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1. 진보(進步)가 아닌 진보(眞保)
진보적 언론 매체 「통일뉴스」에 글을 쓰지만, 필자는 좌파가 아니다. 보수파이다. 우리나라에서 보수파 행세를 하는 자들은 거의 모두 수구파이다. 수구가 보수로 위장하고 있다. “‘진정한 진짜 보수’는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나는 ‘진정한 진짜 보수’ 민족주의자라서, 진보(進步)가 아닌 진보(眞保)라 할 수도 있다.
진보(眞保)와 진보(進步)는 음은 같으나 한자가 다르고 뜻에서 차이가 난다. 민족주의자들은 남과 북을 동족으로 본다. 아울러 적대적 공생 관계를 해체하고 평화적 공존‧공영의 교류‧교역을 통일의 시작점으로 본다. 이제 남과 북은 서로 알고 소통하며 지내야 한다는 명제 아래 상호 간의 문화를 이해하여야 한다. 필자가 북측 미술을 앞서서 연구한 데는 그러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였다.
2. 충북 옥천과 충남 논산
북측 조선화의 거장 화봉(華峯) 황영준(黃榮俊, 1919~2002) 화백은 1919년 5월 20일 외가가 있던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면 덕암리’에서 부친 황경선과 논산 출신의 모친 안병직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흔히들 우리가 말하는 고향의 사전적 의미는 ①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 ②조상 대대로 살아 온 곳, ③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또는 ④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한 곳 등등이 있다. 따라서, 대체로 고향이란 태어나 자란 곳이라던가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사회에서는 많은 경우 산모가 친정으로 가서 아기를 낳은 후에 산후조리를 하고 시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기에, 출생지와 고향의 개념이 달리 적용되기도 하였다.
황영준 화백은 논산군 연산면 덕암리에서 출생하였으나, 친가가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매화리’임을 미루어 보면 옥천을 고향이라 한 것도 틀린 것은 아니다. 황영준 화백 본인이 2002년 3월 5일 유언에서 옥천읍 매화리를 고향으로 언급한 것을 보면,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그리워한 전통적 의미에서의 고향은 본가가 있던 옥천이다.
3. 미술가 황영준 화백
황영준 화백은 지금의 옥천 죽향초등학교를 22회로 졸업한 후, 1931년 13세의 어린 나이로 서울로 올라와 노동하며 이당 김은호(金股鎬) 화백의 화숙에서 1935년까지 5년간 그림을 배웠고, 철도박물관에 근무하면서 1947년과 1948년, 1950년에 각기 2인전을 서울에서 가졌다.
1950년 6월 전쟁이 일어나자 황영준 화백은 가족들을 옥천으로 보내고 “일주일 뒤에 오겠다”라고 했지만,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황영준의 막내 동생에 의하면 “9·28 서울수복 이후 퇴각하는 북한군이 철도 유물을 북으로 가져갔는데, 황영준 선생은 자신이 아니면 이 유물을 지킬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고 유물과 함께 북한으로 넘어갔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월북이 이념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황영준 화백은 1951년에는 북측의 1211고지와 펀치볼 인근을 종군 화가로서 다녔으며, 전후부터 1966년까지는 평양미술대학 교원을 하였고, 이후 남포시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하였으며, 은퇴 후에는 송화미술원 원로로 창작 생활을 하였다. 1970년대에 등장하여 2000년 초까지 활동한 북한의 기라성 같은 여러 조선화가의 스승으로 황영준은 공훈미술가와 인민미술가의 칭호를 받았다.
4. ‘황영준미술관’을 위하여
필자는 월북 작가들 가운데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살린 특출한 화가들을 기념하는 미술관이 섰으면 희망하며, 그 첫 번째 화가로 황영준 화백을 주목한다. 마침 2019년과 2020년에 경인일보사가 주최하여 황영준의 작품을 중국의 C 컬렉션으로부터 240여 점을 대여받아서 『황영준 유작전 - 봄이 온다』를 서울과 인천 대전 등지에서 개최한 바 있다.
코로나19의 유행으로 2022년 6월 현재까지 C 컬렉션에게 작품을 반납하지 못하고 있는데, 필자는 중국의 C 컬렉션을 황영준 화백의 외가가 있던 ‘충청남도 논산군’이나 친가가 있는 ‘충청북도 옥천군’ 중에 한 지자체가 의욕을 가지고 인수하여, 그의 미술세계를 조명하는 미술관을 계획하였으면 한다. 마침 옥천에 있는 ‘정지용기념관’이 황영준의 구거지 매화리에서 그리 멀지 않다.
월북 후 독신으로 양자를 들여 키우며, 항시 귀향을 꿈꾸던 황영준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한 ‘황영준미술관’이 이념과 체재를 뛰어넘어 옥천이나 논산에 개관한다면 이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투자가 될 것이다. 또한 황영준의 작품에는 금강산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데, 그의 금강산 그림들과 종군시기의 그림들을 모아 강원도 인제 펀치볼 내에 ‘황영준미술관’을 설치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