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컴퓨터 문건 작성과 인쇄술이 발달한 요즘은 시험을 치는 문제지라고 하면 흰 모조지에 활자체로 된 시험지이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는 흔히 시험을 치는 문제지는 등사한 시험지가 주종을 이루었다. 당시의 시험지는 흰 모조지가 아니라 대체로 갱지(更紙)였고, 좋은 종이를 쓴다고 해야 중질지(中質紙)였다. 흔히들 갱지를 시험지라 부르기도 하였다.

등사(謄寫)는 등사기(謄寫機)로 간단히 인쇄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인쇄법은 일제 식민지시기의 흔한 인쇄법이었으므로 흔히 ‘가리방 인쇄’라고 불렀다. 이 인쇄법은 먼저 왁스가 코팅된 등사지에 등사 원고를 만들어야 한다. 반투명한 등사지를 가는 사선 격자무늬가 새겨진 철판에 올려놓고, 등사지 면의 코팅을 철필을 사용하여 인쇄하고자 하는 글이나 그림 모양으로 긁어낸다. 그런 후 등사 원고를 고운 비단천으로 된 실크 스크린에 붙이고 밑에 놓인 종이에 밀착시킨 후 그 위로 유성 잉크를 묻힌 롤러를 굴리면, 코팅이 제거된 등사지 부분은 잉크가 새어 나와 종이에 묻어 인쇄된다.

이런 인쇄 방법이 언제 국내에 들어왔을까? 필자는 오랫동안 그런 의문을 가져왔다.

1. 등사본 역사서 『국조사』

원영의(元泳義), 『국조사』, 1910년경, 등사본. 1책(116장). 대한제국시대의 지하 간행물로 전하는 책이 매우 희소하여 귀중본에 속한다. 4침 장정본이기는 하지만 표지는 만자(卍字) 문양의 책판을 눌러 만든 표지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원영의(元泳義), 『국조사』, 1910년경, 등사본. 1책(116장). 대한제국시대의 지하 간행물로 전하는 책이 매우 희소하여 귀중본에 속한다. 4침 장정본이기는 하지만 표지는 만자(卍字) 문양의 책판을 눌러 만든 표지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1990년대 중반에 등사본 역사서 『국조사(國朝史)』 1책을 입수하였다. 그 책은 원영의(元泳義, 19C 후기~20C 초기)가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국민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조선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지하 간행물이라서 그런지 판권 면이 없다.

『국조사』를 분석하여 보면, 이 책은 교과서용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A5판 크기의 이 책은 맨 앞에 ‘국조사(國朝史)’라 하고, ‘원영의 구술(元泳義口述)’이라고 표기하였는데, 같은 내용의 책이 두 종이 있다. 등사본은 많이 제작하여야 100부 정도 제작할 수 있기에, 필요에 따라 최소한 두 번 이상 인쇄하였던 것이다.

[국조사]의 내용은 조선 태조로부터 시작하여 대황제(大皇帝), 즉 순종 황제의 재위 중 1909년 12월 이재명(李在明, 1890~1910)이 이완용(李完用, 1858~1926)에게 자상(刺傷)을 입히는 데까지로 나와 있다. 그러므로 저술 연도가 기재되지 않았으나 이러한 마지막 내용으로 보아 1910년경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906년 12월 5일 자에 원영의(元泳義, 1852∼1928)와 유근(柳瑾, 1861∼1921)의 공저로 휘문의숙에서 발행한 『신정동국역사(新訂東國歷史)』 2권2책이 있다. 이 책은 단군 조선에서 시작하여 고려 시대까지로 끝난다.

그런데 『국조사』는 조선시대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두 책을 합치면 하나의 완전한 한국사의 통사(通史)가 된다. 『신정동국역사』와 『국조사』의 공통점은 서술 체재가 편년(編年)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국조사』 역시 『신정동국역사』와 마찬가지로 국한문으로 저술하였으며, 내용의 특징은 조선왕조의 자주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임진왜란에 관한 내용이 상세하고 수군(水軍)의 승리와 의병 활동을 많이 다루고 있다. 또한, 1905년 을사늑약 이후의 민족의 저항 운동을 기록하면서 자결하신 분들과 의병의 투쟁을 중요하게 다루어,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한 적개심을 고취하고 있다.

『국조사』는 등사본으로 지하 간행하였지만, 『신정동국역사』는 합법적인 간행물이다. 그러나 지향점이 민족주의를 선양하고 있고, 국가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줌으로써 나라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일제는 1911년 11월 16일 자로 금서로 묶었다.

2. 최고의 등사본 『관립 한성사범학교 동고록』

『국조사』는 그 내용으로 보아 1910년에 저술하여 간행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1910년 이전에 등사기를 이용한 간이 인쇄 방법이 국내나 동북아에 보급되었던 것일까? 1910년 이전으로 올라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전 등사본은 무슨 책일까?

『관립 한성사범학교 동고록』, 1908년 1월 3일, 이 졸업생 명단은 현재 확인된 우리나라의 등사본 인쇄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관립 한성사범학교 동고록』, 1908년 1월 3일, 이 졸업생 명단은 현재 확인된 우리나라의 등사본 인쇄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필자의 이러한 의문은 『국조사』를 구입할 때 곧바로 해결되었다. 언제 입수한 지 기억에 없는 『관립(官立)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 동고록(同故錄)』 1책이 필자의 소장품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동고록은 1980년대 후반에 입수하였을 것이다.

표지에는 [동교수의록(同校守誼錄)]이라고 필사(筆寫) 제첨(題添)되어 있고, 내제지에는 ‘융희 2년(1908) 1월 3일 쇄(刷), [관립 한성사범학교 동고록]’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내제지 1장과 직원록 1장(교장 魚允迪 등 직원 13명), 동의록(同誼錄) 9장(학생 66명 명단)이 등사본으로 인쇄되어 있는 것이다.

동고록에 수록된 교직원 및 학생 79명에 학부(學部) 보고 및 비치용을 합해서 많아야 100부 정도를 인쇄하였을 것이다. 필자 소장본은 내제지 앞면에 당시 학생이었던 이기현(李箕鉉, 1882~?)의 작은 원형 인장이 날인되어 있고, 뒤표지 안쪽에도 그의 이름이 묵서되어 있다.

그런데 이 동고록의 종이는 일본의 근대식 종이이며 표지도 일본식 표지인데, 특히 일본식 4침 선장을 억지로 5침 장정으로 바꾼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동고록은 1908년 당시 한양에 있던 일본인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관립 한성사범학교는 1895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관립 교원양성학교였으나, 1910년 8월 조선을 강제 점령한 일본이 1911년 식민지교육을 위한 「조선교육령」을 공포하면서, 이를 관립 경성고등보통학교의 사범과로 개편하였다. 그러나 어떻든 이 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학교 관제에 따라 설립된 최초의 관학(官學)일 뿐만 아니라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최초의 근대식 사범학교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는 관립 한성사범학교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연혁에 포함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동고록은 그 만큼 중요하다 하겠으나, 필자는 이러한 서울대학교의 행태가 매우 구차스럽게 여겨진다. 서울대학교는 식민지 교육을 위하여 설립한 학교 역사를 19세기 말로 무리하게 올리려 하지 말고, 학교를 21세기에 맞도록 젊고 활기차게 쇄신하는 것이 좋겠다.

3. 등사 인쇄 방법은 아직도 유효하다

『국조사』가 발행되기 이전인 1908년 1월 3일 자로 인쇄된 『관립 한성사범학교 동고록』은 현재 확인된 최고(最古) 연대의 등사본이다. 그렇다면 『국조사』가 1910~1911년 무렵에 등사본으로 간행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운동 초기에는 등사기를 이용한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이 회장으로 있던 권업회가 1912년 4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관지로 창간한 <권업신문(勸業新聞)>이다.

이러한 등사 인쇄는 일제 식민지시대부터 지하 간행물을 발행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1919년 3월 18일 경남 하동에서 박치화 등 12인이 선언하고 배포한 「대한독립선언서」도 등사 인쇄한 것이다.

이러한 등사 인쇄 방법은 1950년대에 월북작가 김기림의 시집 『바다와 나비』를 복제하여 돌려 보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으며, 또한 1980년대 운동권에서 전단 제작에 유용(有用)하게 사용하기도 하였다. 지금의 21세기 현대에도 개인이 복수의 사본을 저렴하게 제작하는데 유용한 인쇄 방법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 등사본 인쇄 방법은 과거의 문건을 위조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쉽다. 그러나 이러한 등사 인쇄물의 제작 연대는 사용된 종이와 잉크를 검토하면 어렵지 않게 감식 및 감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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