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에 대한 싸움을 올해 시작했다. 작년 말 AOK(액션원코리아)한국의 운영회의에서 2022년은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에 주력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절감하던 터였다. 미국에서 국내로 기반을 옮기면서 국내에서 주로 활동하다보니 통일운동에 걸림돌이 되는 장애요소를 제거하는 일도 중요한 운동이 된다고 느끼게 되었다.

“대동강 물이 맑다”거나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라는 단순한 느낌을 말하는 것도 실정법인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21세기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나와 같은 해외동포들은 사전에 ‘자기 검열’하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아서 “발언을 용감하게 한다”라는 말을 때때로 듣기도 하는데, 이 말이 결코 좋게만 들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내국인들은 국가보안법을 의식하지 않고는 공적인 자리에서 발언하기조차 힘들다는 말 아니겠는가.

사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고는 평화‧통일교육에, 통일논의나 운동에도 근본적인 진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수 많은 교육자들이나 활동가들이 수도 없이 절감했을 텐데도 어찌해서 이 법이 1948년 제정 이후, 그것도 형법이전에 ‘임시적으로’ 제정된 법이 현 시점까지 실정법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말인가.

국가보안법의 태생조차 ‘국가’를 ‘보안’하는 것과 한참 거리가 멀다. 1925년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치안유지법’을 거의 그대로 따온 법으로, 해방된 조국에서는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흉칙한 법이다.

지난 세월 국가보안법의 잇따른 개악이 이루어지면서 공안세력의 권한이 확대되었고 국가보안법에 의해 정권이 용공사건을 조작해 내고 시민단체들을 억압하고 국민들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탄압해 온 것은 이루 다 열거할 수조차 없다.

그동안 세 번의 거국적인 국가보안법 폐지 움직임이 있었으나 번번이 역부족이었고 마지막 대대적인 노력은 2004년, 자그만치 17년전의 일이라 한다. 그러나 요즈음 어느 때 보다 폐지에 대한 가시성이 높아졌다.

2021년 3월 100여 개(2022년 6월 150여 개로 확대) 국내단체들이 연대하여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을 결성했고 결집된 행동에 의해 5월 국회에 국가보안법폐지 입법청원의 최소 요건인 10만명을 9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돌파해냈다. 입법 청원제도가 생긴 이래로 최단기간에 1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국회 법사위원회는 폐지 심사를 21대 국회가 끝나는 시점인 2024년 5월말로 연기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21대 국회에서 폐지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있다.

지난 6월 26일 서울 인사동 코트(KOTE)에서 열린 AOK 한국 주관 ‘국가보안법폐지운동 출범식’ 모습.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표현하기 위해 참석자들이 썬글라스나 눈을 가리고 촬영했다. [사진 제공 - 정연진]
지난 6월 26일 서울 인사동 코트(KOTE)에서 열린 AOK 한국 주관 ‘국가보안법폐지운동 출범식’ 모습.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표현하기 위해 참석자들이 썬글라스나 눈을 가리고 촬영했다. [사진 제공 - 정연진]
6월 26일 서울 인사동 코트(KOTE)에서 열린 AOK 한국 주관 ‘국가보안법폐지운동 출범식’의 역동적인 분위기. 참석자들이 김광석의 [일어나] 노래를 함께 부르며 폐지운동의 결의를 다졌다. [사진 제공 - 정연진]
6월 26일 서울 인사동 코트(KOTE)에서 열린 AOK 한국 주관 ‘국가보안법폐지운동 출범식’의 역동적인 분위기. 참석자들이 김광석의 [일어나] 노래를 함께 부르며 폐지운동의 결의를 다졌다. [사진 제공 - 정연진]

AOK는 올해 장김은희 공동대표를 위원장으로 선임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준비해왔다. 지난 6월 26일 서울 인사동에서 AOK 주관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출범식에는 예상을 뛰어 넘는 큰 호응이 있었다. 지금까지 폐지운동에 앞장섰던 많은 선배 활동가들, 또한 지역의 회원과 지지자들도 시간을 내서 서울의 행사장까지 참석한 분들이 많았다.

이러한 호응에 고무되어 AOK는 지난 수 개월 연대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지역을 방문해 국가보안법폐지 논의를 활성화하는 지역 기반을 만들기도 했다. 8월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 국내외 누구나 참여가능한 온라인 집담회를 이어가며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를 활성화하는데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 8,9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1,2차 AOK 집담회 웹자보. 국내외 어디서나 참여 가능하도록 화상회의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정연진]
지난 8,9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1,2차 AOK 집담회 웹자보. 국내외 어디서나 참여 가능하도록 화상회의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정연진]

9월에 미국을 방문하는 기회도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현안문제로 알리는데 활용했다. 동포사회에 국가보안법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올 연말로 예상되는 헌법재판소의 국가보안법의 대표 조항 위헌판결에 해외동포들도 의견서 제출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로스앤젤레스, 워싱턴 지역과 뉴욕 지역을 방문했고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살아있었나요? 예전 독재시절에나 있던 법 아닌가요?” 미국에서 재미한인들에게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를 꺼내자, 가장 흔하게 접하는 반응이다. 그간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해 유엔의 국제인권기구들도 수 차례 폐지를 권고했으나 국가보안법은 당연히 국회에서 폐지되어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의원들에게 ‘표에 도움이 안된다’라는 두려움, 즉 이 문제를 입에 올렸다가는 ‘종북’ 프레임에 걸려 다음 번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환점은 헌법재판소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보안법의 대표적 독소조항에 대해(7조 고무,찬양죄, 이적출판물 소지죄, 2조 반국가단체 등) 한국의 헌법재판소에서 9월 15일 위헌법률제청 심판이 있었다.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의 대표조항들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낸다면 앞으로의 폐지 운동에 심대한 파급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헌법재판소가 이번 국가보안법의 위헌법률 제청 심리를 ‘공개변론’ 하기로 한 것도 헌재가 그래도 국가보안법 문제를 전향적으로 심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국가보안법폐지 논의를 위한 LA 간담회에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는 조헌정 목사. 9월 15일 로스앤젤레스. [사진 제공 - 정연진]
국가보안법폐지 논의를 위한 LA 간담회에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는 조헌정 목사. 9월 15일 로스앤젤레스. [사진 제공 - 정연진]
경청하고 있는 LA 간담회 참석자들. [사진 제공 - 정연진]
경청하고 있는 LA 간담회 참석자들. [사진 제공 - 정연진]

로스앤젤레스에서는 AOK회원들이 동포간담회를 갖기로 결의하고 마침 미국 방문 중이던 조헌정 목사(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주 연사로 하여 동포간담회를 AOK를 비롯해 양심수후원회 미주지부, 평화의교회, 평화서당, 개천대제회, 재미동포연합 LA 지역회 공동주최로 가질 수 있었다.

“국가보안법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강연한 조헌정 대표는 “한류가 각광받고 있는 한편에 OECD 최고의 자살률과 저출산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라고 묻고 자살과 출산 모두 남북 분단으로 인한 사회병리현상이라고 진단하면서, “태어나면서부터 북의 형제자매를 철전지원수로 여기도록 교육을 받는 남한의 현실은 자기도 모르게 생명경시현상이 생기게 되고, 그러다가 자신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쉽게 생명을 포기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현재도 수 많은 공안관계자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옭아매기 위해 국가보안법 혐의를 조작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지적하며 “문민정권이 들어선 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매년 300명 이상이 국가보안법으로 조사받고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대법원까지 가면 99% 무죄, 재심에서 100% 무죄가 되지만 길고 긴 재판 과정에서 경제적, 정신적으로 망신창이가”되고 마는 국가보안법 피해자와 가족들의 현실을 개탄했다.

“국가보안법이 없다면 국가보안에 구멍이 뚫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점”도 강조한다. 간첩과 같은 문제는 현재 있는 형법으로 처리가 가능하므로 국가보안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오히려 국민들을 이간질시켜 국가를 망치고 있는 법이라 설명했다.

9월 15일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를 위한 LA 간담회 참석자들. 공동주최 단체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사진 제공 - 정연진]
9월 15일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를 위한 LA 간담회 참석자들. 공동주최 단체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사진 제공 - 정연진]

LA의 동포간담회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왜 지금이 적기인가’ 하는 나의 발표와 함께 한얼연구소 김철호 소장의 재미동포 시각에서 작성한 예시문을 발표하는 순서를 가졌다.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 대표 조항에 대해 위헌을 결정하는 역사적인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미주동포들이 적극 동참해 주기를 당부하면서 워싱턴 지역과 뉴욕‧뉴저지 지역 방문에 나섰다. (계속)

 

[예시문](전문)

재미 동포들이 보내는 국가보안법 독소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호소 의견서

우리 250만 재미동포들은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 2조 1항과 7조 1항, 3항, 5항 등에 대한 위헌 여부를 다투는 공개변론이 열리는 것을 환영합니다.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에 대해, 국가보안법으로 야기되었던 피해사례에 대해, 국가보안법에 의해 체포 투옥되는 현재 진행형인 사실에 대해, 대한민국 최고 법률기관에서 일반 국민들과 함께하는 공개변론의 기회가 온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입니다.

국가보안법 2조 1항은 소위 ‘반국가 단체’에 대해서 명확한 규정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가리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 법조문이지만 그 개념이 지극히 추상적이고 광범위하여 법 조항의 명확성의 원칙에 반합니다. 찬양, 고무, 선전을 처벌하는 7조 1항, 찬양,고무 등을 위한 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한자를 처벌하는 7조 3항, 문서나 도화 등을 제작 반포한자를 처벌하는 7조 5항은 국가보안법 중에서도 대표적인 독소조항입니다.

‘국가보안법’은 헌법의 영토 조항을 근거로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남북 교류와 협력에 관한 법률’은 헌법의 평화통일 조항을 전제로 삼고 있는데, 이는 헌법 안에서 두 가지 다른 하위 법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모순된 법체제가 존재하는 셈입니다. 법 조항 자체 내지 상위법과 연관하여 발생하는 위헌 여부만 따질 것이 아닙니다. 국가보안법은 결국 역대 독재정권들이 ‘북한을 적국으로 규정하여 남한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악용해온 악법이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치안유지법(1925)’를 거의 그대로 만든 이승만 독재의 ‘국가보안법(1948)’이 오늘날 한국인의 법 정서에 맞을 리 만무합니다. 우리의 조국은 1987년 6공화국 체제 이후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 폐지는 진취적이고 통일 지향적인 방향으로 논의되어야 합니다. 정권 안보를 위한 법이 사라짐으로써 온전한 민주와 인권의 사회가 열릴 것입니다. 한 정권의 법, 어느 진영의 법, 남한과 북조선의 법이기를 넘어서서 인류 보편의 가치를 구현하는 법이 요구됩니다.

한편 남과 북의 입장을 넘어서 800만 재외동포의 자유와 인권을 저해하는 국가보안법을 성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외동포들에게 압박을 주는 악법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1944- ), 재일동포 서승 (1945- )의 비극적인 사례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우리 자신과 후손들이 해묵은 동서 진영논리의 피해자가 되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을 이대로 방치하면 민주주의와 국가 안보를 해치는 자승자박의 법이 되고 말 것입니다. 친일 부역자와 독재 방조자들이 선량한 국민들에게 법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인생을 파탄 내고, 정의로운 시민들을 몸서리치게 했던 법입니다. 이 같은 악법이 1948-2022년 74년을 뛰어넘어 상전벽해처럼 달라진 대한 조국에 여전히 서슬이 퍼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국제적인 수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공개변론을 통해 법 개정의 올바른 방향을 수렴하여 독소조항들이 개정되기 바란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국가보안법 자체가 폐지되기를 촉구합니다. 지구촌 대한 동포들이 세계 어디서나 ‘공정한 법 앞에 평등한 민주시민’으로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번 국가보안법 개정을 신호탄으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는 새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희망합니다.

2022. ___. ____ 날짜
 

** 헌재에 의견서를 제출하려면, 예시문에 날짜, 단체명과 개인 이름 또는 개인 이름을 기입한 후, 아래 기재된 이메일로 제출하면 됩니다.

* 단체명과 대표자______ 이름 외 몇 명 (개인이름 OOO.OOO. OOO 명시)
** 단체명 없이 재미동포 OOO OOO OOO 식으로 개인이름만 써도 됩니다.

* 보낼곳 :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myoungrrang@hanmail.net
                  AOK한국: AOKseo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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