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의 나이에 1980년 5월의 광주를 겪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좀처럼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던 한 청년이 있었다. 

'사평역에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줌의 눈물을 불빛속에 던져 주던 시인이었다.

이제 시인은 기다리던 막차를 만났을까?

그곳에서 태어나 '광주'를 만나고, 시를 쓰던 그날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 어느새 나이 칠십을 넘긴 곽재구 시인이 등단 이후 처음으로 동시집을 펴냈다.

글쓴이 곽재구 그린이 펀그린 『공부 못했지?』, 도서출판 보리. 155쪽 [사진제공-도서출판 보리] 
글쓴이 곽재구 그린이 펀그린 『공부 못했지?』, 도서출판 보리. 155쪽 [사진제공-도서출판 보리] 

『공부 못했지?』가 제목이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공부 못했던 사람은 이 말 한마디에 지레 주눅들어 움찔하거나 갑자기 속에서 천불이 나기도 한다.

왜 하필 이런 제목일까. 우선 동시집의 표제시를 보자.

서울에서 명문대학을 나와 농부가 된 서른일곱 살 외삼촌에게 어린 조카가 '공부 못했지? 그래서 농사짓지?'라고 묻는다. 다른 집 허수아비는 다 무서운 얼굴인데 외삼촌이 만든 허수아비만 웃고 있어서 또 묻는다. '공부 못했지?' 그럼 외삼촌은 허수아비 곁에서 '응 공부못했어'라며 웃는다.

아이는 그런 외삼촌이 참 좋다. 꿈꾸는 자신의 모습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랑이 깊어서 바람의 나이를 계산하고 별의 냄새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존재이다.' 시인의 말이다.

3단 구구단을/ 열흘 동안 외우는 것보다// 그림 그리는 것이 좋다/ 바흐 인벤션 연습도 좋다// 머리뼈만 보아도 공룡 이름을 말할 수 있다// 하늘의 별자리를 외웠으면 그새/ 다 외웠을 것이다// 3단 구구단을/ 외우지 않는 나는// 문제아다/ 하나도 슬프지 않다 ('문제아' 일부)

공부에 대한 아이의 고민은 사뭇 진지하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 할 거니?// 엄마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3단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한 지 사흘 지났는데/ 아직도 못 외우다니 부끄럽구나// 엄마가 어제/ 내게 한 말이다// 3단 구구단과 나/ 둘 중 하나를/ 엄마는 선택해야 할 것이다 ('둘 중 하나' 전문)

3단 구구단 외우기 싫어하는 아이는 밤 하늘 초승달을 바라 보며, 지금은 초승달 곁으로 조금씩 다가가 업히는 샛별이지만 나도 오래 오래 살다보면 초승달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잠기곤한다.
  
그래서 '늙은 아이'가 된 시인은 "'공부해라, 공부 잘해야 한다!'고 말하지 마세요"라고 어른들에게 당부한다. 공부 잘하고 명문대학을 나왔지만 형편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수없이 보지 않았냐고 말이다.

아이들에겐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렴. 그것이 인생이란다"라고 말한다.

동시집을 펼쳐 보는 순간 TV 화면에선 폴란드를 방문한 대통령이 언제 끝날지 모를 우크라이나 전쟁의 재건 프로젝트에 참여를 요청받았거나 수주한 규모가 66조원 규모라며 환히 웃고 있다.

파괴와 죽음의 고통이 온 대지를 휘감고 있는 그 땅을 배경으로 '제2의 마샬플랜', '한강의 기적 재현'이라는 자막을 뿌려대며 소식을 전하는 앵커의 표정도 밝게 상기되어 있다.

필시 공부를 잘했을 이들이 만들어 펼쳐보이는, 매몰차고 살기띤 고약한 풍경이다.

3단 구구단 외우기가 싫은 아이들의 친구는 '밤이 되면 유리창 밖에 혼자 서 있는, 슬픈 눈을 가진 '눈사람''이고 '엄마 말 안듣고 선생님 말 안들어서 벌 받는, 시멘트 보도블록 틈새에서 핀 '노랑 민들레''이다.

'풀숲에 죽어가는 지렁이한테 앞발로 툭툭치며 '여기서 잠들면 안돼'라는 걱정스런 인사를 하다가, 친구들을 불러 모아 지렁이를 자기 집으로 옮겨서는 식사시간마다 잊지 않고 '고마워요. 당신을 잊지 않고 정직하고 씩씩한 개미가 될 거예요'라고 인사하는 지혜로운 '개미''를 비롯해 아이들에겐 어른들이 모르는 친구들이 많다.

시원한 바람을 쐬고/ 새 울음소리를 들으면// 우리 집 벽시계도/ 새 울음소리를 낼 것이다('벽시계' 일부)는 기대로 하루에 한번 창밖 오리나무에 벽시계를 걸어두는 이 아이들에게 구구단 외우는 건 참 고역이겠다.

아이들의 귀에는 아침부터 씽씽 우는 매미 소리가 "밥먹고 놀아라. 밥먹고 놀아라"로 들린다. 

매미들이/ 내 꿈을 어떻게 알았지?// 내 조상 중에/ 매미가 있었는지 모르겠다('여름 아침' 일부)는 천진함에 흠뻑 빠져든다.

읽다보면 어느새 '늙은 아이'가 되어 토끼풀꽃 두송이를 묶어 만든 꽃시계에서 '째깍째깍' 시곗바늘 소리가 들리고, 고추잠자리가 '메롱'하며 '팔랑팔랑' 날아가는 모습을 눈으로 쫓는 내 모습이 보인다.

시편의 갈피 곳곳에 나오는 44점의 그림은 독자를 속절없이 '늙은 아이'가 펼치는 상상속으로 몰입하도록 한다. 캐나다에 거처를 둔 펀그린(FERN GREEN, 초록고사리)이 그렸다. 

그러고 보면, 바람의 나이가 꽃향기와 동갑이라는 걸 느끼고 하늘의 별은 한 아이가 태어날 때, 이불에 쉬할때, 강물에 종이배를 띄울 때 반짝인다는 비밀을 알아채는 그쯤 어딘가에 '기다리던 막차'는 당도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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