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1963년 10월 4일, 강북구 수유동 이준 열사 성체를 안장하고 난 직후 유족들 사진. [사진 제공 – 이양재]
1963년 10월 4일, 강북구 수유동 이준 열사 성체를 안장하고 난 직후 유족들 사진. [사진 제공 – 이양재]

1907년 7월 1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자정 순국한 이준 열사는 순국하신 지 56년이 지난 후 1963년 9월 30일 김포공항을 통하여 환국하였다.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47-1 건국빌딩 본관 1층에 상청(喪廳)을 차려 조문을 받았고, 10월 4일 지금의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산127-1에 안장하였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홍범도 장군 유해가 2021년 8월 18일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안장됐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1943년 10월 25일 오후 8시에 소련의 카자흐스탄 지역에서 서거하신 홍범도 장군은 2021년 8월 15일 환국하여 18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안장되었다.

1. 이승만의 욕심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로서 최초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1949년 8월 15일에 중앙청에서 거행된 건국공로자 표창식에서 ①대통령 이승만과 ②부통령 이시영에게 수여되었다.

이후 1953년 1월 28일에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 육군 장성이며 정치가 겸 외교관이며 작가 겸 기업가 ③밴 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 1892~1992)에게 수여하였고, 이어서 1953년 11월 25일에는 대만의 ④장개석(蒋介石, 1887~1975)에게, 1955년 11월 2일에는 에티오피아 제국의 황제 ⑤하일레 셀라시에 1세(1892~1975)에게, 1958년 4월 26일에는 튀르키예의 총리 ⑥아드난 멘데레스(1899~1961)에게, 1957년 9월 21일에는 베트남(남)의 초대 총통 ⑦응오딘지엠(1901~1963)에게 수여한다.

이것이 이승만이 권력을 쥐고 1960년 4.19로 몰려나기까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7인의 면모이다. 즉 이승만은 부통령 이시영을 형식적으로만 건국공로자로 인정하였지 철저히 외세에 의존하여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자신의 편의대로 이용한 인물이다. 매우 수치스럽고 허탈하다.

2. 윤보선의 노력과 박정희의 야욕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움켜쥔 박정희는 5월 20일에 첫 번째 군사 내각을 발표하고, 7월 3일에는 장도영이 퇴진하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하였다. 이듬해(1962년) 3월 1일에 허위 김좌진 오동진 조병세 안중근 윤봉길 이준 강우규 김구 안창호 신익희 김창숙 손병희 이승훈 한용운 최익현 이강년 민영환 등등 18인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한다. 이것은 윤보선 정부가 독립운동가를 표창한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이다.

그러나 같은 해 3월 22일 대통령 윤보선이 사퇴하자 박정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고, 그해 12월 17일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박정희는 자신의 친일 치부를 가리기 위하여 독립운동가를 우대하는 계획을 세우며, 1963년 12월 14일에 각종 상훈 관계 법령을 통합한 「상훈법」을 제정한다.

그러나 관동군 출신의 박정희는 1963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1969년까지 5년간 맥아더와 트루먼 등등 21명의 외국인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한다. 반면에 박정희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한 우리나라 사람은 조만식과 임병직 서재필뿐이다. 하지만 서재필은 미국으로 귀화하고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철저한 미국인이 된 사람이었다. 그것을 박정희 정부는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3.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제대로 수여하는 훈장이 되어가는 중인데

1981년 전두환 정권에서는 태국의 아홉 번째 국왕 부부에게, 1989년 노태우 정권에서는 김규식과 조소앙에게, 2008년 노무현 정부에서는 여운형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며, 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는 장면에게, 2019년과 2021년 문재인 정부에서는 유관순과 홍범도 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한다.

노태우 정권에서부터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수여에 신중한 모습이다. 박정희부터 유고로 대통령직을 그만두거나 퇴임하면서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등등이 이 훈장을 받았으나 전두환은 2006년에 서훈이 취소되었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독립운동가나 독립운동을 지원한 자에게만 수여되어야 한다. 정치가들에게 정치적 목적으로 수여되는 훈장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아니라 다른 명칭의 대한민국장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직접 한 자가 아닌 한 그 누구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을 자격이 없다. 국가는 다시는 외국인을 상대로 ‘훈장 장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

4. 이준과 홍범도를 위한 추모

서울 강북구 4.19로에 위치한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이준 열사 유해봉환 60주기 추모 특별전 “돌아오지 못한 헤이그 특사”가 8월 8일부터 11월 30일까지 열리고 있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서울 강북구 4.19로에 위치한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이준 열사 유해봉환 60주기 추모 특별전 “돌아오지 못한 헤이그 특사”가 8월 8일부터 11월 30일까지 열리고 있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이준 열사는 1963년에, 홍범도(洪範圖, 1868~1943) 장군은 2021년에 환국하였다. 이에 강북구 수유동의 근현대사기념관에서는 이준 열사 유해봉환 60주년을 추모하는 특별전 “돌아오지 못한 특사의 귀환”전을 우리 리준재단의 소장품으로 열고 있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 서거 80주년을 추모하는 사업은 수구파들의 동상 철거 논란으로 아무런 진척이 없는 상황을 보면서, 홍범도 장군을 모셔올 자격도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해 전에 이준 열사의 유족대표는 가짜 유족들의 논란에 이준 열사의 성체(聖體)를 고향 북청으로 보내 드리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외손이 아닌 친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에는 1963년 헤이그로부터의 환국이 결정되자 북에서는 매장 증명서를 들고 헤이그로 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던 것 같다.

이준 열사의 외손은 국내에 10여 명 있다. 그러나 독립 전쟁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후손은 이 지구상 그 어디에도 없다. 이런 홍범도 장군의 독립정신을 이어가야 할 정신적 후손은 남한의 육사 생도가 아닌 것 같다. 정녕 그렇다면 홍범도 장군의 정신적 후손이 없는 이 나라에서 그의 성체를 그가 온 나라 카자흐스탄으로 돌려보내자.

독립영웅 홍범도 장군의 1920년 모습. [사진 제공 – 이양재]
독립영웅 홍범도 장군의 1920년 모습. [사진 제공 – 이양재]

이달(10월) 25일이 홍범도 장군이 타계하신 지 80주년 기일이다. 이 영예스러운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을 제대로 추모하지도 못하는 나라, 이준 열사의 가짜 자손들이 나타나 진짜 자손들을 죽이려는 것을 못 본 척하는 이러한 나라가 진정 독립된 주권 국가인가? 지금의 자칭 보수파는 진짜 보수파가 아니다. 그들은 언제 개과천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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