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북)정치학 박사/ 사, 부산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통일로 평화를 노래하라> 저자

 

북의 ‘수령’ 개념만큼 핫한 이슈는 아마도 이 지구상에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러함에도 이 ‘수령’ 개념만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단어도 없을 것이다. 개념 자체는 아주 단순하지만, 그만큼 여러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는 말과도 같다. 해서, 북의 ‘수령’ 개념을 이해하자면 다음과 같은 전제는 꼭 필요하다. ‘수령’ 정의를 수용하고, 못하고는 그 수용자의 철학적 자세와 사유적 믿음 체계에 따른 사회과학적 자유이다. 하지만, 그것과 ‘묻지마’식 이해에 따른 우상화는 ‘수령’ 개념을 미신화하고, 이를 무조건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매우 나쁜 인식 습관이다.

즉, 북의 수령에 대한 ‘우상화’적 인식은 수령을 마치 숭배의 대상으로 떠받들어지는 신격화와 동일시한다. 그래서 마치 이는 신계(神界)에서 인간계(人間界)로 내려온 리바이어던(Leviathan)된 괴물과도 같고, 그 괴물에 대해 북의 모든 인민은 절대화, 신격화, 무조건화로 숭배하고, 섬겨야만 하는 그런 현대판 토테미즘 신봉자, ‘불쌍한’ 국가구성원으로 전락하는 극단으로서의 의미전달만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북의 ‘수령’ 개념을 그렇게 보려 하지 않으려 한다. ‘사유적 믿음 체계에 따른 사회과학적 자유’는 존중하되, 북의 ‘수령’ 개념은 북 자신들의 국가이념 체계와 통치이념, 그리고 자국의 지도 사상으로서의 주체사상에 기반한 정치·사상적 개념이자 사회과학적 용어이고, 더 중하게는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과 전통에 기반한 그 연장선상에서 정립·정의할 수 있는 그런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또한, 이 글에서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북의 수령이 독재자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려 한다. 다름 아닌, 이 지구상 존재했던 그 수많은 독재자의 독재 기간을 비교해 북의 수령(최고지도자)이 진정 독재자인지, 아닌지를 검증하고자 한다. 그 한 예로 대한민국에서 독재정권의 대명사였던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은 불과 18년에 불과했고, 이 18년과 아래 표에 예시되어있는 모든 독재자의 집권 기간을 합쳐도 65년밖에 되지 않는다.

인물

집권기간

나찌즘의 대명사가 된 독일의 히틀러

12

파시즘의 대명사가 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20

세기적(?) 독재자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15

 

그런데 북은 이들 총량으로서의 합보다도 훨씬 더 많은 70여 년을 수령이 장기 집권한다? 절대 ‘독재’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해서, ‘독재’로만 설명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가설로 설정해 설명해져야만 한다.

그 첫출발로 다음과 같은 가설을 한번 상정해보자. 비유적 접근이다.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 대통령을 한 개인이 아니라고 본다면, 같은 논리로 사회민주주의체제에서 수령도 한 개인이 결코 될 수 없다. 또한,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인기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것을 우상화라고만 비난할 수 없는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북측 인민들이 자기 지도자를 열렬히 사랑하고 아끼는 것을 우상화라고 비난만 할 수 없다.

2022년 9월 7일 <로동신문>에 실린 동태관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는 명약관화하다.

“혁명의 수령은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사상과 위업, 민족의 운명개척과 인민의 절대적 신뢰, 거창한 세기적 변혁과 더불어 역사에 출현한다. 국가통수나 정치지도자는 선거나 지지율에 따라 결정되지만 수령은 인민이 심장의 가리킴으로 스스로 우러르게 되는 것이며 전 인민적인 총의와 민심의 분출로 높이 모시게 되는 것이다.”

위 개념 정의는 우리가 얼마나 기간 잘못된 인식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고 아주 ‘깊은’ 확증편향에 빠져있었는지 확인되고, 왜 새로운 인식으로 전환해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역설적으로 증명된다, 해서, 문제는 과연 진정으로 그런 인식을 뛰어넘고자 하는, 혹은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신념이 있을까, 이다.

다음과 같은 힌트로 그 정답을 한번 찾아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즘을 전체주의로 낙인(烙印)한 일군의 반공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체제가 확산일로에 있을 때 오직 자본주의 체제로만 이 지구상 세계가 유일하게 구성되어야만 한다고 설파하며 나치즘과 스탈린주의(Stalinism)를 동일시하는 교묘한 술수를 부렸다. 반(反)사회주의 책동이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같은 논리로 북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북의 수령체제는 스탈린주의를 모방하여 태어난 전체주의이니 고로 북의 사회주의는 전체주의이고, 그런 전체주의는 반드시 멸망해야 한다는 논리의 성립이다. 해서,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백번 양보해 소련의 사회주의가 스탈린주의 때문에 망했다는 것을 수용한다하더라도 북의 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 체제를 띠는 것도, 많은 사회주의 국가가 멸망한 것처럼 그냥 그렇고 그런 사회주의 국가체제가 아니다. 혁명 전통이라는 뼈대도 있고 수령을 중심으로 당과 인민이 일치단결된 족보도 있는 ‘주체’ 사회주의다.

설명하면 이렇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주체’는 수령과 인민대중의 상호결합 관계를 말하고, ‘주체 사회주의’는 수령과 인민대중의 상호결합 관계 위에 성립한 사회주의라는 뜻이다. 그렇게 스탈린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를 북(北)식 표현 그대로 하자면 북의 사회주의 체제는 수령과 인민대중의 관계를 무엇보다 중시한다는 점에서 소련식 사회주의 체제와는 완전히 다르고, 또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측은 건국 이래 지금까지 수령과 인민대중을 일체화된 관계로 상호결합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힘써오고 있는 그런 국가이다. 그 결과 북측에서 수령과 인민대중의 상호결합 관계는 이들의 관계가 “사상의지적 통일과 도덕의리적 단합으로 일체화된 관계”이다. 이렇듯 맹신(盲信)과 맹목으로 상징되는 ‘개인 우상화’와는 하등 인연 없는 수령과 인민대중의 혼연일체이다.

좀 더 그 차이를 비교해보자. 수령을 향한 충실성과 우상화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개념 차이가 있다. 첫째는, 개념설정 분야가 다르다. 수령은 정치·철학적 개념이고, 우상화는 사이비 종교적 개념이다. 어떻게? 수령은 역사발전 단계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관한 문제라면, 우상화는 그런 개념과는 전혀 관계없는 미신(迷信)적 인식 문제이다. 둘째는, 범주가 다르다. 수령은 집단적 관계, 즉 ‘수령-당-인민대중’의 관계에 관한 문제라면, 우상화는 개인적 인식 범주에 한정된다. 셋째는, 관계의 제도화 정도가 매우 다르다. 북의 수령 중심 사회주의는 국가의 지도이념과 국가 운영원리, 제도로 확고히 보장되어있는 반면, 우상화는 그런 질서와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북의 수령(최고지도자)이 여전히 우상화된 그런 독재자처럼 보이는가?

그럼, 하나하나 뜯어서 살펴보자.

먼저, 북에서 말하고 있는 ‘수령’ 개념에 관한 부분이다. 한마디로 사회정치적 개념인데, 이 의미는 북에서 사람의 본질적 속성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3대 특징으로 보고, ‘수령’ 개념 또한 그 개념적 토대 위에서 이뤄지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의 정수로 규정하는 데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즉, 북은 자신들의 주체 사회주의가 국가구성원 모두 ‘사회적 존재’로서 그 구성원의 ‘집단주의적 요구’를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사회, 규정을 그렇게 내리는데, 이는 국가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회적 집단 속에서 살며 활동하는 사회적 존재인 만큼, 개인은 사회적 집단과 운명을 함께하면서 서로 협력하며 살려는 ‘집단주의’를 그 본성적 요구로 하며 그래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은 사회적 집단 속에서만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근본원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북의 생각이다. 당연, 주체사상은 이 원리를 정립한 것이다.

바로 이 과정에서 ‘수령’ 개념이 등장한다. 집단 구성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에서 수령이 중심될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 원리가 나온다. 어떻게? 아시다시피 북의 주체 사회주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본성적 요구를 전면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그런 사회이다 보니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그런 구성원들로 구성된 집합체, 즉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그런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그러한 인민대중을 구성하는 사람이 저절로 (사회의) 주인으로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즉,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고 역사의 주체이기는 하지만, 수령과의 사회정치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한 ‘자주적’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들 철학의 핵심 개념이다. 해서, 인민대중은 반드시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수령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지위’와 ‘결정적인 역할’에 자신들을 연결해내어야만 한다.

바로 그 내용이 1982년 당시 김정일 비서가 발표한 <주체사상에 대하여>이다. 이후, 주체사상은 더 정교한 사상·이론적 체계성을 갖추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주체사상에 대한 이론화 과정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총서 10권>이 정립된다. 이 과정에서 북은 ‘사회정치적 생명체’라는 새로운 철학적 개념을 내오고 이를 자신들의 국가(사회) 유기체관으로 반영해낸다. 다름 아닌, 수령이 이 유기체의 최고 지위와 역할을 갖게 하는 존재로 말이다.

1986년에 발표한 김정일의 논문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는 이를 이론적, 철학적으로 정립했다. 수령을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 뇌수로까지 그 개념을 확장하고, 수령을 최고 정점으로 하는 수령-당-인민대중과의 관계를 해명해냈다.

“(수령은) 수령-당-대중의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 뇌수로서, 이 생명체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이다.”

이로부터-위 정의(定義)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인민대중이 주인’ 되기 위해서는, 즉 ‘자주적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앞글에서 잠시 언급이 있었듯 ‘자주적 주체’가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를 주체사상에서는 수령에 의해 영도되고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받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철학적 사유체계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수령 없는 당과 인민은 존재할 수 없고, 이를 사람의 신체 구조와 비교했을 때 수령은 신체의 가장 중요한 ‘뇌수’이고, 당은 가슴(심장), 인민대중은 팔·다리에 해당한다는 철학적 사유체계이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위 비교가 각각의 기능에 따른 역할론(강조, 필자)이지, 그 이상·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말뜻은, 어차피 신체 부위 하나하나가 제대로 자기 역할(혹은, 기능)을 해내지 못하면 그건 어떤 의미를 갖다 붙이더라도 ‘불구’와 다름없다. 해서, 이 비교의 핵심은 수령과 인민대중과의 관계가 위와 아래, 혹은 통제와 통제대상이라는 그런 개념의 상·하가 아닌, 각각의 기능에 따른 역할의 관계 정립이며 그 관계도 고도의 사회정치적 관계 성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위 논문을 인용해 그대로 표현하면 “육체적 생명은 부모가 주는 것이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은 수령이 부여”하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연장선상에서 수령은 “사회정치적 생명의 부여자이며 당은 사회정치적 생명의 모태”로 규정된다.

구분

육체적 생명

사회정치적 생명

생명부여 주체

부모

수령

생명의 기한

유한

무한

 

좀 더 설명하면 이렇다. 수령-당-인민대중은 하나의 생명을 가진 유기체적 통일체이며 개별적 사람의 생명 중심이 뇌수인 것처럼 사회정치적 생명의 중심은 이 통일체의 최고 뇌수인 수령으로부터 발현된다는 것이 위 표가 설명하고 싶은 그 정치적 함의인데, 나름 다음과 같은 탄탄한 이론적 정당성을 갖는다. 어떻게? 생명의 중심인 ‘뇌수’로서의 수령, 수령과 인민을 결합해내는 ‘신경’ 및 ‘혈관’으로서의 당, 그리고 신체의 활동을 담당하는 ‘팔·다리’ 생명체로서의 인민대중을 삼위일체로 하는 그런 사회 유기체론으로 정당화한다. 그래서 국가는 ‘사회주의 대가정’과도 같고, 일반적 의미에서 ‘가정 = 부모 + 자식’으로 구성된다면 같은 논리로 북의 국가는 ‘국가 = 어버이(수령) + 인민대중’으로 구성되게 된다. 국가, 즉 ‘사회주의 대가정’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놓고, ‘수령’ 개념을 좀 더 확장된 철학·사상적 사유체계로 이해해보자. 어떻게? 북에서는 수령이 어버이가 되고, 그 어버이가 중심되어 꾸려지는 사회주의 대가정은 ‘우리 수령제일주의’로, 다시 그 우리 수령제일주의는 ‘우리 국가제일주의’로 등치한다.

관련해서는 2022년 9월 7일 <로동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한 기사가 실린다. '위대한 수령을 모시고 인민이 온넋으로 받드는 강국의 인민이 터치는 심장의 웨침: 우리 국가제일주의는 우리 수령제일주의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위대한 수령이 위대한 국가와 위대한 인민을 탄생시킨다"라고 하면서 "우리 국가제일주의는 우리 수령제일주의라는 엄숙한 운명의 진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창건 후 '승리와 영광만을 새겨 온 북의 역사'는 "위대한 수령께서 계시여 위대한 국가도 있고 위대한 인민도 있다"라는 진리에 대한 빛나는 증명이라며 그 증거로 △한반도에서의 전쟁 '승리'와 빠른 전후 복구 △14년 압축 공업화 달성 △자주·자립·자위의 '사회주의 모범국' 창조, 그리고 △동유럽의 자본주의 복귀에 굴하지 않고 사회주의 한길로 나아간 '불굴의 인민'은 '위대한 수령'에 의해서 창조되고 태어났다는 것 등을 예로 들었다.

결과로 지금의 북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정치사상강국 △존엄높은 인민의 나라 △천만이 굳게 뭉친 일심단결의 나라 △세계 최강의 힘을 지닌 기적의 나라 △계승성이 확고한 전도양양한 나라라고 하면서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이 같은 기적을 이루고도 최악의 역경 속에서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경이적인 모습이라고 역설하면서 신문은 최종 결론에 “세상에서 어떤 나라가 제일 강하고 어떤 인민이 제일 행복한가. 오늘 우리 국가의 감명깊은 현실속에 그 대답이 있다. (중략~) 왜냐하면 일심단결이야말로 역사의 그 어떤 기적도 다 이룰수 있는 행성의 절대병기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래서 우리 국가는 초강국이다!”라고 매듭지었다.

무엇이 보이는가? 감히 북의 속내를 좀 표현해보자면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통해 북은 자신들의 전략적 지위에 대한 긍지와 신념이 발현되고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려는 강렬한 의지가 고취되는데, 북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위대한 수령'의 영도에 의해서만 '우리 국가제일주의 시대'도 구현될 수 있다는 연결고리를 확보하고 이를 '우리 수령제일주의'로 심화, 발전시키려 하는 것 같다.

어떻게? ‘위대한 수령’에다 ‘친근한 수령’이 더해진 ‘우리 국가제일주의 시대’를 만든다. 2022년 9월 7일 <로동신문>이 이를 확인시켜 준다.

“수령의 위대성을 온 넋으로 절감하고 따사로운 그 정에 매혹되어 스스럼없이 안겨들며 운명과 미래를 맡기고 따르는 인민, 진짜 강국은 바로 위대한 수령을 진두에 높이 모시고 천만이 일심 일체의 성새를 이룬 나라”

정리하면 이렇듯 ‘수령’ 개념이 우상화의 개념과는 하등 인연이 없다는 것은 그 개념 성립이 철학·사상적 개념이라는데 있다. 핵심에 수령은 주체사상에 의해 그 ‘지위’와 ‘역할’이 철학적으로 정립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그 정의(定義)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심으로서의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여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심이며 인민대중의 의사를 체현한 최고 뇌수라는 것, 또한 수령은 단결과 영도의 중심으로서 인민대중의 운명을 개척함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으로 정립된다.

이의 제도적 보장은 헌법과 당규약에서 확약된다.

헌법 서문과 제1장 3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다.(서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

당규약 전문에는 “조선로동당은 주체사상의 기치 밑에 위대한 령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당과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을 백방으로 강화하고, 그 위력을 높이 발양시켜나간다.”, “조선로동당은 당안에 사상과 령도의 유일성을 보장하고 인민대 중과 혈연적 유대를 강화하며 당건설에서 계승성을 보장하는 것을 당건설의 기본 원칙으로 한다.”

다음, 북의 수령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편협하고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는지에 대한 확인 부분이다. 접근은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트뤼키예(옛, 터키)와 베트남의 예에서 북 인민들의 수령에 대한 존경과 숭배심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고, ‘개인 우상화’와는 하등 인연 없는지가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트뤼키예에 그 유명한 한 인물이 있다. 1923년 10월 29일 트뤼키예공화국을 창건하고 1938년 서거 때까지 공화국 제1대 대통령을 지낸 트뤼키예의 민족적 영웅 무스타파 케말 파샤(Mustafa Kemal Pasha, 1881-1938)가 그 주인공이다. 그에 대한 트뤼키예 국민의 사랑과 숭배심은 그가 서거한 지도 이미 오래건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식지 않고 뜨겁기만 하다. 이를테면, 트뤼키예의 모든 공공건물, 학교 교실, 심지어 일반 가정집에서조차 그의 초상화가 정중히 모셔져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그가 85년 전에 운명했을 때의 그 시간인 11월 10일 오전 9시 5분에는 해마다 트뤼키예 전국에서 모든 차량이 기동을 멈추고 1분 동안 그를 추모한다. 서거 후 85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를 향한 트뤼키예 국민의 사랑과 숭배심은 이토록 뜨겁다. 그런데도 전 세계 그 누구 하나 그에 대한 이러한 사랑과 숭배심을 우상화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베트남에도 이와 유사한 한 인물이 있다. 조국 베트남을 프랑스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해낸 초대 주석이자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부, 그리고 ‘베트남판 목민심서’의 구현자, 호찌민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생전 ‘호 아저씨’로 친근했고, 죽어서 남긴 유산이라곤 ‘낡은’ 옷 두 벌과 ‘폐타이어로 만든’ 샌들 한 켤레의 청빈뿐이었다. 그런 그가 죽었으니 베트남 인민들이 얼마나 비통했는지 다음 기사가 이를 잘 웅변해준다.

“위대한 지도자를 잃은 비탄과 감동, 혼란이 함께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넋을 잃은 듯이 행동했다. 한 사람의 훌륭한 정치 지도자를 잃고 애도하는 그런 슬픔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슬픔을 꾹 참고 견디는 모습이었다. 호치민의 인민들은 ‘호 아저씨’가 부르기만 하면 누구라도 달려와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순간들이었다.” (마이클 매클리어가 쓰고, 유경찬이 옮긴,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p.444)

위 둘 사례는 최고지도자 그들의 행적에 따라 최고지도자도 충분히 자기 인민들로부터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트뤼키예 국민과 베트남 인민이 케말 파샤와 호찌민을 떠받드는 것은 거부감도 없고, 괜찮고, 유독 북측 인민들만 자신들의 최고지도자에 대해 떠받드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똑같은 동일현상을 보면서도 왜 그런 차별적 감정반응이 일어날까? 그것은 위 두 인물-케말 파샤와 호찌민에 대해서는 이념적 오염 없는 이성적 판단을 하지만, 북의 수령(최고지도자)에 대해서는 반북·반공 대결 선전의 산물이라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말해준다.

관련해 멀리 갈 것도 없다. 한 예로 우리 선조들은 임진왜란에서 풍전등화에 처한 나라를 구한 이순신을 위해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며 받들었던 것처럼, 민족적 영웅을 기리고 받드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이다. 연장선상에서 북도 자신들의 민족적 영웅 김일성 주석-무장투쟁을 통해 조선을 일제로부터 독립시킨 항일 영웅에 대해,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에는 제국주의 미국의 제재와 그 어떤 굴복에도 굴하지 않고, 선군정치를 통해 북을 사회주의 강국 반석 위에 올려놓은 위대한 혁명가로 떠받들고 존경하는 것, 이 역시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케말 파샤와 호찌민, 이순신은 되고, 북의 수령(최고지도자)만 안 되는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오히려 북은 이들보다-케말 파샤와 호찌민보다 더 철학적이자 사회정치적 개념으로 자신들의 ‘수령’ 개념을 정립하고, 존경과 우러름을 담아내는데도 말이다. 참고로 여기서 그 차이의 한 예는 이렇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하였듯, 영웅에 대한 숭배와 북의 수령에 대한 충실성 차이는 영웅과 수령, 이들에 대한 ‘인민대중과의 결합’ 정도에 달려있다. 뭔 말인가 하면, 케말 파샤는 대통으로 재직 중에 단 한 번도 트뤼키예 국민에게 자신을 일체화시키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그가 1919년에 창건한 공화인민당은 자기 국민에게 속칭 케말리즘(Kemalism)으로 교양하지도 않았다. 이 말뜻은 케말리즘이 여러 통치이념 중 하나일 뿐 철학적 의미에서의 세계관적 기초를 가진 사상체계는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케말리즘을 기치로 해서 만든 공화인민당이지만 지금은 집권당도 아니고 제1야당이다. 즉, 여러 정당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실의 이러함은 트뤼키예 국민이 케말 파샤를 떠받드는, 혹은 영웅 숭배하는 것은 단지, 국가적 전통으로 정착된 것이지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 당의 사상교양사업과 정치제도로 확립된 사회체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즉, 케말 파샤, 호찌민, 이순신에 대한 존경과 숭배는 ‘국가적 전통’ 안에 있는 개념이라면, 북은 자신들의 수령에 대한 존경과 숭배가 그러한-‘국가적 전통’ 개념을 수용하면서도 자신들의 국가 틀 안에서 철학과 사상, 제도로 확립한 ‘사회체제’ 안에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공통성과 차이가 그렇게 있고, 크다.

설명으로는 이렇다. 북은 1974년 2월 19일 당시 김정일 비서가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고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당의 최고 강령으로 제시한다. 이후, 북은 2012년 4월 6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주체사상을 다시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정식화하고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당의 최고 강령으로 제시한다. 이로부터 북은 사회주의제도의 특성상, 당의 최고강령은 무조건적으로 최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가장 중대한 의무로 되어 북측에서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 하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이 얼마나 강력하게 추동되고 있는지는 북에 가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비례해 수령(최고지도자)들의 행보도 엄청나다. 김일성 주석의 경우 현지지도 기간은 생애 전 기간 2만600여 곳, 57만8천㎞의 거리였다. 이는 지구 14바퀴 반을 돈 것과 맞먹고, 연평균 190일의 현지지도에 해당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도 이에 못지않다. 생애 전 기간 1만 4,290여 곳을 방문했고, 거리로는 65만7천㎞이고 지구 17바퀴를 돈 것과 맞먹는다. 현지지도는 연평균 100여 일에 해당한다.

수령과 인민대중은 그렇게 이론과 현지지도라는 교집합을 갖는다. 사상교양사업은 인민대중의 머리 속에서만 이뤄지는 지적 활동이 아니라 인민대중의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체험적 활동이었고, 이를 위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평생 쉼 없이 인민대중의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을 다니며 현지지도의 노정을 걸었다. ‘사회체제’ 안에 있다는 개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끊임없이 그들과-인민들과 현장·생활 속에서 정치활동으로 만나 소통하고 대안을 찾고, 그 과정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만남을 통해 인민들은 수령과 자기들을 ‘혼연일체’ 시킬 수 있는, 즉 직접 체험하게 하는 사상교양이 이뤄졌다. 지금은 그 길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고 있고, 그 정수를 ‘그대로’ 계승하여 인민대중의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을 찾아가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간다.

해서, 결론은 그 어디에도 ‘수령’의 ‘우상화’ 흔적은 없다, 이다. 정 있다면 철학·사상적 용어로서의 ‘수령’과 제도로서의 ‘수령’ 개념뿐인데, 이를 북 국외자인(외부자들인) 우리만 인정하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즉, 매우 정상적이고 철학·사상적 사유체계로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로 접근해 북의 수령 중심 사회주의 체제를 인정하느냐, 못하냐로 논쟁한다면 그것이 무엇 문제랴만, 문제는 위에서 분명하게 언급되듯 편견과 확증편향으로 인한 무조건적인 ‘우상화’ 인식이다.

반면, 그것이 아니라면-무조건적인 ‘우상화’ 인식이 아니라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의문과 질문은 수령이 봉건시대의 그런 ‘절대군주와 같다’라는 그런 편견이거나, 또는 미신적 범주로서의 우상화라는 왜곡적 인식이 아닌, 북이 ‘수령’ 개념을 철학·사상적으로 그렇게 개념화하는 것이 과연 맞느냐, 아니냐의 논리적 사유체계로서의 인정 여부여야 한다.

문제 의식을 가지려면 그렇게 가져야 하고, 연장선상에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북이 싫고, 북 체제가 마음에 안 들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하여 엄연히 북의 사상과 정치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수령’ 개념을 그냥 비아냥 관점인 우상화로만, 절대군주라는 부정적 관점에서만 접근해 이 지구상에서 유일 ‘우상’ 독재국가가 북이라는 인식은 절대 정직한 태도와 자세가 아니다.

그러니 무지몽매는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다.

 

김광수 필자 약력

저서로는 가장 최근작인 『김광수의 통일담론: 통일로 평화를 노래하라』(2021)를 비롯하여 『수령국가』(2015),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 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그리고 부경대에서 ‘평화교육’과목을 맡아 2022년 8월 31일까지 출강했다.

주요 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사)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 자문위원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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