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가장 큰 핵발전소 단지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핵발전소가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3월 4일 새벽, 부속건물에 불이 났다. 불이 난 후에도 계속되는 포격으로 한동안 소방차는 출동하지 못했고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트위터에 "자포리자 원전이 폭발할 경우, 피해가 체르노빌보다 규모가 10배는 클 것"이라며 "러시아는 즉각 폭격을 중단하고, 소방대원이 진입할 수 있도록 하라"고 규탄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번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15기 핵발전소가 위험에 처해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자포리자가 공격받는다면 어디 우크라이나 문제뿐이겠는가? 1986년 4월 26일 유럽을 방사능 공포에 떨게 했던 구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우크라이나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아이러니다.

자포리자 핵발전소 인근지역 방사능 수치가 올라갔다는 보도도 있고 아직 방사능 수치에 변동이 없다고 하는 보도도 있지만 일촉즉발의 전쟁터에서 믿을 수 있는 말은 없다. 포탄이 오가는 전쟁터 한가운데 핵발전소가 존재한다는 것만 사실일 뿐이다.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핵발전소 존재만으로도 핵전쟁은 시간문제다.
전쟁만큼 지구상에서 환경을 해치는 인간의 활동이란 없다.

군대와 전쟁은 기후위기 최대의 주범이다

“우리가 기후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응하려면 탄소배출을 완전하게 측정해야 하며, 정치적으로 불편하다는 이유로 군대에서의 배출량을 제외해서는 안 된다. 대기는 군대가 배출한 탄소를 반드시 포함한다. 따라서 우리 또한 군대를 포함해 탄소배출을 계산해야 한다.”
- 슈테판 크레즈만 (Stephen Kretzmann)

탱크에 석유가 없어서 멈춰선 러시아 군인에게 “내가 러시아 국경까지 견인해 줄까?”라고 조롱한 우크라이나 트럭기사 영상을 보니 석유 없이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전쟁무기다. 화석연료 의존율 100%다.

지난 2월 14일~ 27일까지 2주간 190여개 국이 온라인으로 참여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회의 마지막 날 우크라이나 스비틀라나 크라코프스카 외무장관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화석연료라는 뿌리가 같다”며 전쟁을 멈추고 기후회복의 미래를 건설하자고 호소했다.

온실가스 배출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교통, 전기생산, 가정 및 산업 내 에너지 사용을 위해 화석연료를 태우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석유 소비의 가장 큰 장본인 중 하나는 바로 군대다.

분쟁이나 대규모 군사훈련이 있을 때면 언제나 석유 소비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화염은 온실가스와 극한의 고통을 동시에 배출한다. 전쟁과 군사주의, 그리고 이와 연관된 ‘군사활동 탄소발자국’(the ‘carbon boot-print’)이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가속화하고 있지만 각국은 군사정보의 비밀주의를 내세우며 군사활동, 전쟁과 관련한 온실가스배출 데이터를 제외시켰다.

각국의 온실가스 저감을 의무로 규정한 1997년의 교토의정서에 군사 활동은 온실가스 저감 의무에서 제외되었고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또한 그 수준을 못 벗어났다.

지난해 11월 열린 COP26에서 각국 정상들은 탄소중립 의제에서 '군사' 항목은 쏙 뺐다. 회담장 바깥에서는 기후시민들이 ‘군대를 줄여라’, ‘전쟁이 아닌 평화가 기후위기 해법’이라고 목청껏 외쳤지만 외교와 국방의 비밀주의를 넘어서지 못했다.

책임 있는 과학 및 기술을 장려하는 국제적인 회원 조직 SGR(Scientist for Global Responsibility)에 의하면 전 세계 군대와 군용 장비를 합치면 탄소 배출량의 6% 남짓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어떤 나라도 군사 규모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공식발표 된 자료만을 추적해 추정치를 산출해야 하기 때문에 SGR이 내놓은 숫자 또한 매우 보수적이다.

영국은 자국 군대의 탄소 배출량이 3백만 톤이라고 주장하지만, SGR에 따르면 실제로는 1,100만 톤으로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2020년 4월 ‘전쟁없는세상’을 비롯한 평화 환경단체들이 국방부에 한국의 군사부분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몇몇 건물을 제외하고 통계조차 없었다.

2017년 국내의 한 연구팀이 진행한 ‘군사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에 관한 연구’에서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분야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수를 통해 산출 했더니 2013년 항공, 항만 등 비도로 수송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에 누락 된 군사부분을 추가하면 수송 부분 배출량이 74%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군사 분야 탄소배출량을 배제한 채 2050 탄소중립 계획을 설계하기란 어불성설이다.

미군은 기후위기의 최대 기여자

2019년 6월 브라운대학교 왓슨연구소가 출판한 ‘펜타곤, 온실가스와 기후변화(The Pentagon, Greenhouse Gases & Climate Change)’라는 연구물에서 저자 네타 C. 크리포드는 “미국 국방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연료 소비 기관이자 기후변화에 대한 핵심 기여자”라고 말한다.

크로포드는 에너지부의 정보를 바탕으로 “2001년부터 2017년까지 국방부의 표준 및 비표준 작전으로 배출된 온실가스의 총량이 12억 1천 2백만 미터톤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약 4억만 미터톤은 직접적으로 전쟁 관련 에너지소비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이 연구는 9.11 테러이후 아프카니스탄 전쟁 등 미국이 수행한 주요 전쟁을 중점으로 다룬 것으로 2017년 미국 국방부가 배출한 5천9백만 미터톤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1년치 배출량 보다 많았다.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2001년부터 미국의 군사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2억 5천 7백만 대의 승용차가 한 해에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다.

미군의 에너지소비는 미국 정부 전체의 에너지소비를 견인한다. 2001년 이래 미 국방부의 에너지 소비량은 계속해서 미국 정부 총 에너지 소비량의 77%에서 80% 정도를 차지했다.

지난 2019년 영국에서 발표된 연구에서도 미국의 군대가 기후변화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추적한 연구결과 2017년 한해 동안 매일 약 27만 배럴의 기름을 소비하는데 이를 원화로 단순 계산하면 대략 8조 7천억 원에 이른다. 한 나라의 온실가스 배출치로 치면 전세계에서 47번째로 큰 온실가스 배출국가가 되고 포르투갈과 페루가 1년에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이다.

이라크 전쟁의 경우 첫 4년 동안 1억 4,100만 톤의 탄소를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 자체가 온실가스 폭탄인 셈이다.

기후위기와 전쟁, 동전의 양면

기후변화가 갈등 발생에 미칠 잠재적 영향력은 최근의 연구와 보도에서 인기 있는 주제다.
흉작으로 인해 기근이 발생하고, 가뭄이 물과 다른 천연자원을 둘러싼 분쟁을 발생시키는 등 기후변화가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전략가들의 악몽 같은 시나리오가 세계 곳곳에서 실제 발생하고 있다.

2010년 시리아 내전의 시작이 가뭄과 밀 흉작으로 시작해 끊임없는 분쟁과 전쟁으로 이어지고 거대한 난민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음은 세계가 목도한 터다.

2016년 백악관은 “기후변화라는 충격이 국가안보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광범위하다. 그 충격은 기존의 스트레스 요인을 악화시키고, 가난과 환경 파괴, 그리고 정치적 불안정의 원인이 되며, 국제적테러 행위가 발생할 환경을 제공한다”고 자인한 바 있다.
각국이 기후위기를 환경문제로 다루기보다 외교, 안보문제로 접근하는 이유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세계 밀의 1/3을 생산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면 전쟁터의 사상자뿐만 이미 기후위기로 인해 자연재해와 식량난을 겪고 있는 기후위기에 취약한 나라들의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방송 인터뷰에서 “지구 생명체에서 가장 똑똑한 호모사피엔스가 스스로의 멸종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개탄”했다.

맨몸으로 전차에 올라타고 핵발전소로 진군하는 무기 앞을 가로막아선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함께 전쟁을 막고, 기후위기를 막아야 한다.
그래야 나도 산다.

 

이태옥 원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자연도 인간도, 우주도...

한낱 인간의 욕망이 지구를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꿈꾼다.

에코아나키스트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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