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58년 개띠 노동자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설마 설마 했던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분노하면서도 낙심하고 두려움에 떠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신돌석씨는 이 모든 일이 우리가 진전한 데 따른 역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거대한 힘인 듯하지만 사실은 몰락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일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시작되었으나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고, 낡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으려고 완강히 버티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되돌리려는 세력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에 쐐기를 박고, 많은 사람들의 힘을 모아서 나가야 합니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귀한 삶이 존중받을 때 세상은 제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일을 위해 신돌석씨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삶들이 모여서 반드시 역사가 다시 제자리를 잡아가고 전진해 갈 거라고 확신합니다.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와 응원과 질책을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23. 9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새벽에 카톡 소리에 잠이 깼다. 신돌석씨와 아내 핸폰에서 동시에 울리니 크게 느껴진 것일까? 아니면 뭔가 기다리면서 깊이 잠을 못 잔 것일까? 힘찬이었다. 잠이 안 온다 했더니 이걸 기다렸던 모양이라고 했다. 뭔가 했더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었다는 것이었다. 뭐 이런 걸 보내려고 아빠 엄마 잠을 깨우나 하고 투덜대다가 다시 생각하니 이건 그저 그런 일은 아닌 듯하였다.

신돌석씨 가족 단톡방이 있었다. 신돌석씨, 아내, 힘찬이, 아름이, 사위 이렇게 다섯이 들어 있는 단톡방이었다. 힘찬이는 민주당을 지지자이지만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고, 아름이는 진보정당 지지자고 어느 정도 활동도 하였다. 사위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윤석열 비판에는 의견 일치를 보아도, 그 외의 정치적 문제에서는 첨예하게 대립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단톡방에서는 정치적 문제는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제 몇 사람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유자녀 혹은 몸이 아픈 본인들에게 장학금과 생활지원금을 지원해주기 위한 모임인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의 실행위원회 위원들과 함께였다. 그 모임은 80년대 말에 신돌석씨가 있던 지역에서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변강쇠라는 별명의 선배가 운영위원장을 하고 있었다.

3년 전에 있었던 2차 행사 때 수운회관에서 강쇠형을 만났었다. 신돌석씨도 지역에서 노동운동하던 사람을 추천하자고 해서 함께 논의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 3차, 4차에 추천을 했었는데, 벌써 5차가 된다고 하였다. 강쇠형이 얼마 전 연락을 해서 이날 실행위원회를 하니까 조언을 부탁한다고 하여, 조언은 못하고 의견은 말할 수 있다고 하고 나갔었다. 모임은 을지로에서 했는데 실행위원 중 한 사람의 사무실이었다.

어제 만난 실행위원 중에 인천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일을 한다는 분이 있었다.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이름이 경실이었다. 신돌석씨도 이전에 몇 차례 본 적이 있어서 서먹하지는 않았다. 그 사람이 회의 끝나고 술 마시러 간 자리에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었을 때 혼자 막걸리를 마시면서 울었다고 하였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이런 정서를 가진 사람이 신돌석씨 주변에서도 적지 않았다.

술자리가 끝나고 함께 전철을 타고 오는데 경실씨가 영장실질심사는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었다. 신돌석씨는 특별히 분석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언론에서 많이 나오는 대로 가능성이 높지 않겠냐고 하였다. 또 판사가 검찰독재의 보복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걸 무릅쓰고 영장을 기각시키는 엄청난 일을 하겠냐고 하였다. 경실씨는 진짜 그렇게 될 것 같냐고 되풀이해서 물었다. 신돌석씨로서도 아니면 좋겠지만 냉정해져야 하지 않겠냐고 답을 하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예상은 빗나갔다. 당장 경실씨에게 축하한다는 톡을 보내려고 했는데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그래서 아침에 보내리라 마음 먹고 좀더 자기로 하였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이 상황은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것일까? 검찰독재가 보기에 영장전담판사 개인의 일탈일까? 아니면 사법부의 반발 움직임일까? 사법부가 그야말로 법 논리 그 자체로 판단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정치적 함의가 없지는 않을 텐데 그 배경이 정말 궁금해졌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여섯 시였다. 톡을 했다.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겠네요, 아니 너무 기뻐서 술을 드시려나 하고 했다. 금방 답이 왔다. 오늘은 술을 안 마실 거예요, 울지도 않을 거예요.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지요. 이런 답이었다. 그렇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신돌석씨는 이 지경까지 온 것도 사실 이해가 잘 안 되었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얼마 전에 어느 진보 일간지에 논설위원이 쓴 글이 생각났다. 이른바 ‘불체포 특권’이라는 것이 반정치적 포퓰리즘의 일종이라는 것이었다. 헌법 제44조에 나와 있는 이 권리는 국회 회기 중에 의원을 구금 체포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행정부에 의한 입법활동 방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이 조항은 1600년대에 영국에서 왕권이 의회를 간섭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된 것이 최초라고 한다. 이어서 많은 나라들이 이 조항을 제정하였다.

이러한 헌법적 권리가 언제부터인지 국회의원의 비리에 대한 처벌을 막아주는 ‘특권’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론 정당들이 자당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이 권리를 악용한 점이 없지 않다. 그리고 국회의원의 도덕성에 문제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독재권력으로부터 입법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를 마치 국회의원의 범법을 지켜주기 위한 특권인 양 왜곡하는 것과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국힘당은 의원 대부분인 101명이 불체포 특권 포기 각서를 썼다. 국힘당에서도 반대하면서 서명을 하지 않은 의원이 있었다고 한다. 검사 출신인 이 의원은 불체포 특권은 헌법적 권리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는 법률적 이유를 반대 논리로 말했다고 한다.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그것이 통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분위기이다. 더욱이 국힘당 같은 곳에서는 마치 반란이라도 일으킨 듯이 여겨졌을 것이다.

사실 여당에서 회기중 불체포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행정부 혹은 대통령의 시녀가 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물론 국힘당은 그것으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산이 될 수 있다. 박정희 때나 전두환 때는 여당 의원이라도 자기들 마음에 안 들면 정보기관에 끌고 가거나 여러 가지 형사 사건을 만들어 내서 체포 구금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 것은 야당인 민주당이 불체포 특권 포기 선언을 한 것이다. 민주당에서 이른바 비명계 31명이 불체포 특권 포기 선언을 했다. 그들은 그렇게 하면 마치 방탄이라는 오명을 벗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일까. 아니면 대표에게 압박을 가해서 당권을 가져오겠다는 생각이었을까? 이들이 어떠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그런 일을 한 것인지 신돌석씨는 잘 알지도 못하고, 그다지 관심도 없다.

하지만 진행 과정을 보면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이재명 대표가 국회 대표 연설 중에 갑자기 이른바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여당과 언론의 비난이 견디기 어려워서 그랬을 수도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헌법에 보장된 회기중 불체포 권리는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지켜나갔어야 하는 것 아닐까? 검찰독재정권과 이에 부응하는 언론들이 만들어 내는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신돌석씨는 그런 점에서 상당히 실망스러운 점을 느꼈다. 그 뒤에 민주당은 결국 의총에서 친명계까지 포함하여 불체포 특권 포기 선언을 하였다. 정당한 수사라는 단서를 붙여서 어정쩡한 상태가 된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스탭이 꼬였다고 하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언론으로부터 온갖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후 정국은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과 그 이행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어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경실씨처럼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이 가결되자 우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들 개딸이라고 이야기하는 열렬한 지자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아직도 다수의 사람들은 진보가 추구하는 것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의 차이를 뚜렷이 구분하지 않는다고 신돌석씨는 생각했다. 아니 ‘아직도’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후에는 안 그럴 것이라는 말인데 지나온 과정을 보면 그렇게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이 가결된 뒤에 영장기각을 청원하는 청원서에 동의해 달라고 하는 요청이 있었다. 지역의 시민단체 일부에서 그 운동을 벌여나갔다. 물론 지역의 민주당과 함께 하는 듯하였다. 시민단체에도 민주당에 우호적인 단체가 있는가 하면, 거리를 두려고 하는 단체도 있었다. 구성원 중에는 민주당원이거나 거의 다를 바 없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입만 열면 민주당을 맹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 사람들 역시 그랬다. 시민단체보다는 민주당 지지자가 적기는 했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이야기해 보면 현실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에서는 그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노동자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 논쟁을 하면 당연히 강경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에 우호적인 시민단체에서 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강성욱이라는 사람이었다. 신돌석씨와 비슷한 또래로 오랫동안 알고 있었는데, 언젠가 보니 58년 개띠 동갑이었다. 늘 신중하면서도 조용히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한다고 들었는데 무엇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가 신돌석씨에게 연락을 해서 보자고 하더니 이재명 영장 기각 청원 운동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하였다.

어느덧 지역에서 함께 활동한 지도 30년 가까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속마음을 터놓고 말할 때가 많다. 신돌석씨는 실효성도 없고, 그런 것을 굳이 나서서 할 필요 있냐고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런 생각 속에는 이것 또 민주당이 하는 것이고, 진보세력이 이럴 때 호응해 봤자 그들의 뜻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찜찜한 마음이 있었다.

강성욱은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고, 민주주의의 위기이므로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말에는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마침 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을 했던 재야원로들이 이재명 대표 구속의 부당성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했다고 하였다. 신돌석씨도 유튜브로 봤다.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국민들을 움직일지는 미지수였다.

일단 강성욱의 제안에 대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논의해 보겠다고 했다. 틀림없이 반발이 있을 것이다. 신돌석씨 자신도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더욱 그렇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김민호나 최미숙에게 이야기하자 거세게 반발하였다. 반발의 요점은 지금까지 역사가 보여주듯 그것은 항상 민주당 지지를 위한 운동으로 귀결되더라는 것이었다. 그 점에 관해서 두 사람은 약간의 차이는 있었다.

김민호는 늘 그래왔듯이 민주당을 국힘당과 마찬가지로 자본가들의 정당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함께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최미숙은 민주당이 기본적으로 보수정당이지만, 반독재국민전선에서 함께 할 수는 있다고 보고, 그렇지만 진보세력이 단일대오를 만들기 전에 섣불리 함께 하려고 해서는 이용만 당한다는 주장이었다. 두 사람의 주장에 대해 신돌석씨는 문제를 느끼지만 이렇다 할 반론을 펴기가 어려웠다.

그런가 하면 국가보안법에 대한 공부 모임에 함께 했던 박준수는 그런 생각은 소아병이라고 하면서 지금 검찰독재는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공격해 들어오는데 그런 걸 따질 때냐고 하였다. 어쨌든 지역 내에 반검찰독재 단일대오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하였다. 과연 그것이 누가 주체가 되어 어떤 형식으로 될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결국 늘 그렇듯이 합의는 되지 않았다.

1987년부터 계속 있어온 일이라고는 하지만 신돌석씨 생각으로는 지금은 그렇게 단순하게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지역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들과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이전에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뿌리가 같다면 크게 문제 없이 함께 움직였다. 하지만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보기에 함께 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사실 민주당에서 크게 발언권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 문제는 선거 때만 되면 확연하게 나타났다. 후쿠시마 핵폐기수 투기 반대 서명을 함께 했는데 그 명단이 고스란히 선거 출마자한테 들어가는 일이 있었다. 후보 선정에서도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의 의견이 반영되기는커녕 자기들끼리 다 해결하였다. 한마디로 지역의 운동단체 등은 민주당을 밀어주기 위한 동원세력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이런 점들이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부채질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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