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시간은 연속적 총체다. 나누어 이해한다는 것은 가치의 분할만큼이나 힘들다. 그럼에도 역사의 이해를 위해서는 시대를 나누는 틀이 요구된다. 시대구분론이 의미를 갖는 이유다.

시대구분론이란 역사의 흐름을 일정 기준에 따라 몇 개의 기간으로 나누는 지적(知的) 노력이다. 문제는 관점이나 이념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역사 인식의 방법과 이론, 개인이 역사에서 중시하는 분야, 그리고 개인의 역사관에 따라 시대구분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대구분은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다. 자의적인 것으로 역사가의 역사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 주류사학계에서의 시대구분은 시간적으로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나누는 것이 보편적이다. 또한 왕조별로는 반도 중심의 삼국시대로 시작하여, 남북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 현대로 나누는 단선적 방식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특히 왕조별 시대구분은 새로운 왕조의 개창으로 모든 사상(事象)의 변화가 크고, 역사자료가 왕조 중심으로 구분되어 편찬되었으며, 왕조의 역년이 500년 정도의 장구한 역사를 경험한 것과 무관치 않을 듯하다.

우리 근대 역사서 가운데 흥미로운 시대구분을 보여주는 책이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교과서였던 『배달족역사(倍達族歷史)』(1922년)가 그것이다. 김교헌(金敎獻, 1868-1923)의 교열(校閱)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편찬한 역사서다.

김교헌은 대한제국의 규장각부제학과 『국조보감(國朝寶鑑)』 감인위원(監印委員)을 역임한 대학자로, 우리 민족주의역사학의 태두와도 같은 인물이다. 김두봉(金枓奉)이나 백순(白純), 그리고 안재홍(安在鴻) 등이, ‘사마천을 능가하는 역사가’, ‘대한민국 역사학의 종장(宗匠, 우두머리)’, ‘일본의 대학자도 견줄 수 없는 학자’라고 존경을 표한 데서도 확인된다.

『배달족역사』는 김교헌이 편집·교열한 것으로 대한민국상해임시정부가 편찬·간행한 소학생용 교과서다. 김교헌은 1914년 자신이 저술한 『신단민사(神檀民史)』(프린트본)를 요약·정리하여 『배달족역사』를 편집하였다. 이 『신단민사』 역시 1923년 중국 상해에서 중등학교 교과용으로 새로이 출간되었다.

『배달족역사』가 어린 학생들의 역사인식을 고무했다면, 『신단민사』는 만주 독립운동 현장에서 정신적 교본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독립군들 사이에 국사교과서로서 널리 읽혔고 신흥무관학교 등 간도의 민족학교에서 교재로 쓰이며, 항일투쟁의 지침서로 작용한 것이다.

『배달족역사』란 제목부터도 범상치가 않다. ‘배달’은 단군조에 있었던 국가명이다. 또한 ‘배(倍)’는 ‘조부(祖父)’를 뜻하며 ‘달(達)‘은 ’광채 있는 물건(光輝之物)‘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배달‘의 의미는 곧 ’조광(祖光)‘과도 통한다. 다만 조광(祖光)이 조광(朝光)으로 나타남은, 중국의 이국(異國)에 대한 멸시적 기록 관습이 그 원인이었다. 광(光)과 선(鮮)은 그 의미 새김으로도 ’빛남‘이라는 동일성으로 귀착된다. 따라서 ’배달‘이 곧 조광(祖光)이요 조선(朝鮮)이라는 연역도 가능해진다. 『배달족역사』는 곧 『조선족역사』와 다를 바 없다.

한편 『배달족역사』에 담겨진 남북조사관(南北朝史觀)이 주목된다. 남북조사관이란 족통개념(族統槪念, 겨레의식)을 통한 역사인식이다. 단군조(檀君朝) 배달민족의 후예인 북조(北朝)의 부여와 남조(南朝)의 삼한 이래, 근세의 조선(남조)과 청나라(북조)로 이어지기까지 존재했던 남북강역의 세력과 집단을 단군 후예들의 역사 활동으로 간주하는 역사관이다.

이것은 민족주의역사학의 주요 골대인 대륙사관(大陸史觀)과 궤를 같이 하는 인식으로, 일제식민지주의사관의 한 줄기인 반도사관(半島史觀)의 대항 논리로 작용하였다. 한국사의 일부로 취급되는 국가와 한국인의 활동 영역을 한반도뿐만 아니라, 만주 또는 발해만 부근과 산동 반도를 비롯한 중국 본토의 동쪽 해안까지 확장하는 역사관이 대륙사관이다. 강역의식과 그대로 맞물리는 역사관이다.

일각에서는 남북조사관을 일제관학자들의 만선사관(滿鮮史觀)과 교묘히 엮으려는 이도 있다. 그러나 남북조사관이 민족주의적 시각의 역사관이라면, 만선사관은 일제식민주의적 시각의 역사관이란 점에서 그 본질적 의도가 다르다. 만선사관은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에 의해 주창되어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吉岩)에 의해 체계화 된 것이다. 지리적으로 만주 지역과 조선반도의 역사를 하나의 역사학의 단위로 파악하려는 역사학이다.

한국역사학계에서도 일찍부터 일제식민지사학의 타율성론(他律性論)과 연결시켜 그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그러므로 만선사관이 우리 민족의 역사적 타율성을 그 목적으로 한 접근이라면 남북조사관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정체성(正體性)을 찾고자 하는 시각이라는 점에서도 구분되어야 한다.

물론 남북조사관은 조선조 유득공(柳得恭)이 『발해고』「서문」에서 신라와 발해를 남국과 북국으로 설정하여 남북국시대를 주장한 것이 그 효시라 할 수 있다. 이후 김정호(金正浩)도 『대동지지(大東地志)』「방여총지(方輿總志)」〈발해사〉 항목을 통해 발해사를 독립된 항목으로 다루며 삼한·삼국(신라·가야·백제)·삼국(고구려·신라·백제)·남북국(신라·발해)으로 이어지는 고대사 체계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배달족역사』에 투영된 남북조사관은 그 인식의 근본을 달리했다. 발해(북국)‧신라(남국)로 한정되는 남북국이 아니라 열국시대 이후의 모든 역사질서를 아래와 같이 남북조로 바라보았다.

국시대부터 ‘남북조시대’를 설정하여 발해와 신라만이 아니라 고구려‧백제‧말갈‧거란‧태봉‧후백제 등의 역학 관계를 기술한 책이 『배달족역사』다. 또한 여요시대의 설정을 통해 고려와 요나라, 고려와 금나라의 관계를 남북조로 설정하여 전개하는가 하면, 근세에 이르러서도 조청시대를 설정하여 조선과 청나라를 하나의 역사인 남북조시대로 바라보고 있다. 남북조시대가 2천년 이상을 흘러온 것임을 알게 해 준다.

특기되는 부분은 『배달족역사』 마지막 부분이다. ‘한청(韓淸)의 역년(歷年)’이란 제목으로 실린 다음의 기술을 보자.

“대한 융희 4년 경술에 통감 사내정의(寺內正毅)가 총리 이완용과 합병조약을 결(結)하니 이씨의 조선이 519년을 역하였고, 대청 선통 3년 신해에 무창(武昌)에서 혁명군이 기(起)하여 청은 국절(國絶)하고 중화민국이 되니, 애신각라씨의 제호(帝號)가 296년을 역하였더라. 배달민족의 국명군호(國名君號)가 남북강(南北疆)에 개절(皆絶)함은 단군 이후 초유(初有)한 대변(大變)이러라.”

같은 시기 대한제국의 멸망과 청나라가 망한 것을 두고, 단군 이래 배달민족의 역사가 남북으로 모두 단절된 사태라고 한탄한 부분이다. 『배달족역사』가 겨레의식을 통한 남북조사관의 시각에서 서술된 것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 들어 배달겨레의 남북조 모두 나락으로 치닫는다. 일제식민지의 치욕을 겪으며 그렇게 세월이 갔다. 남조(한반도)는 광복을 맞았으나 북조(만주)는 궤멸되었다. 그 북조는 역사마저도 중국사의 일부로 부회(附會)된 지 오래다.

오늘의 우리는 북조(대륙)를 상실한 슬픔은커녕, 돌아 볼 기회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왜곡된 학문성으로 포장된 반도사관의 기득권 때문이다. 더욱이 북조를 잃어버린 남조마저도 두 동강난 지금 아닌가. 쪼그라든 남북조시대의 한켠에 서서 다시금 분단시대의 역사학을 고민해 본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195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대학에서 행정사를 전공하였고, 한신대학교 강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국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술로는 『단조사고』(편역, 2006), 『교계의 민족운동』(공저, 2008), 『한국혼』(편저, 2009), 『국학이란 무엇인가』(2011), 『실천적 민족주의 역사가 장도빈』(2013)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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