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잃은 계절풍(季節風) - 발의 절량보고(絶糧報告) (끝)

 

뜨물로 허기 채우는 노파(老婆)

쌀도 없고 돈도 없는 마을⋅마을…

80평생 처음 보는 꼴이요

 

○.... 절량의 마을에 오두막 가게 하나 - 그 바로 옆 개울에서 젊은 여인이 보리쌀을 씻고 있었다. 때마침 다가온 노파 하나가 떠내려가는 쌀뜨물을 양재기에다 받아가지고 냉큼 뒤돌아서더니 단숨에 쭈욱 들이키고 말았다.

허기찬 뱃속을 맹물로 채우느니 보다 보리쌀을 씻은 물을 마시고 한 끼를 때어보자는 노파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젊은이가 노파를 지켜보며 무엇을 하느냐고 나무라니 노파는 어물어물 하다가 또 한 양재기를 재빨리 떠가지고 어기정어기정 달아 빼고 말았다 - 절량이란 이렇게 비참한 것이라고 짐작하는 사람은 드물게다.

 
○.... 환갑을 훨씬 넘은 박(朴)장수라는 노인은 지게에 엿 통을 지고 오늘도 오, 육십릿 길을 쏘다녔다.

보리쌀이나마 구경한다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엿을 팔아 백환을 얻었다.

박(朴)노인은 오두막 가게 앞에 지게를 내려놓고 마루에 기대앉으며 깊은 한숨을 몰아쳤다.

「몽땅 쌀이 떨어져 물만 먹고사는 사람들이니 어디 장사가 돼야지...」

노인이 중얼거리자 가게 주인이라는 팝십세의 황노인이

「금년처럼 심한 해는 팔십 평생 처음 보는 것 같소이다.」

이렇게 말하며 박(朴)노인에게 소주 한잔을 권한다. 가게라고는 하나 사과 궤짝 절반도 못되는 유리통에 엿 아홉자루, 과자부스러기 두어가지 합쳐서 두세근 밖에 없다. 동네 아이들이 지게며 바구니에 나물을 캐 담아가지고 이곳을 지날 때면 그 초라한 과자통을 들여다보고 침을 삼킨다. 그러나 십환짜리 하나 성큼 내놓는 아이는 없다.

부황증에 배때기가 튀어나온 아이들에게는 죽도록 먹고 싶은 과자지만 먹어볼 도리가 없다.

쌀도 없고 돈도 없는 마을 마을 -

계절풍마저 빛을 잃었다.

 

(글⋅사진 = 곽인효 기자 郭仁孝記者)

 

◇ 사진 = 오두막 가게 앞에 모인 아이들이 과자통을 들여다보며 침을 삼키고 있다. - 창원군(昌原君)에 서촌(西村)에서)

빛 잃은 계절풍(季節風) - 발의 절량보고(絶糧報告) (끝)

빛 잃은 계절풍(季節風) - 발의 절량보고(絶糧報告) (끝)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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