에, 일본에서의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담론은 민족주의(nationalists), 중도주의(moderates), 실용주의(progressives) 등, 다양한 시각이 있는 듯이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설은 설일 뿐, 실제 피해국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가지도자들을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지지하고 있다. 그들은 일본 정치엘리트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할수록 한국과 중국의 외교 공세에 맞서는 ‘용기 있는 정치인’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가령 한국이나 중국 같은 피해국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여전히 침략전쟁과 폭압의 상징으로 간주하고 있는 반면에, 가해국인 일본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위한 추모관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일본의 정상적 국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과 정치엘리트들 역시, 피해국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본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오는 것이 있어야 가는 것이 있는 법, 주는 만큼 받는 것이 세상사는 이치다. 그러나 주고받는 처사에는 명분이 따른다. 잘못이 있으면 반성하고 죄가 있으면 사죄하는 것이 악수(握手)의 시작이다. 진정한 화해는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에서 출발한다. 가해국인 일본이 피해국인 양 호도하는 상황에서는 웃음이 나올 수 없다. 채무자인 그들이 채권자인 듯 행세하는 판국에서는 얼굴을 맞댈 명분도 잃어버린다.

야스쿠니 신사는 수많은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개개인의 우여곡절을 떠나 그들 모두 전쟁이라는 역사 속에 희생된 인간들이다. 인간을 원망할 자격을 충분히 갖는다. 문제는 일본군국주의가 분명 세계사의 중대한 과오였다는 것이다. 그들 대다수가 그 패착에 의해 떠밀려 희생된 원혼(冤魂)들이다. 원망의 대상도 분명해진다.

제니퍼 린드(J. Lind)는 가해국과 피해국 사이의 신호게임(signaling game)으로 역사적 기억과 국가 간의 화해 및 협력을 바라보았다. 신호게임이란 정보를 가진 주체가 행동을 함으로써 신호를 보내면, 해당 정보를 갖지 않은 다른 주체가 이 신호의 영향을 받아 자기 행동을 선택하는 상황 이론이다.

린드는 일본 수상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한 일본’을 원하는 일본의 정치엘리트들이나 국민들에게는 피해국들로부터의 과도한 외교 공세에 단호하게 맞서는 ‘결의(resolve)’로 보여진다고 했다. 반면 피해국들에게는 선의가 아닌 적대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Lind, Jennifer. 2008. Sorry States: Apologies in International Politics. NY: Cornell University Press.)

안타까운 것은 야스쿠니 신사에는 아직도 화해가 숨쉬지 않는다. 호국이나 애국이라는 신호(signal) 속에서는 기껏 일본 내의 왜곡된 단결 밖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그곳으로부터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움틀 때에 대내외로부터의 진정한 화해의 신호가 다가갈 것이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195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대학에서 행정사를 전공하였고, 한신대학교 강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국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술로는 『단조사고』(편역, 2006), 『교계의 민족운동』(공저, 2008), 『한국혼』(편저, 2009), 『국학이란 무엇인가』(2011), 『실천적 민족주의 역사가 장도빈』(2013)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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