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남북공동선언 23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남측 정부가 난데없이 북측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3년 전인 2020년 6월 16일 북측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입니다.

통일부 대변인은 그 이유로 “오는 16일부로 완성되는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중단하고 국가채권을 보전하기 위해” 라고 들었습니다. 즉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가 발생하거나 그 사실을 인지한 때로부터 3년이 지나면 사라지는데, 오는 16일 소멸시효가 도래하기에 그전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입니다.

북측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인한 손해액은 연락사무소 청사 건물에 약 102억 5000만원, 인접한 개성공단종합지원센터 건물에 약 344억 5000만원 등 총 447억원 가량으로 책정됐습니다. 상당한 금액입니다.

돌이켜보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는 지난 2018년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의 ‘4.27판문점선언’ 합의에 따라 같은 해 9월 14일 개성공단에 설치됐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2년 뒤인 2020년 6월 16일,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으며, 이튿날 김여정 당 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해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했던 것입니다.

손해액으로 청구한 액수도 액수이지만, 특히 이번 소송은 남측 정부가 북측 당국을 대상으로 제기한 최초의 소송이라고 합니다. 남측은 3년이 지난 지금 ‘대북 최초 소송’이라는 이런 전례 없는 일을 왜 저질렀을까요?

남측 당국의 의도는 미리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6.15선언 23주년 하루 전이자 앞에서 밝힌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바로 앞두고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대북 적대 메시지 효과를 극대화하려 한 것입니다. 또한 6.15선언 전에 제기함으로써 그나마 얼마 안 되는 6.15관련 행사와 그에 따른 모처럼의 통일 분위기 조성에 찬물을 끼얹고자 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6.15선언 주간이지만 민족화해의 ‘화’자도 나와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소송에는 통일부가 앞장섰습니다. 민족화해를 위해 고심해야 할 부서가 민족갈등을 부추긴 셈입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소송의 피고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원고를 ‘대한민국’으로 명기했다면서 “이번 소송은 북한이 국가가 아닌, 민법상 당사자 능력을 가지는 비법인 사단이라는 전제 하에 불법행위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당국자는 그 근거로 “헌법 제3, 4조와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북한은 반국가단체의 지위와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당사자 지위를 모두 가지고 있으나, 남북기본합의서와 남북관계발전법은 남북 관계가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면서 소송에 이르기까지의 법률 검토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통일부의 이런 아이디어와 조처는 간교한 술수일 뿐입니다. 그 이유는 남북관계의 핵심을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나오는 저 유명한 구절인 “쌍방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를 두고, 그 해석을 교묘하게 비틀었기 때문입니다.

이 ‘특수관계’라는 표현은 남북관계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 한해서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니라는 의미이지, 반통일과 적대시 하는 과정에서도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즉 남북관계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특수관계라는 것은 남북이 평화통일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의미이지 갈등과 대립을 위해 서로 싸우자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꽉 막힌 남북관계입니다. 6.15선언 23주년을 맞아 남측이 북측에 대해 대화 제의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잠자코 있기는커녕 손배소 제기라니요, 참 대책 없는 정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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