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지 벌써 7개월이 넘고 있는데도 기대했던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뚜렷한 변화는커녕 일말의 미동도 보이지 않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기회였던 새로운 대북정책 점검과 한미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을 대화로 이끌 유인책이 부재했다는 평가입니다.

사실 지금 북미관계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하노이에서의 ‘김정은-트럼프’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미국에 대해 앞으로 다시 만나려면 ‘새로운 셈법’을 가져오라고 요구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부응하는 듯 몇 차례 냄새만 피우다가 연기만 날려버렸습니다. 게다가 하노이 회담 당시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했던 한국은 북한에 미운 털이 박혀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바이든 행정부로 교체되었지만 북한은 여전히 적대시정책 철회와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변함없는 북한’입니다. 이에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바이든 행정부로 바뀌었다면서 6.12싱가포르성명 존중 등 유화 분위기를 띄우지만 새로운 셈법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미국’입니다.

‘변함없는 북한’과 ‘변하지 않는 미국’. 이 구도가 현재 북미관계를 규정해 주고 있습니다. 이 구도가 ‘하노이 노딜’ 직후부터 형성됐으니 벌써 2년 6개월째이고, 이 구도가 더 지속된다면 북미관계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고착화될 것입니다. 사실 ‘하노이 노딜’은 미국이 협상을 차버린 원죄로부터 기인하기에 북한이 변할 수는 없습니다. 고착된 구도를 타파할 수 있는 주요 고리는 미국이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북한에 대해 대화의 손을 내밀고, 또 몇 가지 유연한 입장을 보이기도 합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대북라인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지난 3월에 방한했으며,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은 7월 그리고 성김 대북특별대표는 6월과 8월에 각각 한국을 찾았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대북 메시지는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였는데,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입니다.

‘조건 없는 대화’는 언뜻 그 말 자체로는 선의로 해석될 정도로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 과거 전력을 가리는 것으로서, 북한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오그랑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꼼수나 속임수라는 것이지요. 앞에서도 밝혔듯이 미국은 ‘하노이 노딜’에 대한 원죄가 있고 또 북한 역시 이를 계산할 것을 아예 정해놨기에 미국이 여기에서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조건 없는 대화’가 아니라 ‘조건 있는 대화’, 즉 미국이 먼저 북한에 대해 제재 해제 등 무언가를 하겠다며 대화를 하자고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조건 없는 대화’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면 북한이 호응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북미 고착화 상태가 지속된다면 고립된 북한은 시시각각 어렵겠지만 체질상 견딜 것이고, 미국으로서는 ‘북한 비핵화’라는 근본 문제를 영영 풀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스웨덴의 민간 정책연구단체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북한의 핵탄두 보유 수는 40~50개로 추정됐는데, 이 수치는 지난해 30~40개보다 10개 늘어난 것입니다. 게다가 최근 북한의 영변 원자로 재가동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의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할 경량 핵무기에 필요한 삼중수소 생산을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핵탄두가 증가하고 경량화·다양화될수록 북한의 몸값은 오를 것이고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 갈 것입니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은 힘들겠지만 미국은 병들 것입니다. ‘변함없는 북한’과 ‘변하지 않는 미국’ 사이에서 방법은? 당연히 미국이 먼저 변하는 것입니다. 현 북미관계 고착화를 형성시킨 ‘하노이 노딜’을 해결하겠다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늦긴 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셈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