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이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참가해 귀빈석에 있던 딸을 앞으로 불러내 함께 열병식을 보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 위원장이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참가해 귀빈석에 있던 딸을 앞으로 불러내 함께 열병식을 보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 참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둘째 자제를 4대 후계자로 주목하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의 10대 자제를 공개석상에 노출하는 일이 전례없는 일인데다가 이번엔 제한된 대상이 아니라 전체 인민에게 공개했기 때문에 '설마'하던 시선이 '과연 그런가'라는 의구심으로 바뀌고 있는 듯 하다.

'김주애'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김정은 위원장의 딸이 처음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 지난해 11월 18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7'형 시험발사장이었고, 9일이 지난 27일(보도일자) 공로자들과 기념촬영할 때는 김 위원장 옆에 바짝 팔장을 끼고 찍은 15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때만 해도 젊은 최고지도자가 어린 딸을 공개한 것을 일회성 행사로 보는 시각이 많았으나 지난 2월 7일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앞두고 군장성 숙소를 축하방문해 정중앙에서 찍은 사진이 나오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한 것 같다.

옷차림과 일거수일투족이 관심거리가 되고 사진에 찍힌 위치, 시선까지 시시콜콜한 사안이 모두 관심사였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자제분', '존귀하신 자제분',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점차 바뀌는 호칭의 변화는 '의도적인 개인숭배'를 시사하는 것으로 계속 확장되었다.

결정적인 장면은 2월 8일 저녁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건군절 열병식에서 벌어졌다. 

조용원 당 조직비서와 리일환·김재룡·전현철 당 비서의 보필을 받으며 주석단 뒤편 귀빈석에 자리잡은 '김주애'가 어머니인 리설주 여사를 제치고 김 위원장의 옆에서 열병식을 내려다보는가 하면 김 위원장의 가슴팎에 손을 얹고 애교를 부리는 모습으로 퇴장하는 가운데 당 고위간부들이 박수를 치며 따르는 모습이 사진으로 공개된 것.

'후계자라는 분명한 신호'라고 한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지금까지의 공개행보는 이날 열병식에서 후계 구도를 공식화하기 위한 '빌드업'이었을 뿐이라는 견해까지 나오고 있다. 

앞으로 '김주애'의 등장마다 후계자의 꼬리가 따라다닐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견해는 한마디로 우려할만한 '넌센스'라는 생각이다. 비정상적인 북한 사회를 전제로 하며, 심각한 오판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10대의 어린 자녀를 공식적상에 공개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여러 해석이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또 군 장성들과 당 간부들이 '김주애'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노동신문]이 그걸 중요하게 보도하는 것도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최고지도자를 모시는 그들의 '도덕'일 수 있다.

만약 후계자로 내정됐다면 오히려 철저한 신변안전 조치가 취해지는 것이 더 상식적이지 않을까?

후계자 선정과정은 비공개리에 후계자수업 과정을 거쳐서 실력을 스스로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다가 적절한 시기에 공개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판단일 것이다.

특히 김 위원장의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2013년생으로 추정되는 '김주애'의 자질이 검증됐다고 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아닌가?

더군다나 '김주애'라는 이름도 북측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정확히 확인된 내용도 아니다. 이름 뿐만 아니라 나이도, 가계상 둘째인 것만 알려졌을 뿐 첫째와 세째 자제의 성별도 확인되지 않아 둘째딸이라는 것도 분명치 않은 상황이다. 김주애라는 이름이 알려진 건 미국 농구선수인 데니스로드먼이 2013년 9월 방북 당시 김 위원장 부부와 만나 그렇게 들었다고 한 사실이 영국 가디언지를 통해 보도되면서 추정할 뿐이다.

정부 당국의 태도도 신중하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1월 화성포-17형 발사 당시 국회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둘째 딸 '김주애'로 판단한다고 하면서 '미래세대의 안보를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추측하며 후계자 판단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취지로 말했다.

통일부도 마찬가지인데, 한 당국자는 열병식 보도가 나온 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상태에서 후계구도 판단은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 언론보도를 비롯해 노동신문 사진을 보면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두고 사진이 연출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측면을 감안해서 아직 이르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후계구도 판단은 이르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북한에서 후계자 결정과 공개과정은 역사적으로 보아도 훨씬 치밀한 준비를 거친다는 것이 이미 확인됐다. 사회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가 혁명의 대를 이어나가는 문제, 수령의 후계자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 후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에도 만 32세인 1974년에 당 정치위원에 올라 '당 중앙'으로 불리며 사실상 후계자로 확정됐지만 공식적으로 대내외에 공개된 것은 6년이 지난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이루어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만24세인 2008년경 후계자로 내정되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에 동행하는 등 후계자 수업을 받다가 2년후인 2010년 제3차당대표자회에서 대외적으로 공개했다.

김 위원장의 경우 대표적인 치적으로 내세우는 핵무력시위 현장에 어린 자녀를 데리고 가서 후대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인민들은 그동안 보지 못한 최고지도자 부녀의 다정한 모습에서 깊은 신뢰와 안전감을 느낄수 있다는 점에서 부녀의 동행은 적절한 선전 홍보수단일 수 있고, 그런 것이 확인되면 앞으로 더욱 활용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스위스 조기유학 경험에서 짐작할 수 있는 김 위원장의 개방적 태도라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방법론'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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