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꼭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지난 12일 태 의원은 제주도에서 4.3평화공원을 찾아 “제주4.3사건은 명백히 북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발언해 파장이 일면서, 그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습니다.

비운(悲運)의 섬 제주도에 내려와 아직 그 전모가 진행 중인 이른바 ‘제주4.3사건’을 두고 ‘북한 소행론’을 펼쳤는데 한마디로 색깔론을 드러낸 것입니다. 탈북자인 그가 남측에 내려왔으면 남측 사정을 잘 파악해서 말해야 하는데 그저 해왔던 대로 색깔론을, 그것도 무작정 ‘북한 소행’이라며 철지난 ‘구닥다리 색깔론’을 편 것입니다.

제주 4.3 관련 단체들이 성명을 내고 해당 주장은 “명백한 왜곡”이자 “색깔론에 기댄 거짓 주장”이라며 태 의원의 사과와 의원직 퇴출을 촉구했으며, 또한 야당인 민주당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징계안을 제출한 것은 당연합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아직 그 명칭을 못 갖고 지역과 날짜만으로 표기되는 ‘제주4.3사건’은 그동안 그 원인과 과정을 두고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왔습니다. 2000년에 공포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에 따르면,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제주4.3사건에 대한 이런 정의가 내려지기까지 4.3은 이념과 정권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습니다. 군사정권 때까지 4.3은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규정됐으나 1980년대부터 학계를 중심으로 ‘민중항쟁’ 등으로 재규정됐습니다. 이에 김대중 정부가 위 4.3특별법을 제정했고, 2003년에 정부의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가 채택되고 노무현 대통령이 최초로 공식 사과를 한 것입니다. 4.3은 현재까지도 진상규명과 보상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처럼 지난한 과정을 거쳤지만 아직 제주4.3사건의 명칭이 정확히 규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주4,3평화공원에 자기 이름을 기다리며 누워있는 ‘백비’(白碑)가 그 증거입니다. 비문이 없는 묘비석 말입니다. 훗날 4.3에 대한 진실규명이 완료되어 정확한 명칭을 얻게 될 때 비로소 이 백비에 새겨서 세울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역사성과 우여곡절 그리고 미완성이 있는 만큼 4.3에 대해 누구든, 특히 북에서 내려온 태 의원은 더더욱 조심했어야 합니다. ‘북한 소행’이라며 명백히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과는커녕 그는 “나는 북한 대학생 시절부터 4.3사건을 유발한 장본인은 김일성이라고 배워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며 우기기까지 했는데, 이는 북측에서 배운 지식을 남측에까지 가져와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못된 송아지 노릇을 한 것입니다.

분단된 상태에 있는 남과 북이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사관(史觀)이 다름은 초등학생도 알 정도입니다. 북측에서 배웠어도 남측에 왔으면 여기에 맞게 새롭게 배워야지 북에서 배운 게 남에서 활용할만한 가치가 있다며 써먹는 것은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입니다.

태 의원이 탈북해 남쪽으로 와 반공반북 정서에 기대 환영받고 또 북측에서 고위직이었다는 이유로 선택받아 보수성이 강한 서울 강남지역에 출마해 의원이 됐을지 모르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제주4.3사건을 ‘북한 소행’이라는 ‘구닥다리 색깔론’으로 자신의 입지를 세우려는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북측에 있을 때는 남측을 잡으려 했을 터이고 이제 남측에 와서는 북측을 잡으려 하니 그 사상적 널뛰기가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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