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 ‎
‎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스카! 가슴이 아플 정도로 라스무스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사람은 바로 오스카였고,〔......〕오스카 같은 방랑자가 아버지였으면 좋겠어.〔......〕여행을 하면서 알게 되는 많은 것들은, 그 여행자의 숨겨진 본성일 거라는 생각을 했어.

                                                   - 스트리드 린드그렌, 『라스무스와 방랑자』에서

 

국민(초등)학교 5학년 쯤 되었을 때 어머니는 내게 말했다. “우리 집 형편에 중학교에 갈 수 없으니, 학교 졸업하고 네 고종 사촌형이 하는 양복점에 취직해라. 명절날 고향에 올 때 양복입고 오면 좋지 않겠느냐?”

다행히 그 후 우리 집 형편이 좀 나아져 나는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 뒤 항상 좋은 운이 따랐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대학교까지 가게 되어, 부모님이 원하시던 ‘양복 입는 월급쟁이’가 되었다.

하지만 월급쟁이를 10년도 채우지 못하고 양복을 벗었다. ‘인생에는 뭔가 더 나은 게 있을 거야! 이렇게 살 수는 없어.’

고아원에 사는 아홉 살짜리 소년 라스무스. 그도 다른 아이와 같이 ‘아름다운 어머니를 가지고 싶고, 단짝 친구 군나르와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고 싶고,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라스무스는 장난을 치다가 고아원 원장인 미스 하비히트에게 물세례를 퍼붓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고아원을 방문한 부인의 양산을 고장 낼 뻔하고, 원장실에 불려가 혼이 날 생각에 고민하던 라스무스는 한밤중에 고아원에서 도망치고 만다.

허허벌판으로 달려 나온 라스무스. 잠을 청하던 헛간에서 낯선 방랑자 오스카를 만난다. 자신을 양자로 삼아줄 부모님을 찾아 방랑의 길에 오른 라스무스와 친절한 방랑자 오스카.

그러다 그는 ‘고아원에서 여러 번 꿈꾸었던 바로 그런 부모’를 만나게 된다. 엄청난 기적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었다. 라스무스도 집과 부모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그는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온 뒤로 가장 불행해졌다. 무언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듯한, 너무나도 슬픈 기분이 들어서 꼭 죽을 것만 같았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자신의 숨겨져 있던 본성을. 그가 진정으로 원한 건, 안락한 가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안에 잠자고 있던 ‘오스카’가 깨어난 것이다. 그는 가슴이 아플 정도로 오스카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의 깊은 내면에서 들려오는 자신의 영혼의 소리를 들었다. ‘오스카 같은 방랑자가 아버지였으면 좋겠어.’

나는 매달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고 퇴직 후에 연금이 보장되어 있는 ‘정규직’을 떠난 후 엄청난 방황을 했다.

그때는 사람들이 ‘꿀 빨아먹는 세대’라고 부르던 경제 호황기였기에, 돈 걱정은 하지 않았다. 조금만 노력하면 돈은 쉽게 벌 수 있었다.

나는 술에 취해 울부짖었다. ‘나는 누구야?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라스무스 같은 아이가 아니었기에, 나의 방황은 엄청 길었던 것 같다.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모든 의문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내 앞길이 맑디맑게 훤히 드러났다. 라스무스가 발견했던 ‘오스카’ 나는 내 안의 오스카를 찾아낸 것이다.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황금. 용의 입에 물려 있는 여의주...... .

괴테는 말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존재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먹고 사는 일에 올인하는 요즘 젊은 세대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힘겹게 ‘헬조선’을 견뎌내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어떻게 ‘먹고 사는 일 이상의 것’을 찾으라고 말할 수 있나? 지금 당장 방황하라고 말할 수 있나? 최소한의 먹고 사는 것이 충족되어야, 방황을 하고 다른 삶을 꿈꿀 수 있을 텐데.

시인 보들레르는 ‘고뇌와 권태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는 우리들(쇼펜하우어)’에게 슬픈 노래를 들려준다.

 

늘 취해 있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이것만이 문제다. 어깨를 억눌러 그대를 아래로 구부리게 하는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노상 취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취하시오》 부분

 

주위를 둘러보면 대다수 사람들이 취해서 산다. 술에, 일에, 도박에, 사랑에, 공부에, 봉사활동에, 관광에, 쇼핑에, 예술에..... .

사람들은 그들을 열심히 산다고 한다.

‘어깨를 억눌러 그대를 아래로 구부리게 하는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취하지 않고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시간을 제압한 사람들이다. 그들 앞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위로 분수처럼 솟구쳐 오른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