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라는 동일 성격 사건에서 2021년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 재판부는 같은 해 1월 동일 법원 제14민사부의 절대적 ‘주권면제’ 불수용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즉 제15민사부 재판부는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일본군 성노예피해자 건에 대해서 주권적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논리로 국가의 절대적 “주권면제”를 받아들여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소송을 ‘각하’하였다.

각하 후 이어 원고인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고 곽예남. 김복동 유족 등 17명이 일본 국가(정부)를 상대로 다시 제2심 항소심을 서울고등법원에 제기하여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23년 5월 11일 서울고등법원 민사33부(구회근 부장판사, 황성미, 허익수 판사)심리로 제2심 항소심 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서 지난 7년간 피해자 법률대리인으로 수고해온 일본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가 증인으로 법정에서 변론하였다. 이 제2심 항소심 핵심 논점이 국제법상 ‘주권면제(국가면제, state immunity)’이다.

2023년 5월 11일 제2심 항소심 재판정에서 야마모토 변호사는 ‘주권면제’는 “주권 국가는 다른 나라 법정에서 소송당사자로 서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임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불법행위를 ‘주권면제’에서 예외로 제외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증언하였다.

현행 국제법상 일본군 성노예와 같은 전시 중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야마모토 변호사의 제한적 ‘주권면제’ 적용이 타당하다. 그 적용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국제법상 ‘주권면제’ 이론을 살펴본다.

주권면제란 법정지국이 자국 영역 내에서 외국 및 그 외국 정부 재산에 대하여 주권평등 원칙에 입각하여 당해 외국을 당사자로 한 소송에서 자국 재판관할권의 행사를 면제하는 행위이다.

여기에는 절대적 주권면제와 제한적 주권면제론으로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절대적 주권면제론은 19세기의 주된 견해로서, 국가는 소송의 원인 여하에 불구하고 타국에서 재판 관할권이 면제된다. 이는 국가는 타국의 지배와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데서 나온 절대적 주권주의, 주권평등의 원칙의 산물이다.

반면 제한적 주권면제론은 20세기 중반(UN창설 이후)부터 출현(통설)하였다. 국가행위를 주권적(공법적) 행위와 상업적(사법적) 행위로 구분, 주권적 행위에 대해서만 주권면제를 인정하고, 상업적 행위 및 중대한 불법적 인권침해로 인한 국제법상 강행규범 위반에 대해서는 주권면제 인정 여부는 각국의 재량에 맡기자는 것이 현대 국제법이다.

주지하다시피 상기 일본군 성노예 재판은 소위 일명 ‘관부재판(關釜裁判)’으로 1992년 시작된 법정 싸움이다. ’관부(關釜)‘는 일본 시모노세끼(下關)와 대한민국의 부산(釜山)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1992년 12월 25일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3명과 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 총 1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면서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에 제소하였다. 일명 ‘관부재판’에서 시모노세끼에 위치한 일본 제1심 재판부로부터 1998년 4월 27일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시모노세키 지부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원고 3명(정신대 원고 7명 제외)에게 “국가 입법 부작위에 따른 국가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일본 시모노세키 지부 제1심 재판부는 원고측(피해자측)이 제기한 다섯 가지 청구 중 ‘입법 부작위에 의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다. 1993년 8월 4일 일본군 위안부 모집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 이후에도 일본 정부가 일본헌법 제13조(개인의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에 대한 존중)에 의하여 입법 부작위에 의한 배상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이 제1심 일부승소 판결은 2001년 3월 29일 히로시마 고등재판소(2심)에서 뒤집혔고, 2003년 3월 25일 도꾜 최고재판소에서 패소가 확정되었다.

더구나 2007년 9월 19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3년 4월 1일 후지코시 주식회사와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일제 강제노동 원고 23명 제소사건에서 원고 패소판결을 하였다. 패소판결 논거로 “원고들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재판을 제기할 권능을 소멸당했다....”라고 일본 최고재판소는 판시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일본 군위안부 및 정신대근로자를 포함한 일제 과거사 한국 피해자 권리구제 길을 2003년 및 2007년 두 번이나 완전 봉쇄하였다. 이 때문에 한국 법정에서 구제의 길밖에 없었다.

일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원고들은 한국의 2005년 한일외교문서 공개 이후에 일본 정부에 적극적 피해 요구를 게을리한 한국 정부의 부작위 의무 위반을 확인하여 피해자 손을 들어준 2011년 헌법재판소 판결에 희망을 걸게 되었다.

이에 앞서 국제적 차원에서도 이미 UN 인권이사회 특별보고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전시 중 성노예 피해자로서 일본 정부에 피해자에게 사죄와 손배상에 합당한 국내 특별법 조치를 이미 권고 결의 한 바 있다.

그런데 일본은 자신이 직접 당사국인 1932년 강제노역금지조약을 명백히 위반하였고, 1998년 UN 인권이사회 권고결의에 따른 국내 특별입법 조치도 전혀 취하지 않았다.

상기 일본의 제2심(2001) 및 동경 최고재판소 재판부(2003)가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페리니’판결(2012.2.)을 인용해 절대적 주권면제를 패소판결 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ICJ 2012년 페리니 판결은 2023년 현재 10년 이상 지났고, 그동안 국제사회와 국제법의 발전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더구나 페리니 판결은 이태리 의회가 ICJ 다수 의견을 존중해 이태리 국내법원에 국가면제적용 강제 법률을 제정하였지만, 이 법률에 대한 위헌심판이 제기되어, 이태리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다시 말해 이태리 헌법재판소 조차도 최종적으로 절대적 주권면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국제법학자들은 국제인권법이나 국제인도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독일 나치 행위를 ICJ는 비록 주권적 행위라고 하지만, 주권적 면제행위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페르니 사건에 대한 ICJ 판결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많다.

이처럼 1945년 유엔창설 이후 현대 국제법은 절대적 주권면제보다는 제한적 주권면제로 발전해 가고 있는 추세이다. 제한적 주권면제란 인권 보호를 위해서는 타국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가 이미 많은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다.

Martin Diction & Robert McCorquodale 같은 국제법학자들도 그의 저서에서 제한적 주권면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지난 2023년 5월 1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상기 일본의 야마모토 변호사의 제한적 주권론 증언은 국제법이론 및 국제사회의 일반적 발전 추세에 합당하다고 본다.

한국 제2심 재판부에 건의한다. 2011년 한국 헌법재판소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대해 한국 정부의 부작위 의무위반을 판시한 바 있다. 재판 논거는 2005년 한일 협정 외교문서 공개를 한 ‘한일 민관외교문서 공개위원회’ 보고에서 1965년 청구권 협정 협상 중에 한국측이 일본에 요구한 대일 청구 제8대 항목에 일본군위안부, 사할린동포피해자, 원폭피해자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이 문서 공개이후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대해서 일본군위안부, 사할린동포피해자, 원폭피해자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잔존 청구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정책으로 바꾸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대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 관련 조치를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한국헌법재판소에 한국 정부의 부작위 의무 위반을 확인하는 소송에서 헌재는 피해자 손을 들어주었다.

요약하면, 한국 고등법원은 다음 세 가지를 유념하고 판결해야 한다.

첫째, 1998년 UN 특별보고관(게이 맥두갈) 최종 보고서에서 한국 위안부는 전시 중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일본군 성노예(Japanese Military Sexial Slaverly)라고 UN 인귄소위에 보고했다. 후속 조치로 일본정부에게 사과와 진상규명 및 적절한 배상, 책임자 처벌를 권고하였다.

둘째, 전시 중 한국 일본군 성노예 피해는 중대한 인권침해 및 국제인도법 위반으로서 국제법상 강행규범 위반으로서 제한적 주권론 적용이 국제법 발전추세이다. Robert McCorquodale 를 포함한 많은 국제법학자들도 제한적 주권면제를 지지한다.

지난 2023년 5월 1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상기 일본의 야마모토 변호사의 제한적 주권론 적용 주장 증언은 국제법 이론 및 국제사회의 발전 추세에 매우 합당하다고 본다.

셋째,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 1항 ‘최종, 완전 해결’에 위안부 피해자 청구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한국 제2심 고등법원 재판부는 고려하여, 중대한 인권침해를 한 일본 정부에는 절대적 주권면제 이론을 적용해서는 안된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서 정부가 포기한 것은 국가가 갖고 있는 자국민 외교적 보호권 포기에 불과하고 개인의 일본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전혀 별개이다. 개인 배상청구권을 1991년 일본 중의원 질의에서 일본 외무성도 인정했다.

한국 제2심 고등법원은 위 세 가지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원고) 손을 들어줄 것을 간곡히 건의한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 1항 ‘최종, 완전 해결’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청구는 자국민 외교적 보호권 포기에 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전시 중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는 국제법상 강행규범 위반이므로 한국 제2심 고등법원 재판부도 현대 국제법 발전의 추세에 따라 제한적 주권면제 이론을 적용함이 타당하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고대 법대 졸업,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킬대학 법학박사(국제법)
- 한국외대 법대 학장, 대외부총장(역임)
-대한국제법학회장,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회장.
-엠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위회 위원장(역임)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통일교욱협의회 상임공동대표,민화협 정책위원장(역임)
-동북아역사재단 제1대 이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역임)
-민화협 공동의장, 남북경협국민운동 본부 상임대표,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SOFA 개정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 ‘남북평화기원 강명구 유라시아 평화마라토너와 함께하는 사람들’(평마사) 상임공동대표
-한국외대 명예교수, 네델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대한적십자사 인도법 자문위원, Editor-in-Chief /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현재)
-(사)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 원장(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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