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95살의 나이로 무덤속에 들어가며 남긴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유명한 묘비명이다.

원문(I knews if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을 오역했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이 풍자적 묘비명을 접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죽음과 삶에 대해 한번은 더 진지하게 성찰하게 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살아있는 동안, 죽는 그날까지 크고 작은 일에 갈팡질팡, 우왕좌왕, 우물쭈물하는 인생사를 되돌이켜보고 삶의 줏대를 똑바로 세워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만 있다면 버나드 쇼도 오역이라 탓하진 않을 듯 싶다.

딱히 적절한 비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책도 그러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인생의 길에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흔들림없이 매진할 수 있는 명쾌한 방향을 갈망하지만 대개 갈팡질팡, 우왕좌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정훈, 『세상을 바꾸는 1박2일 사상여행』, 도서출판 통일시대, 2022.11. [사진제공-통일시대]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인생항로에 갈피를 잡지 못해 '우물쭈물'하는 이들에게 불합리한 사회제도에 체념하고 순응하지 말 것과 이기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다른 이를 지배하려는 생각에 저항할 것, 그래서 공동선을 추구하며 더불어 살려는 인간의 본성을 적극 발양할 것을 말하고 있다.

크게 '인간은 사상적 존재이며, 사상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상론을 다룬 1부와 '모든 운동은 사상을 발동하는 사업'이라는 관점에서 현재의 진보운동이 사상사업을 앞세워야 한다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사상운동 시리즈1'이라고 했으니 후속편이 계속 나오겠지만 주제는 '인생과 진보를 위한 사상론'이라는데로 모아진다. 더 좁혀 말하면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기택 역)에게 세상은 '속고 속이고 먹고 먹히는 정글'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온 가족이 합심해서 사기를 치는 일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인생은 그랬다.

TV프로그램에 소개된 한 청년노동자는 수십군데 하청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산재로 다리를 다쳐 일할 곳을 잃고, 더 이상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되자 결국 모든 삶의 의욕을 포기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두 사례만해도 비슷한 많은 이들의 삶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군들 처음부터 그랬을까. 또 그렇게 죽고 싶었을까.

이 책에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 정직하게 노동하고 포기하지 않으며 싸우는 노동자들의 삶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집행위원장. "나는 그래서 투쟁하는 비정규직 동지들을 사랑한다. 그들의 승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투쟁에 나선 순간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두 눈 똑똑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으며, 바로 그 위에서 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투쟁을, 바로 자신의 힘으로 시작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영화속 송강호와 고독사한 청년노동자,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저자는 사상의식, 사상감정을 제대로 확립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의 차이로 설명한다. 자신과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 이해관계에 따라 사안을 구별해서 보는 관점과 태도, 문제해결 의지를 바로 세우는 문제, 곧 사상이다.

고단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많은 사람들이 '사상'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과 사회를 구원해 줄 무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건 복잡하고 두꺼운 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있고 관계속에도 있는 것이지만 쉽게 쥐어지지도 않는 것이었다.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이들은 문제가 발생한 처음 순간부터 되짚어보기도 했고, 더 먼 근원을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잃고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복잡하고 쉽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쓰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길고 짧은 여러 편의 시도 실려있고, 아름다운 풍경 사진도 갈피마다 나와 잠깐씩 내용을 정리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나희덕, 송경동, 신경림, 이산하, 정희성, 황지우 시인과 이오덕·권정생 선생의 절창에는 마음을 후비고 들어오는 여러 자극이 있다. 붉은 동백꽃 핀 바닷가 해안과 노란 유채꽃밭, 산속 길가에 뒹구는 밤송이 사진에도 '대포'가 숨겨져 있는 듯 하다.

사상은 여러 형태의 병기로 둔갑하니 '1박2일 사상여행'을 통해 맞춤형 무기를 찾는 건 독자의 즐거움이리라.

진보운동의 진로에 대해 서술한 2부는 꽤 익숙해서인지 오히려 낯선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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