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을 마지막으로 다녀온 게 2008년쯤이다. 이후 동료 기자들은 2018년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잠깐 남북관계가 열린 틈에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금강산만 두 차례 다녀왔을 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하물며 평양과 북한 곳곳의 모습도 많이 변했으리라.

“...정신없이 소석회와 토지개량재를 등짐으로 퍼 날랐다. 등에 물집이 생기고 피가 철철흐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들이 뿌린 유기질 비료만 1정보당 20톤 이상이었다. 이렇게 약 4만 정보의 자연 풀판(잡초를 뽑고 먹이들을 심은 산등성이 풀밭)과 1만 정보의 인공 풀판(개간한 밭에 풀씨를 심은 것)을 완성하고 가축이 좋아하고 병충해에 강한 먹이풀을 심었다....”(27쪽)

첫 이야기 ‘세포 등판 축산 단지’부터 눈을 뗄 수 없다. 2012년 김정은 위원장의 호소에 순식간에 2만 명이 넘는 돌격대 자원자가 몰렸고, ‘영하 29도의 강추위’와 ‘가시덤불로 뒤엉킨 땅’, ‘산성 토양’ 등 척박한 환경을 헤쳐 가며 5만 정보의 풀판을 마련하고, 7,800여만 그루 바람막이용 숲 조성, 10여 개의 저수지 건설, 전기 문제 해결, 유가공품 생산공정 자동화, 무인화, 무균화 실현 등등...

김이경, 『구석구석 북녘 탐방』(내일을 여는 책)[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이경, 『구석구석 북녘 탐방』, 내일을 여는 책, 2022.10.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이 어떻게 자력갱생으로 오늘의 모습으로 탈바꿈해 왔는지 늘 반신반의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김이경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상임이사의 『구석구석 북녘 탐방』(내일을 여는 책)은 그 이해의 실마리를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인 ‘북녘의 산하와 역사 그리고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탐방한 답사기는 아니다.

“어려운 공사를 들것과 질통, 해머와 정, 곡갱이와 삽을 들고 강행했다. 두 개의 산을 통째로 들어내고 20여 개의 산허를 헐어 300여 만 리터의 흙과 돌을 채취하여 80여 리의 제방을 쌓았다. 한겨울에 무릎까지 빠져드는 뻘 속에 들어가 갈뿌리를 하나씩 뽑아내고, 55만여 리터의 흙을 져 날라 50여 정보나 되는 소금밭을 만들고 물길을 냈다...(중략)...20년이 흐른 2019년 12월 말 광명성제염소는 ‘이온교환막에 의한 바닷물 농축공정’이 새로 꾸려졌다.”(132-133쪽)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6년 착공해 1999년에 준공된 ‘광명성제염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름 따 ‘광명성’이라 작명했고, 오늘날 현대적 생산공정을 도입해 “소금밭 면적을 10분의 1로 줄여 많은 노동력과 전기를 절약할 수 있게”되었다.

한 마디로 역사의 한 페이지가 쓰여져 가는 생생한 현장을 보여준다. 더구나 이것은 “지도자와 인민의 일심단결로 헤쳐온 귀중한 역사”라는 북녘 내부의 시각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보기 드문 시야를 제공하고 있다. 민간교류에 앞장서 숱하게 북녘을 오가 ‘최다 방북 인사 대열에 끼게’된 저자이기에 가능한 ‘내재적 접근’이 이 책의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리라.

북한이 최근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며 평양 살림집 1만세대 건설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외부인의 시각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에 따라 엄격한 외부의 제재를 받고 있는데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방역조치로 국경봉쇄까지 더해졌고, 심한 홍수나 가뭄 등 기후위기까지 겹쳐 이른바 ‘3중고’에 처한 북한이 과연 1만 세대 건설에 필요한 자재라도 제대로 확보할 수 있을지 도통 내막을 알 수 없는 탓이다.

저자가 첫 번째로 구석구석을 안내한 북녘 동북부 즉, 강원도와 함경남북도, 라선특별시를 돌아보면 그 지리와 역사, 무엇보다도 지도자와 인민들의 고난에 찬 역정을 좀더 가까이 알 수 있게 되고, 어려운 조건에서 어떻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들어가는글에서 “지역으로 들어가야 했”고, “그들의 향토 사랑, 조국 사랑, 역사 사랑, 경제발전 전망까지를 차근차근 살펴보”는 것이어야 했다며, “이 책은 북을 내 집처럼 드나들던 10년의 세월 동안 만난 북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이 책에서 나는 그들이 보여준 민족애와 당당한 집단주의적 삶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북녘 구석구석의 지리적 위치와 환경을 먼저 소개하고 지도들을 제시해 마치 지리교과서처럼 꾸민 점이나 수많은 사진들로 채운 점, 역사적 맥락이나 구체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설명한 점 등 저자의 창의적인 상상력을 따라가다 보면 보다 풍부한 북녘 탐방을 마칠 수 있다.

신포시의 물고기 어획고가 북 전체의 5분의 2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나, 흥남비료공장에 주은래 동상이 세워진 이유, 발해 5경 중 남경이었던 북청군에 유일한 발해 유적지가 있고, 화대군 석장리에는 2000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화산 용암 속에 완전히 묻혀 있는 인류화석이 발굴됐다는 사실, 라진항이 유엔 대북제재가 미치지 않은 제도적 장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 등 북녘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조차 새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거리가 넘쳐난다.

이 책은 저자가 북녘 구석구석까지를 직접 발로 뛴 답사기는 아니다. 오늘의 북녘에 관한 풍부한 자료를 확보하는 것도 여의치만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나아가 공개된 사진이나 성과 등 북측이 내세우고 싶어하는 것들의 이면에 있을 내밀한 북녘의 속사정까지야 어찌 저자에게 바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좌충우돌 아줌마의 북맹탈출 평양이야기』(2019, 내일을 여는 책), 『우리는 통일세대』(2020, 초록비공방)를 통해 북녘 사회 이해를 도모한 저자의 진심과 열정은 그 간극을 좁혀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존중한다는 것! 그것이 통일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 이어 백두산과 량강도와 자강도, 평안남북도, 황해남북도, 평양과 남포 탐방도 쓸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남북관계가 활짝 열려, 배낭 매고 북녘을 실제 돌아볼 날을 기다”리는 것은 저자만은 심정은 아닐 터, 그전에는 이 책을 간간이 꺼내어 가보고 싶은 곳을 마음속에 정해두면서 다음 책을 기다리는 것도 작은 위안거리가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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