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년 동안 세상의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고 강물의 흐름과 강 건너편 사람들에 집중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 온 한 사람이 있다.

1997년부터 조선과 중국 접경 압록, 두만강 연안을 다니며 잊혀져가는 우리 민족의 일상을 영상과 사진으로 담아 온 조천현 작가다.

조천현, 『뗏목-압록강 뗏목이야기』, 176쪽, 보리출판사, 2023.10. [사진-보리출판사 제공]
조천현, 『뗏목-압록강 뗏목이야기』, 176쪽, 보리출판사, 2023.10. [사진-보리출판사 제공]

지난 2016년 10월 사진집 『압록강 건너 사람들』(통일뉴스)을 출간한 이래 2019년 사진이야기책 『압록강 아이들』(보리출판사)와 조중접경에서 만난 탈북자들의 실상을 담은 책 『탈북자』(보리출판사)를 잇달아 낸 조천현 작가가 이번엔 '뗏목'이라는 주제에 집중해 사진에세이집 『뗏목-압록강 뗏목이야기』(보리출판사)를 출간했다.

압록강 뗏목과 뗏목꾼을 처음 만난 2004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강가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며 찍은 사진 중 102점을 골라 감상을 곁들여 낸 책이다.

책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긴 이천리(803km) 압록강 물길을 따라 첫 떼를 띄우는 강 상류 량강도 김형직군의 동흥 물동에서 중류인 자강도 자성군 운봉호에 다다르기까지 긴 여정이 담겨 있다.

겨우내 통나무를 벌목하고 떼를 만들어 물길의 흐름에 따라 하류로 내려가는 동안 뗏목위에서 화덕을 만들어 밥도 지어 먹고 술도 한잔하며, 비·바람이 불면 노래도 부르는 사진속 뗏목꾼의 표정과 사계절이 풍요롭다.

지금 우리에겐 아무래도 낯설지만, 그 풍경과 사람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만도 않다.

비슷하다고 말하기엔 뭔가 부족하고 '똑같다'고 말하면 '그렇구나'라고 무릎을 칠만한 정서적 동질감이 있다.

작가는 "내가 뗏목을 사진에 담는 까닭은 사라져 가는 뗏목과 뗏목꾼들의 일상 생활을 기록하고 싶기 때문"이라며, "사람들의 얼굴을 담아내고 그 어떤 꾸밈이나 기교를 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멀리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자연과 함께 일하는 현장에서 꾸미지 않은 뗏목꾼들과 눈을 맞추며 소박한 얼굴을 보려고 했지, 그들을 통해 억지로 '조선(북한) 사회'을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자연의 물길을 따라 수백년동안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어져 온 뗏목과 뗏목꾼들의 삶을 통해야 지금 우리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지적인지도 모르겠다.

"...흐름에 맡기고 함께 가는 것/ 더 넓게 보고 더 깊이 느끼는 것/ 그것이 삶과 나란히 가는 길입니다."<흐름에 맡기고>

"소리쳐 불러도 들리지 않는 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흘러가야 합니다/ 오래 기다려도 만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가가야 합니다/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닿을 수 없습니다/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만날 수 없습니다" <다가가야 합니다>

"한길에서/ 또 다른 길로 떠나는 일은/ 하나의 삶에서/ 또 다른 삶으로 건너는 일은/ 신성한 생활이거니/ 어찌 노래를 부르지 않으랴// 강의 노래/ 바람의 노래/ 뗏목꾼의 노래/ 강은 흐르고 삶 또한 흐르니/ 무엇이 두려우랴// 여기 한세상이 있고/ 저기 또 한세상이 있으니/ 흘러 닿아야 할 것을 어느 삶인들 거부할 수 있으랴" <뗏목꾼의 노래>

그렇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뗏목이 지나는 곳은 조중 국경이라 촬영 장소와 시간을 제 마음대로 정할 수 없고, 오래 기다리다 빨리 떠나는 일을 헤아릴 수 없이 되풀이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말한다. "강은 경계가 아니다. 강은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길이다. 내가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이나 가고 싶은 땅은 먼 곳에 있지 않고 강 건너 바로 내 눈 앞에 있다"고. 

한가지 바람도 그것이다. 뗏목이 사라지기 전에 압록강 뗏목을 타보고 싶다는 것. 뗏목꾼들과 뗏목 위에서 하루를 보내고 그들이 사는 집에 같이 가서 술 한잔 나누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압록강 뗏목꾼(류벌공)의 작업 모습. [사진-보리출판사 제공]
압록강 뗏목꾼(류벌공)의 작업 모습. [사진-보리출판사 제공]

그리 멀지 않은 시절, 우리에겐 압록강과 두만강, 그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한강 상류에서 하천의 흐름을 이용해 '떼'로 엮은 통나무를 하류로 운반하던 '뗏목'의 기억이 있었다.

철도·도로가 여의치 않던 시절 대표적인 목재 운반 수단이었지만 육로교통의 발달과 함께 차츰 줄어들어 남쪽에서는 1943년 청평댐 건설로 강원도 인제-춘천을 거쳐 서울까지 이동하던 '북한강 뗏목'이 자취를 감추고, 정선 아우라지에서 동강-영월을 지나 서울 광나루까지 일천리를 내리던 '남한강 뗏목'도 1974년 팔담댐 완공으로 사라졌다.

지금은 희귀 사진과 '뗏목문화제'로만 명맥을 유지해 한갓 정취로 남아있는 뗏목이지만, 북에서는 지금 건설을 뒷받침하는 임업분야 '통나무'수요 보장의 주요 수단으로 의연히 12개 중요고지의 한 축으로 건재하다.

중국 조선인 문학평론가인 최삼룡 선생은 함경북도 무산에서 회령까지 내려가던 두만강 뗏목도 1970년대에 중단되었다고 했는데, 압록강 이천리 물길을 따라 백두산에서 멀리 신의주까지 목재를 운반하는 압록강 뗏목은 장관을 이루며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중이다.

백두산 일대에서 겨우내 생산한 통나무를 '떼무이터'에 집중시키고 '류벌공'들이 선별과정과 '떼바뚝치기'(뗏목만들기), '떼바뚝연결'(뗏목연결하기), '놀대(뗏목 방향 조종대)달기' 등을 마치고 난 뒤 두텁게 얼어붙었던 얼음이 녹고 수량이 많아질 무렵 물동(보, 洑)의 수문이 열리면 연이어 '떼'(뗏목)를 내린다. 

매년 4월 20일 무렵이면 '압록강에 첫 떼가 내렸다'는 소식을 전하는 [노동신문]은 올해 4월 20일자에도 어김없이 낭림산맥에서 발원해 압록강으로 흘러드는 장진강에서 '올해 첫 떼가 내렸다'고 알렸다.

압록강 뗏목 [사진-보리출판사 제공]
압록강 뗏목 [사진-보리출판사 제공]
압록강 뗏목 [사진-보리출판사 제공]
압록강 뗏목 [사진-보리출판사 제공]
압록강 뗏목 [사진-보리출판사 제공]
압록강 뗏목 [사진-보리출판사 제공]

책의 추천사를 쓴  최삼룡 선생은 "조천현의 이 뗏목사진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으로서 역사적 가치를 평가해 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라져 가는 것을 기억하려는 인간의 중요한 본능만큼 사라져 가는 것을 기록하려는 것이야 말로 역사일진대 이 책은 '뗏목과 뗏목꾼에 대한 이야기의 맨 마지막 한 토막'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격려일 터이다.

또 하나 "이 사진들을 통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들, 혹은 북조선 사람들, 혹은 북한 사람들, 혹은 압록강 건너 사람들의 지난 20세기말, 21세기 초 삶의 모습과 신체 동작과 얼굴 표정, 그리고 정신적 존재를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며, "사진마다 맥박치는 민족의 생존 상황에 대한 걱정과 민족의 밝은 미래에 대한 갈망, 그리고 민족 화합에 대한 간절한 소망..사진은 폭마다 모두 한 수의 서정시이고 102폭을 통틀면 한 편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작가의 남다른 집념이 이룬 눈부신 성과를 상찬했다.

곽재구 시인은 "뗏목의 흐름에 이데올로기는 없습니다. 함께 밥 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겨레의 숨결이 있을 뿐입니다"라며, "조천현의 『뗏목-압록강 뗏목이야기』는 언젠가 우리가 만나야 할 시정 가득한 압록강 여행을 꿈꾸게 합니다"라고 추천의 글을 썼다.

굽이치는 압록강을 유장하게 흘러가는 뗏목 사진을 보고나면 "70년 이상 겨레의 반쪽을 잊으려 애쓰며 살았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입니다"라는 시인의 고백이 가슴에 콱 박히는 '문학적 체험'을 하게 된다.

물길을 거스르지 않고 내려가는 저 뗏목이 당도하는 곳은 분명 일을 마친 뗏목꾼의 안도와 새 세상의 집을 짓는 활기로 넘칠 것이라 믿는다.

뗏목과 뗏목꾼, 떼와 류벌공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뗏목'을 "「명사」 통나무를 떼로 가지런히 엮어서 물에 띄워 사람이나 물건을 운반할 수 있도록 만든 것.≒강벌, 유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강 강(江)과 떼 벌(筏)을 쓴 '강벌', 흐를 류(流)와 떼 벌(筏)을 써 '유벌'이라는 한자어를 뗏목과 비슷한 말로 올려놓았다.

'떼'는 "나무나 대나무 따위의 일정한 토막을 엮어 물에 띄워서 타고 다니는 것. ≒부벌."이라고 하여, '뗏목'과는 구분해서 정의하기도 한다.

북에서도 같은 표현을 쓰는데, 약간의 차이가 있다. 

조선말대사전에는 '뗏목'이란 낱말은 없고 대신 '떼'와 '떼목'(발음은 뗀-)을 동의어로 분류하고 있다. '사이 ㅅ'에 대한 규정이 다른 탓일 뿐, 뜻풀이는 "① 긴 나무토막이나 통나무 같은 것을 엮어 물'우'(위)에 띄워서 타고다니거나 물을 '건느게'(건너게) 된 물건 ② (통나무를 물에 띄워나르기 위하여) 통나무 같은 것을 엮어서 무은 것. 흔히 사람이 타고 몰고나 배로 끈다."로 하고 있다.

뗏목 그 자체를 '유벌'로 풀이하는 표준국어대사전과 달리 '류벌'은 "흘러내리는 물을 리용하여 떼목을 몰아서 물아래로 내려보내는 일"인 '떼몰이'와 같은 말로 설명하는 것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뗏목을 모는 뗏목꾼은 '떼목군'과 '떼몰이군'이라는 표제어도 있지만 '류벌공'으로 많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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