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짧은 정상회담이 세계적 차원에서 강한 타격과 함께 긴 여운을 주고 있습니다. 두 정상은 4년 5개월 만인 지난 13일 러시아 극동지역 소재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그 내용이 발표되지는 않았습니다. 즉 두 정상은 회담 뒤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않았고, 공동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러 정상회담이 세계적 이목을 끈 이유는 김 위원장의 방러 이전부터 나왔듯이 두 나라가 ‘무기 거래’와 ‘군사기술 협력’을 논의하고 합의했을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그 핵심은 북한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에서 사용할 포탄 등 무기를 지원하고, 러시아는 북한에게 위성 개발 등 첨단기술을 이전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지금 시기 두 나라가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절대 가치’가 이처럼 딱 맞을 수가 없습니다.

엔데믹 이후 북·러가 전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에는 미국의 책임이 큽니다. 사실 북한은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가 끝나면 김 위원장이 미·중 전략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베이징으로 움직일 것이란 관측이 유력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러시아였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이 이 두 나라가 만나게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몬 형국입니다.

북한은 미국 등의 대북 제재로 오랜 기간 곤경에 처해 있었고,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 등의 대우크라 무기 공급 등으로 질곡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이 한반도 주변에서 한미,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을 수시로 해왔기에 북한으로서는 틈만 나면 움직일 태세였는데, 중국보다는 러시아에서 대북 수요가 더 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부세계가 북·러 만남을 두고 ‘위험한 만남’으로 치부하거나 지어 ‘악마의 거래’라고 비하하지만, 당사국들에겐 ‘절박한 만남’이자 ‘당당한 거래’인 셈입니다.

북·러 만남이 ‘미국’을 향해 ‘무기 거래’ 및 ‘군사기술 협력’과 연관돼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에 앞선 모두발언에서 “앞으로도 언제나 반제국주의 전선에서 러시아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푸틴 대통령은 회담 후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돕겠다는 뜻과 함께 “현재의 규정(안보리 대북제재) 틀 내에서도 (북러 군사기술 협력)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상회담 후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러시아 우주인들이 사용하는 우주복 장갑과 러시아제 카빈총을 선물했고,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에게 북한제 카빈총을 선물한 것에서도 상징됩니다.

북한과 러시아가 미국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린 것입니다. 두 나라 사이의 ‘무기 거래’는 유엔안보리 제재 사항이지만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이기에 유엔안보리에서의 새로운 대북제재나 대러제재를 비토해 무력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대미 공동전선’이라는 ‘명분’과 ‘군사기술 협력’이라는 ‘실리’를 명확히 하는 절박함과 당당함을 과시한 셈입니다.

북·러 군사기술 협력은 김 위원장의 방러 동선에서도 확인됩니다. 지난 13일 두 정상이 회담을 가진 곳이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입니다. 이곳은 북·러 간 군사협력 확대를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장소로 꼽힙니다. 회담 후 김 위원장은 15일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시에 있는 유리 가가린 전투기 생산공장을 참관했습니다. 16일에는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인근에 있는 크네비치 군 비행장에서 러시아 항공우주군 주요 장비들을 시찰했으며, 이어 블라디보스토크 율리시스만의 정박해 있는 핵추진 잠수함을 운용하는 러시아 태평양함대 사령부를 방문했습니다. 모두가 ‘군사기술’과 연관이 있습니다.

향후에도 북한과 러시아는 상호 군사협력을 본격화할 전망입니다. 푸틴 대통령이 평양 방문을 수락했으며, 이에 앞서 러시아 외무장관이 다음 달 북한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북·러가 ‘무기 거래’와 ‘군사기술 협력’이라는 지렛대로 미국이 가장 아파하는 곳을 시공을 초월해 때리는 모양새입니다.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관계가 전략적 수준으로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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