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1. 나의 첫 시도

2016년 5월이다. 당시 나는 제주의 백광익 화백과 경북 울진의 황재종 화백 두 분과 함께 ‘북경아트페어’와 ‘북경보리박매유한공사’의 춘계박매회를 갔다가 왔다. 3박 4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여행은 아트페어나 경매의 참여는 아니었지만, 중국의 현대미술과 미술시장을 보게 하여 두 분에게 충격을 주고자 한 이유에서였다. 두 분은 실제로 큰 충격을 받았다.

북경의 ‘중국농업전람관’ 전체를 빌려 진행 중인 보리의 춘계박매는 1만 점이 넘게 출품되어 있었으니, 한국 전체 미술시장의 1년간 매도 물량과 매출액이 중국 메이저경매사의 1회 매도 물량과 매출액보다도 훨씬 적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백광익 화백과는 ‘북경아트페어’에 이어서 ‘상해아트페어’에도 다녀왔다. 미술계 현상을 보는 것 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현재의 중국은 다양한 미술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2. 지방화단을 인정하기 인색한 한국의 중앙미술시장

당시 나는 국내의 어느 메이저 경매사 대표에게 제주 화가 몇 사람의 작품을 경매에 상장(上場)하자고 제안하였으나, 단칼에 거절당하였다. 작품을 보지도 않고, 그런 “제주 지방작가 정도는 각지에 쌓였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경매도 하나의 문화 권력이 된 것이다.

내가 5년 전인 2017년 10월 7일 자로 인터넷 ‘제주투데이’에 ‘[제주담론] 변방 미술에서 동북아 미술, 세계 미술로’를 쓴 이유가 바로, 국내의 메이저 경매사로부터 그런 거절을 당했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11일경인가? 동경의 ‘동경고전회’ 입찰에 참여하고 있는데, 서울로부터 전화가 왔다. 모 언론사가 경매사업에 대한 자문을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국내로 귀국하자마자 모 언론사의 경매사업팀장을 만나 사업에 필요한 여러 자문을 하였고, 후일 제주의 백광익 화백을 전속작가로 추천하였다. 경매사업 초기이므로 느슨한 전속계약은 성사되었다. 그러나 그 언론사는 3년여를 끌어나가다가 경매사업팀을 해체하였다.

3. 중앙화단을 뛰어넘어 세계의 아트페어로, 세계의 미술시장으로 나가자

2017년 10월 7일 자로 '제주투데이'에 기고한 글의 중요 부분을 더 인용하여야겠다.

“(중략) 필자는 제주 미술가들을 세계의 미술시장에 소개하는 것에 대하여 깊이 검토해 본 적이 있다. (중략) 제주의 미술가들이 동북아와 해외 각지의 유명 아트페어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야 한다. 당분간은 우선적으로 중국의 북경과 상해, 홍콩의 아트페어와 동경아트페어를 참여시키고, 이어서 미국의 ‘아트시카고(Art Chicago)’와 프랑스의 ‘피악아트페어(FIAC Art Fair)’ 스위스의 ‘아트바젤(Art Basel)’의 참여로까지 확대하여야 한다. (중략) 해외에서의 (이러한) 사업은 제주 미술가들 모두를 대상으로 할 수는 없다. 작품이 관리될 수 있는 10여 명의 미술가를 엄선하여 역량을 집중하여야 한다. 이러한 (중략) 기반을 4~5년간 조성한 후에 선정된 제주 작가들의 작품을 해외의 유명 경매 시장에 반드시 상장하여야 한다. 상장한 10여 명 가운데 2~3명의 미술가만 성공하여도 이는 제주 미술계의 큰 수확이 될 것이다. 아니, 1명이라도 세계가 주목하는 미술가를 내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제주 미술계 전체의 견인차가 될 수 있다. 국내의 중앙 미술계가 제주 미술을 변방미술로 폄훼한다면, 차라리 국내 미술계를 뛰어넘어 세계 미술시장을 두드리자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4. 적극적인 미술 교류를 하자

제주에는 도에서 세운 ‘제주도립미술관’이 있고, ‘제주현대미술관’이 있다. 인구 70만 제주의 미술관으로는 작은 규모가 아니지만, 국가적 규모의 미술관에 비하면 두 미술관을 합하여도 규모는 상당히 작다고 할 수 있다. 탁월한 미술가 한 사람의 기획전을 하기에도 장소가 좁다. 그러면서도 활용성이 요긴한 장소이다. 이 장소를 활용하여 과감하게 해외 미술가와 제주 미술가의 2인전을 추진하자.

예를 들자면, 주목받는 해외 특정 국가의 유명 미술가와 제주 미술가의 2인전을 그 특정 국가와 제주에서 교환 개최하여 제주 미술가의 위치를 상승시키자. 해외 유명 대학의 미술가와 제주 미술가의 2인전도 추진하자. 해외의 유명 미술관에서 제주도립미술관 소장품전도 진행해 보자. 국가 체제와 대륙‧인종을 뛰어넘는 다양한 교류를 시도하자.

2017년 10월 7일 자의 글은 계속 이어졌다.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시도(試圖)는 도 정부 주도로서는 실패할 여지가 너무 크다. 우선 미술가 10여 명의 선정에 많은 잡음이 날 것이고……”, -- 특정 작가를 선정하는 것도 잡음이 클 것이다. -- “따라서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나서고, 도 정부에서는 지원해 주는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겠는데, 이러한 사업을 위한 방법이 시급히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중략)”

5. 아~! 제주비엔날레

백범 김구(金九, 1876~1949)는 그의 저서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에서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밝혀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이 되기를 소망하였다.

제주는 문화가 척박하다. 그러나 서울에 버금가는 문화 지자체를 목표로 삼고 나가야 한다. 관광은 경치나 명소를 구경하고 즐기는 것이다. 제주의 경치는 좋다. 그러나 역사적 명소는 희소하다. 문화로써 역사적 명소를 만들어나가고 대체하여야 한다. 만약에 제주의 어느 미술관에 일본의 ‘도고 세이지 미술관’에 있는 고흐의 대표작 ‘해바라기’ 같은 명작이 있다면 세계인들은 그 그림을 보러 몰려올 것이며, 제주의 어느 미술관에 중국 제백석의 최대 대표작이 있다면, 중국인들은 그 그림을 보러 몰려올 것이다. 그것이 문화의 힘이다.

제1회 제주비엔날레는 주제가 ‘투어(Tour)’였다. 그러나 투어의 내면을 형상화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투어 전문 기획 및 연출가의 개입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른 면에서는 비교적 양호한 연출력을 보여 주었다. (코로나로 인하여 제2회 제주비엔날레는 실종되었고, 느닷없이 제2회 회수를 건너뛰고 제3회 제주비엔날레가 다음 주에 개막한다.)

지난 제1회에는 제주 미술계가 비엔날레의 지속적 유지를 위하여 비평과 비판을 자제하였지만, 이번에는 비평과 비판이 거침없이 나올 수도 있다. 모두를 만족하게 할 제주비엔날레가 될 수는 없으므로 비평은 장려하되 비판은 자제하기를 제주 미술계 인사들에게 바란다. 물론 주제와 개최 의도가 실종되는 제주비엔날레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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