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1. 제주의 노래비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에 시비(詩碑)나 노래비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십수 년 전, ‘서귀포 칠십리 시공원’에 서귀포와 관련된 시비 12기와 노래비 3기가 섰고, 이후에 몇 기가 늘었다. 이곳 외에도 여러 곳에 시비와 노래비가 한두 개씩 섰다.

그중에는 “왜? 이것을 세웠지?”하고 의문이 들기도 하는 그냥 유행가 수준의 노래비도 있고, 내용을 음미해 볼 만한 제대로 된 시비와 노래비도 있다.

시비나 노래비를 세우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비(碑)는 금석학(金石學)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세운 비가 후대에는 “누구의 문장이고 누구의 글씨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간혹 편의상 활자체로 형식적 비를 세운 것이 눈에 띌 때가 있다. 이러한 형식적인 것은 지양하여야 한다.

최선의 비는 작가의 필적으로 한 비이고, 개성이 강한 명필이나 명인의 필적도 좋다. 필요하다면 집자비(集字碑)를 세우는 문제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아울러 비의 형상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야 한디. 따라서 시비나 노래비를 세우는 것을 졸속으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

2. 아리랑비

지난 12월 1일, 우리나라 최고의 아리랑 전문가 김연갑 선생으로부터 카카오톡 문자가 왔다. 아리랑이 유네스코로부터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10년을 맞아, 12월 5일 오후 4시 강원도 아우라지 강가(정선군 여량면 여량리 187번지)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 건립식을 한다며 참석해 달라는 것이다.

초청장에 의하면 아리랑비는 1977년 정선 비봉산에 ‘정선아리랑’ 노래비가 세워진 이래, 현재 전국 17곳(정선 6, 진도 1, 밀양 3, 문경 3, 상주 2, 정읍 1)에 ‘아리랑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이 17곳의 성격은 노래비 13, 시비 1, 유래비 3곳이라고 한다.

이번에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비는 처음 세우는 것이다. 개막 시간을 오후 4시로 잡은 것은 멀리서 올 참석자에 대한 배려로 보인다. 제주에서 정선을 가려면 월요일 새벽에 나서야 오후 4시에 맞출 수가 있고, 개막식을 마치고 상경하면 심야가 되어 화요일에나 귀도가 가능하다. 요즘의 몸 상태로는 피로가 빨리와 참석이 무리일 것 같아, 마음이 들썩거려도 가기를 포기하였다.

3. ‘제주아리랑’을 알리자

『제주도 아리랑』, 이 노래는 1990년 MBC 라디오 '민요대전' 을 통해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조천읍의 소리꾼 고운산('98년 작고) 할머니의 증언에 의혀면, 1920년대부터 망건을 만드는 일청에서 불렀다고 한다. 한편 우도에서 불려지는 ‘잡노래’도 아리랑이라 할만한데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얼씨구 아라리가 났네 에-에-에”와 같이 특이한 후렴을 쓰는 것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제주도 아리랑』, 이 노래는 1990년 MBC 라디오 '민요대전' 을 통해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조천읍의 소리꾼 고운산('98년 작고) 할머니의 증언에 의혀면, 1920년대부터 망건을 만드는 일청에서 불렀다고 한다. 한편 우도에서 불려지는 ‘잡노래’도 아리랑이라 할만한데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얼씨구 아라리가 났네 에-에-에”와 같이 특이한 후렴을 쓰는 것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아리랑은 각지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제주도에도 근대에 만들어진 제주아리랑이 있다. 누구라도 가사를 만들어 아리랑이란 단어를 후렴조에 넣으면 아리랑이 된다. 사실 필자도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아리랑 후렴을 넣은 아리랑을 만들어 당시의 PC통신 천리안에 게재한 적이 있다.

아리랑은 계속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 연구라는 것은 만들어지고 불리는 아리랑 현상(現象)을 모아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김연갑 선생의 발표에 의하면 제주를 대표하는 아리랑으로서는 조천아리랑이 있다. 조천아리랑이 가장 먼저 채록되었기 때문에 제주를 대표하는 아리랑으로 말할 수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제주지역의 아리랑에는 “1932년 『제주실기』 등에 전해지는 꽃타령을 비롯하여, 조천아리랑, 한라산 아리랑, 우도 잡노래 등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몇해 전부터 제주에서도 아리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18일 오후 2시에, 제주돌문화공원사업단이 주최하는 ‘2022선문대할망페스티벌’ 무대에 ‘제주도아리랑연구회’가 주관하는 ‘제1회 제주도아리랑 발표회’가 제주돌문화공원 본무대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이번 정선에 세워진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 기단에는 비 건립에 참여한 40개 단체를 명시하고 있는데, 그 명단에는 “서귀포아리랑보존회 유재희, 제주아리랑보존회 강옥선, 제주아리랑연구회 장경숙”이 들어가 있다. 이 얼마나 고무적인 문화 현상인가!

4. 제주에도 아리랑박물관을 세우자

여러 해 전에, 정확히는 13년 전이고, 얼마전에 다시 확인한 바 있다. 나는 김연갑 선생에게 “제주에 우리 민족의 아리랑박물관을 세우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지원한다면 세울 수도 있다는 것이 김연갑 선생의 생각이다.

김연갑 선생은 아리랑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학자이자 최대의 수집가이다. 일생을 아리랑의 연구와 자료수집에 바친 그를 수구정부에서 높이 평가해 주지 않는다면, 평화를 신조로 하는 우리 제주특별자치도의 지방정부에서 나서서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 아리랑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그가 움직인다면 그 주변 사람들도 움직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현대사 상의 제노사이드(genocide) 4.3을 추모하는 4.3평화공원에 ‘아리랑박물관’을 설립하는 것을 제주 도정부에서는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 민족의 수난과 생명력을 아리랑보다 더 잘 표현한 노래가 어디에 있겠는가?

4.3평화공원에 부적합하다면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인근도 좋다. 제주에도 아리랑박물관을 만들고 아리랑 노래비도 세우자.

또한 제주에 아직 ‘이어도사나’ 노래비가 없다. 그 ‘이어도사나’ 노래비도 이어도 바다가 멀리 보이는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나 ‘모슬포’에 세우자. 사실 ‘이어도사나’ 노래비는 다른 어느 시비나 노레비 보다도 먼저 세워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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