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 성장과 급속한 세계화를 겪으며 우리 입맛도 변하고 있다. 큰 건물에는 으레 브랜드 커피숍이 들어서고 심지어는 한 건물에 커피숍만 여러 개인 곳도 많다. ‘입맛이 가장 보수적’이라는 고정관념도 이젠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평범한 우리 보다 더 극적인 환경 변화를 겪으면서도 어머니 손맛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특별한 사연을 담은 글들이 책으로 엮였다.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들녘)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저자인 탈북민 위영금은 중국에서 북한으로 이주한 부모님과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구 고향에서 자랐고 1998년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머물다 2006년 남한에 정착했다.

위영금,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 들녘, 2023. 5. [갈무리 사진 - 통일뉴스]
위영금,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 들녘, 2023. 5. [갈무리 사진 - 통일뉴스]

‘그리움을 담은 이북 음식 50가지’라는 책의 부제만 보면 북한 요리책인 줄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인생역정을 음식을 매개로 솔직하게 풀어낸 자전적 에세이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남한. 어린 시절 사회주의 북한과 90년대 중후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의 북한, 잠에서 깨어난 거인 중국과 풍요로운 지금의 한국... 시간과 공간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지만 저자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매끼를 해결하며 자신의 삶을 헤쳐나가고 있을 따름일 터.

“구수한 된장국 냄새는 날이 저물도록 뛰노는 아이를 집으로 불러들이며, 우리의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여느 ‘조선 사람’이라도 공감할 문구는 어느새 “먹거리가 귀해지면서 시래기도 귀했다...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시래기를 밥상에 올리기 시작한 것은 고난의 행군 이후이다”로 바뀐다. “시래기 된장국에 강냉이 가루나 밀가루를 반죽해 뜯어 넣으면 뜨더국이 되고, 반죽한 재료를 칼로 썰어 넣으면 칼국수가 된다.”(204-205쪽)

그러나 이것마저도 호사일 정도의 극단 상황도 있다. “힘없는 사람들이 멀리는 가지 못하고 집 근처 소나무부터 벗기기 시작한다... 껍질만 가득 넣어 만든 송기떡은 최후에 먹는 음식이다.”(182-183쪽) “옥수수가루로 만들어 굳으면 꼬장꼬장 굳어져 꼬장떡이다... 꼬장떡을 먹으면 살고 먹지 못하면 죽는다.”(159-161쪽)

그렇다고 북한이 항상 어려웠던 것 만은 아니다. 70년대 초반까지는 ‘사회주의 북한’이 남한보다 더 잘 살았다는 것이 통설이다. “겨울에는 어디를 가나 명태 세상이다. 여름에는 집집이 마른 명태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상점에 가면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팔았다.”(60쪽) ”1960년대에 태어나 50~60대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은 명태를 포함해 자연산 생선을 넘치게 먹었다.”(245쪽) “고급주, 소주, 맥주 등 술의 종류도 다양하다. 지역에 따라 여러 술이 있다. 개성은 인삼을 넣은 개성고려인삼술이, 자강도 강계에서는 포도를 심어...”(138쪽)

손 안에 들어올 만큼 작은 크기의 책을 가볍게 잡았지만 300쪽에 달하는 결코 가볍지 만은 않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탈북민들이 국정원 조사를 거쳐 처음으로 입소하는 ‘하나원’에서 만나는 명태와 오징어부터 남한 음식은 물론 갑작스런 중국의 시집살이를 환영해준 찰떡부터 중국 조선족 음식까지...

간난신고를 거친 탈북민의 음식이야기는 이미 인생이야기가 버무려지고 어느덧 저자의 굴곡많은 삶에 가슴이 젖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함경도를 고향으로 둔 저자가 평안도의 소월과 백석의 시에 뒤늦게 눈을 뜬 것도 저자의 글쓰기에 힘을 보태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과 비영리 단체 ‘내고향 만들기 공동체’를 만들어 명태김치와 꼬장떡 등을 만들어 나누는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가 하면, [경기신문]에 칼럼을 썼고, [통일뉴스]에도 간간이 행사 소식을 전하고 있다.

저자는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먹은 시간과 살아온 시간이 곧 나였다”고 말하고 있다. 글을 읽으면서 저자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고 음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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