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균 / 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대원, 6.15산악회 회원

 

산행일자 : 2023년 6월 25일(일)
구간 : 도마치재~도마봉~신로령~국망봉~무주채폭포~적목용소
거리 : 9.7km (접속 4km 포함)
참여인원 : 21명


제주에서부터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산행일에도 시간당 16mm 정도의 강한 소나기가 예보되어 미리부터 우산과 우비를 준비하라고 공지가 되었다. 때문에 하루 종일 구름이 가득하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별건 아니지만 그래서 썬그라스와 팔토시를 배낭에서 빼놓았다.

하지만 하늘은 예상을 깨고 화창하기 그지없었고, 비가 오기 전이어서인지 매우 더웠다. 햇볕은 또 왜 그리 따가운지 꼭 나를 겨냥하고 내리쬐는 것만 같았다.

출발시 단체사진. 이번 4구간에는 모두 21명이 참가했다.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출발시 단체사진. 이번 4구간에는 모두 21명이 참가했다.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날씨 탓일까? 도로에서 벗어나 접속구간의 오르막이 시작하는 곳에서 갑자기 팔다리의 힘이 빠지면서 살짝 저려왔다. 시작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첫 번째 휴식지점까지는 일단 쉬지 말고 올라가보자 마음먹고 힘을 내 보았다. 하지만 지난 3차 산행 때보다 속도도 빠르고, 가파르기까지 해서 오르는 내내 호흡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번 한북정맥 3차 종주의 마지막 봉우리였던 도마봉에 오르니 선등자들이 정상석을 두고 기념촬영을 하며 후등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용정 대장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느라 도마봉 인증샷을 남기지 못한 이석화 대원에게 촬영을 권하지만, 이석화 대원은 무안한지 손사래를 친다.

도마봉 선등자들이 찰칵.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도마봉 선등자들이 찰칵.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도마봉은 그늘이 없어서 정맥 길을 따라 조금 더 전진하다가 숲으로 접어드는 내리막길에서 첫 휴식을 취했다. 이때다 싶어서 서효정 대원에게 맡겨 두었던 떡을 한 덩어리 받아서 얼른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오르는 중에 팔다리 저림은 멎었지만 그래도 떡을 먹고 나니 기운이 좀 났다.

그런데 다른 대원 한 분이 또 두통을 호소했나 보다.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속에 초콜렛을 먹어라, 물을 마셔라 하는 조언들이 들려왔다.

휴식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정맥 길을 종주하기 시작하는데, 떡을 먹어서인지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등산로 옆 가파른 산비탈 숲에 심어진 작물들. 등산로 옆에 차양막이 울타리처럼 쳐 있다.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등산로 옆 가파른 산비탈 숲에 심어진 작물들. 등산로 옆에 차양막이 울타리처럼 쳐 있다.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좁은 등산로 옆 가파른 산비탈 숲에서 고랑을 파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약초를 캐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고, 약초를 심으려고 산비탈에 밭을 일구는 중이었다. 무엇을 하는가 궁금했던 한 대원이 가까이 다가가자 고랑을 일구던 분이 가까이 오지 말라며 경고했다. 질문하려던 대원은 무안함에 제대로 묻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어느 정도 가다 보니 산비탈에 내려가지 못하도록 그물망이 쳐져 있고, 약초 재배지이므로 함부로 들어오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현수막도 걸려 있다. 조금 더 전진하니 그물망 너머로 파랗게 싹이 튼 약초들이 보였는데 오동진 후미대장이 산양삼 혹은 장뇌삼이 아닐까 추측한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등산로가 아니어서인지 좁은 등산로의 양옆으로 길을 침범하려는 수풀들이 가지를 뻗고 행진을 가로막는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보라색 작은 꽃을 피우고 있는 싸리나무다. 군대에 다녀온 대원들은 대번에 싸리 빗자루를 생각하고, 나는 화투에서 멧돼지가 그려져 있는 그림을 떠올린다. 서효정 대원이 그게 이 나무냐며 피식 웃는다.

싸리나무꽃.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싸리나무꽃.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어렵사리 숲을 헤치고 나아가니 키 큰 나무들이 사라지고 한 그루 참나무가 우두커니 서서 일행을 맞이한다. 나뭇가지에는 많은 산행단체들이 매달아 놓은 이정표가 매달려 있다. 그 가운데 ‘준희’라고 쓰고 한북정맥 827.8M라고 기록한 푯말이 눈에 띈다. 

전용정 대장이 말씀하길 준과 희라는 두 분은 부부인데 우리나라 대간과 정맥은 물론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분들이고 곳곳에 두 분이 만드신 이정표들이 있는데 아무 곳에나 함부로 이정표를 걸지 않는다고 한다. 615산악회 김재선 대장도 두 분에 대해서 아는 것 같았다.

참나무 너머를 바라보니 왼쪽으로는 화악산이, 오른쪽으로는 국망봉이 좌청룡우백호처럼 솟아있다. 아마도 우리가 선 그 자리가 명당자리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주변에는 이렇다 할 묘 자리 흔적이 없다. 어쩌면 관리되지 않는 오래된 묘가 수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참나무 쉼터.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참나무 쉼터.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참나무 쉼터를 지나고 나서는 어깨까지 자란 수풀들을 헤치고 뙤약볕을 뚫고 나아가야 했지만, 초원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에 빠져 사진도 찍으며 흥겹게 지나갈 수 있었다. 기차놀이 하듯이 초원을 가로지르는 대원들이 그대로 자연에 녹아들어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 모습을 보며 자연 속에 그대로 인간이 어우러질 때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즐거움도 잠시 계속되는 수풀과의 싸움과 따가운 햇볕의 공격은 대원들을 쉽게 지치게 했다. 그 와중에 김익흥 대원은 산등성의 나무들이 모조리 베어지고 새로 조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산림조합과 산주들의 이익을 위해 숲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에 대해 흥겹게 토론을 한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산림조합과 산주들의 이익이 보장되고 있다면서 말이다.

벌목을 한 자리에 조림되어 잇는 산등성이.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벌목을 한 자리에 조림되어 있는 산등성ㅑ이.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그렇게 큰 나무가 없는 수풀지역을 힘겹게 벗어나 오르막에 들어서니 다시 큰 나무들도 나오고 그들도 있었는데 겨우 한 사람만 지나갈 만큼 좁은 길이어서 모두가 쉬어 갈만한 공간은 나타나지 않았다. 

신로령을 앞두고 작은 공간이 나와서 선두 일행 예닐곱 명이 자리를 잡았지만 모두가 쉬기에는 공간이 작아서 후미에서 따라오던 대원들은 그대로 등산길에 머물렀고, 일부는 잠시 머물렀다가 신로령 정상으로 계속 전진했다. 

찌는 무더위에 슬슬 배고픔을 느끼던 대원들은 식사자리를 물색하게 되었고, 먼저 신로령에 도착했던 대원이 더 전진해서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자리까지 먼저 가서 일행을 불렀다. 나머지 대원들은 신로령에서 국망봉을 향하는 이정표를 배경 삼아 기념촬영을 하고서 식사자리로 이동했다.

가파른 길에서 한번 쉬면서..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가파른 길에서 한번 쉬면서..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식사장소에 도착하니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냥 좁은 등산로였다. 일부 대원은 더 나아가 보자고 이야기했으나, 또 다른 대원들은 길가의 풀을 헤쳐 누이고 배낭을 내린 뒤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꺼내고 있었다. 

결국 비좁긴 했지만 대원들은 일자로 앉아서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 식사를 했다. 각자 싸온 음식을 나누며 배를 채우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설사 급히 오느라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했어도 대원들이 싸온 음식을 나누면 누구하나 부족하지 않고 배가 부르게 먹는다. 

615산악회나 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산행에 오면 언제나 넘쳐나는 음식으로 몸무게가 늘어서 귀가하게 된다. 혹여나 누가 되었든 등산으로 다이어트 할 생각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맛있는 음식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숲은 사람을 살찌운다.

식사 중 오동진 후미대장이 서효정 대원에게 두통은 어떤지 묻는다. 아침에 두통을 호소한 대원이 서효정 대원이었다. 여전히 약간의 두통이 있는 것 같았으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산그리메.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출발하는데 처음부터 오동진 후미대장이 양호철 대원, 이방형 대원과 함께 한참 뒤에서 따라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양호철 대원이 초반에 무리하여 페이스 조절 실패로 체력저하가 왔기 때문이었다. 이방형 대원이 양호철 대원의 배낭까지 어깨에 짊어지고 후미에서 산행했다.

양호철 대원의 말을 빌자면, 지난번에 전용정 대장이 못 나왔을 때 임시대장이었던 김재선 대장은 자신의 속도와 체력으로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었기에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을 줄 알고 초반부터 선두에 섰다. 그런데 전용정 대장은 지난번보다 훨씬 빠르게 오르막을 오르고 충분히 쉬지도 않고 계속 진군하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첫 산행 때 발목을 다쳐서 어쩔 수 없이 낙오했던 일과 함께 자신을 음해하기 위한 수작’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건재하며 어떤 음해가 있어도 종주를 마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종문 대원이 갑자기 근육경련을 호소하며 아스피린 등 비상약을 구했지만 대원 중 누구도 아스피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후미대장이 가지고 있던 타이레놀을 먹고 통증을 잠시 줄였으나 국망봉을 지나 하산하는 내내 통증으로 고생을 했다.

국망봉에 이르니 그동안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화악산 정상도 보이고,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뙤약볕도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뻥 뚫린 시야와 멀리까지 이어지는 산그리메가 일품이다.

국망봉 단체사진.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국망봉 단체사진.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하산길도 짧지는 않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하산길 끝자락에 맞이한 무주채폭포는 정말 가뭄의 단비 같고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폭포상단에서 일부 대원들은 탈의를 하고 몸을 담갔다고 하고 먼저 폭포 아래로 내려온 대원들은 등산화를 벗고 발을 담근 채 열을 식혔다. 옛 선조들이 무술을 연마하고 자신의 기량을 뽐내던 곳이라 하니 과연 폭포의 시원함이 부러지지 않는 꼿꼿한 기상을 상징하는 것 같다.

무주채폭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조금 내려가니 오늘 산행의 끝자락인 용소폭포가 나온다. 훨씬 크고 시원한 폭포를 만난 직후여서인지 용소폭포는 왠지 아기자기하다.

무주채폭포 단체사진.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무주채폭포 단체사진.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이날 산행은 원래 국망봉을 지나서 훨씬 더 종주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전 대장의 선견지명으로 산행거리를 대폭 축소했기에 무더위로 인한 체력저하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용소폭포 포토존에서 멋진 포즈를 취한 산사나이 이종문 대원.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용소폭포 포토존에서 멋진 포즈를 취한 산사나이 이종문 대원.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보통 종주라고 하면 많게는 30여 Km에서 적게는 20여 Km를 단번에 걷는 게 일반적이다. 일반적인 체력으로는 평지를 하루 20~30Km씩 걷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산길은 웬만한 체력으로는 도전하기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종주를 진행하지 않는다. 만약에 그렇게 강행군을 했다가는 낙오는 물론 애초 시작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거다. 우리는 종주에 참가하는 우리 대원들의 체력에 맞게 속도와 거리를 조절하여 산행한다. 비록 전체적으로 더 많은 횟수, 더 많은 거리를 산행하게 되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속도로 우리의 거리를 완주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속도로 우리의 거리를 완주할 것이다."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우리는 우리의 속도로 우리의 거리를 완주할 것이다."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