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1. 고전소설과 신소설

우리나라의 소설문학사에서 ‘고소설은 15세기 후반에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金鰲新話)』에서 시작되었고, 한글소설은 허균(許筠)이 17세기 초에 지었을 것으로 보이는 『홍길동전』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이 고소설을 고전소설(古典小說)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현대소설의 시작점에 대해서는 갑오개혁, 3·1운동, 18세기 등 여러 가지 견해가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는 1917년 이광수가 「매일신보」에 연재한 『무정』을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소설’로 본다.

이러한 고소설과 현대소설의 틈새에서 발전단계를 이어 주는 소설문학이 계몽기에 나온 신소설(新小說)이다.

2. 신소설 양대 작가

신소설의 양대(兩大) 작가로서는 『혈의 누』를 지은 이인직(李人稙, 1862~1916)과 『자유종』을 지은 이해조(李海朝, 1869~1927)를 꼽는다.

그런데 이인직은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수행한 후 그 공적을 인정받아 1905년 은사금 80원을 받았고, 1909년 11월 경성 한자신문사 주최로 거행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추도회에 대한신문사 사장 자격으로 참석하여 추도문을 낭독하였으며, 그해 12월 총리대신 이완용의 밀명을 받아 일본으로 건너가 이른바 ‘한국병합문제’와 관련된 일본정계와 여론동향을 정탐하는 등, 이완용의 심복으로 일제의 조선강점에 적극 협력하는 등 골수적인 1급 친일파가 되었다.

반면에 포천 출신의 이해조는 일찍이 관직에서 물러나, 1905년(광무 9년) 7월 무렵에 개신교로 개종하여 지금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있던 연동교회(蓮洞敎會)에 출석했다. 당시 그는 연동교회의 목사인 제임스 게일의 집에서 이준 열사가 창립한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에 가입하였는데, 이 국민교육회 회원이자 연동교회 교인인 『소년한반도(少年韓半島)』의 사장 양재건(梁在謇)을 만나 『소년한반도』 찬술원의 한 사람이 된다.

1907년에는 양기탁‧주시경 등과 함께 ‘광무사(光武社)’를 조직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고, 1908년(융희 2년)에는 애국계몽단체 중 하나인 대한협회(大韓協會) 교육부 사무장, 실업부 평의원 직을 맡았다. 이후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의 일원으로 월보(月報) 편집위원을 했고, 1909년(융희 3년)에는 기호흥학회 소속 기호학교의 겸임 교감까지 맡았다. 이해조는 1927년 6월 10일 포천 자택에서 향년 59세를 일기로 병사하기까지 일제에 조금도 협력하지 않았다.

3. 동농 이해조의 문학세계

이해조의 신소설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1910년 작 『자유종(自由鐘)』으로, 기존의 봉건제도에 비판을 가한 사회적 개혁의식을 나타낸 소설이다. 내용은 한 부인의 생일잔치에 소개받은 다른 부인들이 모여 서로 돌아가면서 사회적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는 것으로, 특히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신교육의 고취, 사회풍속 개량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어, 신소설 중에서도 “진보적 관점이 가장 두드러져 있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원앙도(鴛鴦圖)』 표지와 첫 면, 이해조(李海朝, 1869~1927), 1책, 1912년 1월 27일, 보급서관(普及書館)‧동양서원(東洋書院) 공동발행. 국립중앙도서관 소장품. [사진 제공 - 이양재]
『원앙도(鴛鴦圖)』 표지와 첫 면, 이해조(李海朝, 1869~1927), 1책, 1912년 1월 27일, 보급서관(普及書館)‧동양서원(東洋書院) 공동발행. 국립중앙도서관 소장품. [사진 제공 - 이양재]

이 밖에도 가정 내 처첩 갈등을 다루는 『빈상설(鬢上雪)』, 한 여성의 계모와의 갈등과 유모 아들과의 사랑을 다룬 『춘외춘(春外春)』, 그리고 미신 타파를 내세운 『구마검(驅魔劍)』, 일반적인 이성간의 만남과 이별을 소재로 한 『화세계(花世界)』, 한국 추리정탐소설의 시초격인 『쌍옥적(雙玉笛)』과 『구의산(九疑山)』, 그리고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하여 춘향전을 모티브로 한 『화의 혈(花의 血)』, 선대에 원한을 가진 두 집안이 자식들의 기지로 그 원한을 푸는 과정을 그린 『원앙도(鴛鴦圖)』 및 전통적인 가정, 사회 문제인 고부 갈등을 소재로 한 『봉선화(鳳仙花)』 등 약 4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해 신소설 작가 중 가장 많은 소설을 써 신소설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인직은 국내 최초로 쥘 베른의 『철세계(鐵世界)』 및 『화성돈전(華盛頓傳)』, 『누구의 죄』 등을 번역하여 소개했고, 『춘향전』 ‧ 『심청전』 ‧ 『흥부전』 ‧ 『별주부전』 등의 판소리계 소설을 각각 『옥중화(獄中花)』 ‧ 『강상련(江上蓮)』 ‧ 『연(燕)의 각(脚)』 ‧ 『토(兎)의 간(肝)』 등 현대적 감각을 지닌 작품으로 고쳐 내놓았다.

4. 동농 이해조에 대한 평가와 기념사업

문학평론가 한 분은 “이해조야말로 '신소설의 아버지'로 불려야 한다”라고 평가한다. 한때 신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이인직이 널리 알려졌지만, 이인직은 친일 논란이 크다. 이인직은 이완용의 비서 경력에서나 작품 경향에서나 “친일 사이비 계몽주의”를 대표한 반면, 이해조의 문학은 “중세적 구소설을 국민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소설로 개량하는 고투 속에 우리 소설의 사실주의 발전 도상에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니 문학적 업적에서도 이해조가 이인직보다 앞선다. 즉 이해조의 문학적 업적이 이인직보다도 우위에 있는 것이다.

이해조를 기리는 사업이 이해조의 고향인 경기도 포천시의 문학인들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바 있다. 2005년 ‘동농이해조선생기념사업회’가 설립되어 이해조 관련 세미나 및 특별 강연회 등을 개최하였으며, 2017년부터는 ‘이해조소설문학상’을 제정하여 한때 수여한 바 있다. 현 회장 이병찬 교수(대진대학교)는 최근 『이해조 전집』의 발간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으나, 이들 민간인의 힘만으로 이해조 문학관을 설립하기란 불가능하다.

5. 포천시에 ‘이해조문학관’을 세우자

지금 우리나라는 문학관 붐이 일고 있다. 정부에서는 ‘국립한국문학관’을 준비 중이고, 최근 제주도는 ‘제주문학관’을 개관하였으며, 대구시는 이미 10여 년 전에 ‘대구문학관’을 개관하였고, 안동시는 2004년에 ‘이육사문학관’을 개관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문학관협회’ 회장을 맡은 ‘만해기념관’의 전보삼 관장을 서로 알고 지낸지 40여 년이나 된다. 전보삼 관장은 내가 알기 전에 벌써 우리나라 사설 문학관의 효시를 열었으니 이미 42년이 넘는다. 전 관장에게 전화하여 물으니, “현재 전국 120곳에 문학관이 있으며 그중 30% 정도가 개인이 설립한 사립”이고, “최근 10년 사이에는 지자체가 설립한 공립 문학관이 폭증하고 있다”라고 한다.

당연히 포천시에서도 독자적인 ‘이해조문학관’ 설립을 추진하여야 한다. 이해조는 구한말 계몽기의 자주적인 교육운동가이자 민족운동가이며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애국적 인물이기에, 그를 기념하고 기리는 일은 포천시가 두 팔 걷고 우선하여 추진하여야 할 당연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해조는 1869년에 태어나 1927년 6월 10일에 타계하셨으니, 2027년이면 100주기가 된다. 지금 서두르면 100주기에 맞추어 ‘이해조문학관’ 개관이 가능할 것이다. 포천을 고향으로 둔 사람으로서, 그것도 민족주의를 신봉한다는 애서운동가로서 나는 ‘이해조문학관’이 포천에 서기를 희망한다. 

 

* [이양재의 ‘문화 제주, 문화 Korea’를 위하여] 연재는 매주 금요일에서 목요일로 변경, 게재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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