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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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내가 숲 속에서 살았던 때와 같이 검소한 생활을 한다면 도둑과 강도는 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도둑질이나 강도 행위는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고 어떤 이들은 필요한 만큼도 소유하지 못한 사회에서만 발생한다.〔......〕가진 것이 나무 그릇밖에 없다면 인간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에서

 

미국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여 년 동안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말한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내가 숲 속에서 살았던 때와 같이 검소한 생활을 한다면 도둑과 강도는 사라질 것을 확신한다.〔......〕가진 것이 나무 그릇밖에 없다면 인간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원시 부족 사회에서는 지금 같은 잔혹한 전쟁은 없었다. 그러다 농경사회가 되면서 ‘소유’가 생겼다. 그 이후엔 소유를 둘러싼 전쟁이 일어나고 갈수록 전쟁은 스펙터클해지고 잔혹해졌다.

우리는 다시 ‘무소유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소로 한 사람의 자연적인 삶이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 것은 우리 모두 그런 삶을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장자는 ‘만물이 하나(만물제동萬物齊同)’라고 했다. 현대양자물리학에서도 만물이 하나라고 말한다. 삼라만상은 우리 눈에 각기 다른 물질로 보이지만 그것들의 실체는 하나의 에너지 장(場)이라는 것이다. 물질은 우리 감각의 지각일 뿐, 삼라만상의 실상은 ‘텅 빈 충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의 춤 한 자락인 개개인은 우주 전체와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중용에서 말한다. “한 인간이 제자리를 잡으면 끝내는 천하가 제자리를 잡는다.” 따라서 소로 한 개인의 오두막 생활은 소중하다.

소로의 ‘월든’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일 년에 수십 만 명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의 고귀한 정신을 소비품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작년에 나의 고향 상주에 갔더니 귀농한 분들이 폐쇄된 기차역을 살려 오일장을 열고 있었다. 옛날 장터처럼 왁자했다. 장꾼들의 물결엔 웃음이 넘쳐흘렀다. 뜨거운 열기는 파동이 되어 널리 널리 퍼져가며 돈으로 흔들렸던 이 세상이 제자리를 잡아가게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TV프로 ‘나는 자연인이다’를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프로가 도시의 각박한 삶에 지친 현대인들의 눈요기 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은 산천초목을 말하는 게 아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이 세상의 이치인 도(道)는 자연(自然)을 따른다고 한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저절로 존재하며 운동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자연인이 된다는 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스스로 그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최고 가치인 자본과 돈이 왜곡시킨 우리의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제자리를 잡아가게 하는 것이다.

도시의 삶은 우리의 ‘온전한 마음’을 잃게 한다. 마음은 우리의 오감이 다 열렸을 때 온전하게 된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어떤가? 도시는 유독 우리의 눈을 현혹한다. 갖가지 휘황찬란한 것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나머지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은 퇴화한다. 오감이 제자리를 잃으면 우리의 마음이 제자리를 잃는다.

우리는 도시에 살더라도 마음을 되찾기 위해 자주 산에 오르고 들판에 나가야 한다. 명상의 세계, 내 안의 자연 속으로 자주 들어가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 도시인들은 항상 희극 연기를 한다. 항상 명랑하고 유쾌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다. 자본주의가 우리를 오랫동안 길들인 결과다. 항상 즐거우려면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하니까.

윤동주 시인은 깊은 밤에 홀로 밤하늘의 별을 헤아린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 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 《별 헤는 밤》 부분

 

찬란한 별들을 헤아리며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는’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가! 우리는 쉽게 시골이나 깊은 산속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이제 제자리를 잃은 자연이 제자리를 잡아가게 하는 자연인이 되어야 한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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