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이 지났을 뿐인 정권에 대해 '퇴진'과 '타도'가 빗발치는, 이런 현상이 분명 정상적인 건 아니다.

역대 최소 득표차인 0.73%, 24만 여표 차이로 당락이 갈린 대선결과를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이른바 보수와 진보의 진영갈등이 유독 심해서 나타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절차와 결과에 대한 이의제기도 뚜렷이 없다. 어쨌든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어 돌아가는 4년 단임 대통령중심제 권력구조에서 '승자독식'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다.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제도의 한계는 분명하지만, 결과가 분명해진 지금 그런 걸 곱씹는 건 생뚱맞기도 하고 아무튼 때늦은 일이다.

그럼 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소화불량'을 호소하고, 매일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고 '윤석열 퇴진'의 목청을 돋울까. 불과 1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삶은 너무나 고달픈데, 남은 집권기간에 뭔가 더 나아질 것이란 '기대'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자유와 법치와 인권의 보편가치에 기반하겠다는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의 발표는 귀가 아프도록 반복되지만 콧방귀만 뀔 뿐 귀기울이는 이는 없다. 세계의 대격변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와 있고 원치 않는 전쟁에 휩쓸릴 것 같은 공포는 날로 커지고 있다.

미국발 금리인상이 직격한 고금리 상황에 공공요금은 가파르게 오르고 월급은 제자리 걸음, 거기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전세보증금까지 계산하면 3천조에 육박한다는 가계부채는 매일 매일 이들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위기와 공포가 만연한데, 국가가 나의 일상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사라지고, 더욱이 국가는 그럴 생각이 1도 없다는 절망에 몸서리치면서 다시 거리엔 '퇴진촛불'이 켜진지 오래다.

'퇴진'은 '시기상조'라는 판단도 있지만, 오히려 지금의 고민은 '어떻게'로 모아지는 것 같다. 그만큼 안팎의 형편과 삶의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에 정부를 반대하는 쪽에 제 편을 많이 모으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한편으론, 이런 때일수록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치열하다.  

원희복, 『진보 재구성과 집권전략』, 썰물과 밀물, 286쪽 [사진-썰물과 밀물 제공]
원희복, 『진보 재구성과 집권전략』, 썰물과 밀물, 286쪽 [사진-썰물과 밀물 제공]

[경향신문] 기자로 재직하던 2018년 『촛불민중혁명사』를 쓴 원희복씨가 최근 『진보 재구성과 집권전략』을 펴냈다. 현장을 기록해 온 기자의 안목이 돋보이는 성찰의 산물이다.

무엇보다 지난 2017년 압도적인 '촛불혁명'의 기운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왜 불과 5년만에 몰락했으며, 촛불민의는 이토록 잔혹하게 배신당했는지에 대한 강렬한 문제의식이 있다. 당연히 신랄한 비판이 이어진다.

문재인 정권의 실패는 '거저 얻은 권력에는 절박함이 없다'는 소제목으로 압축 정리된다. 

그에게 문 전 대통령은 "정치적 판단보다 법률적 판단을 우선시하고 법률가로서 원칙을 강조했지만 단호하지 못하고 신중했지만 소심했다."  

'노무현의 죽음이 그를 정치로 끌어들인 것이지 스스로 정치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익숙한 '비서정치'로 일관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은 촛불혁명의 계승자가 아니라 촛불혁명에 편승했다'는 냉정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4년 연임제 권력구조와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은 정치개혁을 위한 핵심 과제였지만 '공론화 과정'도 충실하지 못했고 추진 의지도 분명치 않아 마치 '학술회의 발표'하듯 한 끝에 결국 불발에 그쳤다. 

국회의원선거제도는 '다당제를 가능하게 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표방했으나 지역구 출마자없는 위성정당으로 비례배정을 받은 후 합당이라는 최악의 꼼수가 뒤섞이면서 최악의 참사로 귀결됐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표의 확장성 부족이라는 이유로 촛불세력을 배척하고 나중엔 오만에 취해 스스로 이탈하는 과정이자 결과이다.   

저자는 이를 '촛불세력의 분열'이라고 칭하며, 결국 촛불정부의 목락을 가져 온 가장 큰 원인이 됐다고 진단한다.

이밖에 △종북몰이가 두려운 586세력의 이중성 △인사실패로 야기된 부동산 문제 △방치한 언론개혁 △미완의 세월호 진상규명 등의 제목으로 180석을 가진 민주당의 오만과 오판에 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으로 다뤘다.

그가 보기에 "민중이 촛불혁명으로 헌상하고 그것을 앉아서 받은 문재인 정부는 불과 5년만에 막을 내렸다. '적폐청산'(積弊淸算)과 '재조산하'(再造山河)가 역사적 사명임을 자각했던 민주당 20년 집권론 역시 허망한 공언에 그쳤다."

치밀한 관료장악에 대해 고민했던 대통령 노무현과 관료로부터의 포위를 극복한 성남시장 이재명의 사례를 제시했다. 

문재인 정권이 관료장악에 실패함으로써 결국 '검찰정부'라는 또 다른 관료정치를 불러오게 됐다고 질타했지만 앞선 선례는 곱씹어 소화시켜야 한다는 당부와도 같다.

조국 전 장관과 문재인 정부에 대거 참여했던 참여연대, 과거 학생운동을 했던 일부 인사들의 행적과 언행에 대한 매우 구체적고 직설적인 비판도 나온다.

꽤 많은 실명이 등장하고, 그 이름 앞엔 '무능'과 게으름', '줄서기'와 '변절'의 불명예가 붙었다. 그 점이 때로 과하게 느껴지거나 경우에 따라 불편함 또는 불쾌감이 들 수도 있겠다.

아무튼, 드러난 현상의 이면을 현장의 용어로 명쾌하게 분석하는 글을 읽는 묘미가 있다. 무엇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생각해 보아야 할 많은 문제의식을 건져올릴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서문에서 '민중의 희생과 힘으로 이룩한 촛불혁명의 발흥사를 썼으니, 그 쇠퇴에 관한 역사도 정리하겠다는 생각'이라고 책 발간의 변을 밝혔다.

한편으로는 "이 책은 망가진 개혁진보 세력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가동하기 위한 것"이며, "개혁진보 세력 재구성을 통해 재집권을 하는, 그것을 위한 야전 교범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며 목적과 기대도 분명히 했다.

엄밀히 구분해 표현한 바에 따르면, 이 책에서 말하는 개혁세력은 민주당과 시민단체이고, 진보세력은 진보당과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과 노동, 통일, 농민, 빈민 등 민중단체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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