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천주교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정전70년, 민간 남북협력의 미래를 그리다-신냉전과 남남갈등을 넘어 평화와 협력으로'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통일로 가는 첫 단추. 남북의 화해·협력 과정을 통해 경제사회문화공동체를 형성하고 최종적으로 정치공동체인 국가통합을 이루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첫 단계인 남북 교류 협력의 다른 이름이다.

남북관계 부침과 성쇠에 따라 가다 서다를 반복한 일은 있지만 윤석열 정부들어 남북 교류협력은 아예 전면 중단과 파산의 위기에서 움직이질 않는 형국이다.

1996년 창립 이래 27년여간 민간단체의 맏형격으로 대북인도지원과 개발협력사업 이끌어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정전70년 기념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남북협력이 처한 위기상황을 진단하고 그 미래를 위한 구상을 공유했다.

'정전70년, 민간 남북협력의 미래를 그리다-신냉전과 남남갈등을 넘어 평화와 협력으로'라는 주제로 서울 중구 정동 천주교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정책토론회는 당면한 위기를 반영하듯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민간 남북협력사업 단체 관계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진행됐다.

최완규 상임공동대표는 인사말에서 "남북관계는 미래의 시점으로 현재를 봐야 한다. 그렇게 보면 현재의 남북관계가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희망은 원래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마치 땅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면 자연스레 길이 되는 것이다"라는 노신(魯迅)의 말을 빌어 어려움에 처한 활동가들을 격려했다.

통일부 산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장을 지낸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는 기조발제를 통해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다시 우리 민간단체들의 힘으로 돌파해 낼 수 있도록 '낙관적 의지'를 갖고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화는 교류협력의 지속적 상태에 다름아니"라며, "교류와 협력만이 한반도의 궁극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열쇠이고, 교류협력은 압박과 제재보다는 대화와 외교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의 확산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 대표는 최근 통일부 조직개편과 예산 편성계획에도 반영되어 나타나듯 정부는 민간의 평화운동과 교류협력에 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이들에 대한 압박과 규제의 강도를 더욱 높이는 한편 '사전접촉신고 수리거부'라는 방법으로 민간의 교류협력 활동 자체를 원천 차단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코로나19 확산과 맞물린 북한의 국경봉쇄, 대북제재로 인한 환경적 조건도 문제가 되고 남북관계에 대한 북의 불신에도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민간 교류협력활동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부정적 인식과 제약으로 인해 크게 동력을 잃게 된 것으로 진단했다.

북 비핵화를 전제로 남북공동경제발전계획을 제시한 담대한 구상, 그린데탕트 등 남북 협력구상은 실행되지 않는 실속없는 말에 불과하다는 평가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현재의 남북 교류협력 상황은 그간 교류협력활동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이 매우 부족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협력 활동이 정권교체나 정세변화 등과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접촉과 물자반출 및 방북제도의 개선 △남북협력기금 지원 원칙과 방식의 재정립 △남북간 물류시스템과 3통(통행, 통신, 통관)의 안정화 △공적 지원기관의 설립 △주요 영역별 민관협업 플랫폼 구축 △남북 공동 협력기구 설립 및 운영 △국제협력과 유엔제재 면제 등 각 분야 지원 플랫폼을 개선·정비하고 관련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과제를 제시했다.

무엇보다 민간은 당장의 비관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합의를 이행하고 교류협력을 재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해 성과와 함께 신뢰를 쌓는 계기를 마련하는 일을 꾸준히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한반도 평화는 정치·군사적 신뢰구축과 함께 각 분야의 다양한 남북교류협력을 통해 가능하다고 하면서 정치·군사 근본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주장하는 북의 태도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의 부정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남북 교류협력의 필요성과 가능성은 분명하며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준비해야 한다는 보다 적극적인 의견도 제시했다.

엄주현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사무처장은 '기후위기와 포스트코로나 시대, 남북협력의 새로운 접근법 모색'이라는 재목의 주제 발표를 통해 "북측이 발전을 위해 동원할 자원 중 하나로 남측 민간단체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회의적이지만 북은 교류협력 필요성이 강하고 추진할 자세가 되어 있으며, 남측만큼 북과 교류협력을 추진할 의지와 방법 자금 확보 등을 고민하는 주체도 없다는 점에서 정세 변화에 따라 북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며 이에 대비한 남측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북 교류협력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필연적인 활동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남북 모두 교류협력을 필요로 한다는 인식이다. 특히 지속되는 기후위기의 위험에 처해있는 북으로서는 식량자급과 직결되는 기반시설 정비에 사활적일 수 밖에 없지만, 이에 필요한 많은 비용과 과학적 역량 등을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국제사회의 협력에 적극적인 사정을 감안하면 더욱 교류협력의 필요성은 커진다고 짚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비준 당사국이며 2015년에 채택된 파리협정의 참여국이기도 한 북은 두차례에 걸쳐 온실가스 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NDCs)를 제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지원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는 욕구가 강하고 관련 사업을 국제사회에 제안해 추진한 전례도 있는 만큼 국제사회에 남북 교류협력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유엔제재로 인해 모든 사업이 중단된 상황이지만 북 스스로 국제사회에 재정지원을 요청한 요청한 △국가기후변화센터 설립 △온실가스 인멘토리 전략 수립 △청정개발체계(CDM) 사업 촉진 △에너지 합리화센터 역량강화 △청정생산 및 에너지 효율향상 △에너지효율 표준 및 인증제도 수립 △청전강 소수력 발전사업 △CFLs/LEDs에 의한 백열등 대체 △기수정보서비스 및 기상관측망 개선 △대동강 유역 통합 수자원 관리 등을 토대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역개발사업 추진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보건의료 관련 사업으로는 북이 변화된 상황을 이해한 가운데 △의료장비 구축(엑스레이, 초음파, CT, MRI 등) △질병예방통제소 시설 확충 △제약산업의 현대화 △보건의료인 재교육 등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정치군사적 상황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민간 남북협력을 지속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 개입을 줄이고 민간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법률과 시행령 등 각종 규정 제정과 이를 뒷받침할 기금 지원 △정부와 민간의 정책협력 강화를 위한 각종 민관협력기구 설립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저변 확대 등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압축적으로 제시했다.

통일부가 교류협력을 위한 사전접촉신고에 대해 지난 7월 14건 중 9건 불수리, 8월 10건 중 8건 불수리 등 하반기들어 불수리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고(지난해 110건 중 4건 불수리) 있는데 대해서는 '민간 접촉 자체를 막겠다는 것이 정부의 정책'으로 판단된다며, 우려를 금치 못했다.

이날 토론회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센터 소장인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사회로 강영식 공동대표의 기조발제와 엄주현, 홍상영, 이태호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남북·대외관계 전망과 시민사회의 평화전략)의 발표가 진행되고, 지정토론자인 명수정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강우철 한국수출입은행 북한개발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이주성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사무총장, 최혜경 어린이어깨동무 사무총장, 조은성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수민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토론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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