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옛날 군부 독재보다도 더 못 되게 하고 있는데 지금 이렇게 가만히 들어앉아 있으니까 참 답답해요.”

병문안 갔다가 면회실에서 만난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의 첫마디다.

윤석열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남북관계도 꽉 막혀 있다. 매주 주말에는 촛불시위가 열리고 있으며, 10.29 이태원참사는 아직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이 명확히 이뤄지지 않은 채 100일을 넘기고 있다. 그리고 어설퍼 믿기지 않는 국정원발 공안사건도 몇 군데에서 터지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일까? 지난 1월 19일 민주화운동 원로 등이 윤석열 정부의 ‘검찰독재와 전쟁위기를 막기 위한 비상시국회의’를 제안했다.

이들 집회나 회의에 꼭 참여해야 할 원로가 있는데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빈자리가 크다. 다름 아닌 권 명예회장이다. 그는 지금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재활치료 중이다.

권 명예회장은 6년 전인 2017년 6월에 폐암4기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해오면서도 모든 집회나 시위,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한 터였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갑자기 척추가 내려앉아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자 급히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때 촌각을 다퉜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몸상태가 악화됐다. 좀 더 지나면 하반신을 못 쓰고 소대변도 못 가릴 것 같았다. 그는 “나도 괴롭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폐를 끼칠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어, 폐암 상태에다 쇠약해진 심신임에도 수술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 1월초 척추수술은 잘됐고 지금 요양병원으로 옮겨 재활 중에 있다. 물론 폐암은 폐암대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척추수술 후 권 명예회장의 몸이 호전돼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전언을 받고 지난 13일 오전 취재차 병문안을 신청했다. 일주일에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기회라 이번 면회는 홍성순 전 대전 민가협 회장을 비롯한 [통일뉴스] 관계자들과 함께 이뤄졌다.

권 명예회장과 동갑이인 홍 전 회장은 “무슨 병이든지 마음이 치료에 80프로래요” 하고 권 명예회장을 위로하면서 자신도 요관암에 걸렸었다며 성공적인 암 치료 얘기를 한다. 항암 치료를 여덟 번 받아야 했는데, 두 번 받고 너무 힘들어 ‘마음 편히 먹고 나 그냥 죽을란다’ 하고 치료를 안 받았는데, 지금 햇수로 3년째 됐는데도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리바리 싸온 동치미와 두릅장아찌, 과일 등을 내놓는다. 한순간 권 명예회장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면서 면회실 안이 환해진다.

매사에 명확한 주관을 갖고 있는 권 명예회장은 병상에서 현 시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수술도 하고 또 병상에 있기에 아무래도 바깥과 소통하기도 쉽지 않아 최근 사안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만났으나 그는 짧은 인터뷰일지라도 어느 현안에서든 막힘이 없었다. 면회실로 보행기에 의지해 나온 그는 복대를 찼지만 여전히 자세가 꼿꼿해 생각보다 건강상태가 좋아 보였다.

권 명예회장은 이처럼 ‘윤석열 검찰 독재가 예전 군부 독재보다 더 못됐다’는 일성에 이어 바로 촛불시위로 넘어간다. “지금 촛불집회를 잘하고 있는데, 더 많이 와야 해요. 촛불집회를 주최하는 쪽에서 우리 민족민주운동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큰 틀을 짜야 해요. 민주노총과 진보연대, 그리고 6.15남측위원회도 다 포괄해야 해요.”

“그래도 바깥소식은 다 들으세요?” 하고 묻자, 휴대폰이 있으니까 그걸로 대강 훑어본다고 한다. 그러면서 검찰 독재 소신을 이어간다.

“옛날이 군부 독재라면 지금 검찰 독재가 되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군부 독재라 하더라도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서 민족자주권은 아니더라도 자기들 정권 차원에서 자주권을 어느 정도는 행사했었는데 이 정권은 전혀 그게 아니야. 미국의 완전한 예속 정권이야. 미국이 주장하는 그 무슨 가치동맹에 그대로 쫒아가거든. 지금 신냉전시대가 오는데 대통령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선제타격이니 전쟁불사니 하며 막 떠들고 있어요. 미국 믿고 막 떠드는 대미 굴종이에요. 그리고 한일 문제에 있어서도 과거 일본 전범에 대해서 사과나 이런 것은 다 팽개치고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명목 하에 강제징용 문제 봐요. 일본 정부도 아니고 일본 기업도 아닌 한국 기업이 대신 배상을 한다고? 개탄할 일이에요.”

이태원참사도 빼놓을 수 없다. “이태원참사도 그렇죠. 어떤 정권이든 참사가 일어나면 최고책임자가 진심으로 사과해야죠. 자기 개인이 한 게 아니라도 최고책임자이기 때문에 하는 거죠. 그런 최소한의 예의도 못 갖추니까 지도자로서는 참 문제가 있어요. 그리고 최고책임자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책임자인 행정안전부 장관도 버티고 있으니까 탄핵을 당하는 게 당연하지요.”

권 명예회장은 최근 공안 사건에도 단호했다. 그는 “요새 간첩조작 공안몰이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데 며칠 전에 국정원 앞에서 시위한 거는 정말 잘했어요. 대응을 잘했어요”하고 추켜세운다. 이는 지난 2월 11일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공안탄압저지 국가보안법폐지 대책위원회, 전국민중행동 등이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소재 국정원(본원) 앞에서 개최한 ‘간첩조작 공안몰이 국정원 규탄대회’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자연히 화제가 남북관계로 넘어갔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남북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남북관계 개선돼요. 우리가 정식으로 남북 합의를 이행한다면 미국이 설 자리가 없거든요. 그런데 그거를 역대 정권이 못 했고 문재인 정부도 못했어요. 내가 바깥에 있을 때도 늘 얘기했지만 정말 참 못난이 정부였어요. 한 예로 다른 건 몰라도 김정은 위원장이 2019년 신년사에서 조건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자고 했을 때 문재인 정부가 했어야 해요. 근데 그걸 안했어요. 북쪽이 그런 제안을 안했어도 우리가 먼저 했어야 할 판인데도 말이요. 지난 정부는 그렇다 해도 지금 정부는 더 안 될 테니 다음 정부가 해야겠지요.”

아마도 장기수들의 2차 송환 문제는 권 명예회장에게는 여한이 있는 관심사일 것이다. 2차 송환 문제를 묻자 그는 “얼마 전에 김련희 씨한테 전화가 왔었어요. 지금 빨리 병상에서 일어나 송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장기수 선생님들과 김련희씨가 빨리 가족 품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들이 지금 몇 분 안 계시죠. 제발 오래 사셔서 통일 세상을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마음으로 병원에서 투병하고 있어요.”

권 명예회장은 지난해부터 그동안 발표하거나 모아둔 원고를 모아 책발간을 준비 중이다. 투병 중에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물론 이제 내가 정말 행동으로 뭐 할 수 있는 거는 없어요. 그리고 더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어요. 근데 글 쓰는 게 집에만 있어도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인데 여기서는 그것도 쉽지 않아요. 아시다시피 내가 이번에 책을 내기로 했어요. 그 책 머리글을 여기 병실에서 썼어요. 여기 침대에서요. 틀리면 안 되니까 한 번에 썼어요.”

이제 점심시간이 넘어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그와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문득 양심수후원회의 총회 날짜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2월말에 열리는 양심수후원회 총회는 연말에 열리는 송년회와 함께 유명하다. 이때는 통일원로, 통일운동가 그리고 통일 관련 인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다.

권 명예회장은 이 자리에서 놀라운 기억력과 집중력으로 200명이 넘는 참석자들의 이름과 직책 그리고 주요 경력까지 거의 틀리지 않고 소개한다. 이 소개 시간만 30분이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이들 행사 때 권 명예회장이 참석자들을 일일이 소개하는 것은 일종의 '고유풍속'인 셈이다. 그런데 요 몇 년간 코로나19로 인해 송년회나 총회를 못했다. 그가 통일 인사들을 소개하는 그런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올해 총회는 2월 25일로 예정돼 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이번 총회에 갈 의지를 밝혔다.

“지금 상태라면 웬만하면 이번 총회 때 가보려고 그래요. 총회에서 하고 싶은 얘기도 있어요.”

권 명예회장의 투병과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