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아부다비에 파병 중인 아크부대를 방문해 “형제국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라며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라고 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언뜻 듣기에도 이 발언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먼저, 외국에 나가 그 나라의 적을 규정한 점입니다. 이는 상식과 예의에도 어긋나지만 언제고 변할 수 있는 국가 간 외교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말한 것은 무지의 소치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들어맞습니다. UAE야 윤 대통령이 국빈 방문 중이기에 공개적으로 뭐라 탓하지 않겠지만 이란은 당장 발끈했습니다.

나세르 카나디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16일 “두 주변국이자 우방인 이란과 UAE의 관계에 대한 한국 대통령의 발언을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대통령 발언이) UAE를 포함한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과 이란의 역사적이고 우호적인 관계와, 신속하고 긍정적인 발전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무지보다는 외국에 나가서까지 “우리 적은 북한”이라고 뭘 자랑하듯 콕 집어 말한 점입니다. 아마 이 발언은 ‘UAE 대 이란’의 대립관계보다는 ‘남한 대 북한’의 대립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 같기도 한데, 논리 전개와 언어 구사가 아주 폭력적입니다. 민족 내부문제를 외국에 나가 ‘적대관계’라고 까밝힌 것은 황당하다 못해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그전에 윤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 벌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조문 무산’ 등 숱한 외교참사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실 윤 대통령은 줄곧 북한을 ‘주적’이라고 말해 왔기에 생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주 들었다고 해서 익숙함에 빠져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보수층의 지지를 결집시키기 위해 그랬다고 해도 민족 문제를 국내 정치로 끌어들이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깥에 나가서까지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고 동네방네 소문내는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습니다. 윤 대통령의 대북관이 단세포적으로 아주 거칠게 토해진 것입니다.

앞서, 윤 대통령은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 보고를 받으며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쏟아놓기도 했습니다. 이날 윤 대통령은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한 ‘한국형 3축 체계’ 전력과 관련해 “우리가 공격을 당하면 100배, 1000배로 때릴 수 있는 대량응징보복(KMPR) 능력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게 공격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100배, 1000배로 때리자”는 말은 신중한 어른의 발언이 아닌 즉흥적인 유아의 떼와도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외국에서 일어난 “UAE의 적은 이란, 우리의 적은 북한”이라는 발언은 본질적으로 또 하나의 외교참사가 아닌 엄중한 ‘민족적 참사’인 것입니다. 가뜩이나 최근 남북 간에 ‘주적 대 명백한 적’ 갈등이 높아지고 있는데, UAE에서의 “우리 적은 북한” 발언으로 ‘누워서 침 뱉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장 북한의 반응이 우려됩니다.

특히 대통령의 말에는 품격과 절도가 있어야 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마구잡이로 말해서는 국격이 떨어짐은 물론 국민들이 불안해합니다. 안보를 위한다 하지만 안보를 해치는 일입니다. 국익을 위한다 하지만 국익을 해치는 일입니다. 국내에서 북한에 대해 “100배, 1000배로 때리자”고 과언(過言)을 해대니 외국에 나가서도 절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바깥에서도 샌다’는 속담이 있는데, 꼭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