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 ‎
‎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어떤 빌어먹을 인간이 자명종 소리에 새벽 여섯시 반에 깨어나, 침대에서 뛰쳐나오고, 옷을 입고, 억지로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오줌을 누고, 이를 닦고, 머리를 빗고, 본질적으로 누군가에게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는 장소로 가기 위해 교통지옥과 싸우고,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하는 그런 삶을 기꺼이 받아들인단 말인가?〔......〕나는 고독 속에서 자란 인간이다. 내게 고독이 없다면, 그건 다른 사람에게 음식이나 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고독이 없는 하루하루는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의 고독을 전혀 떠벌리지 않았다. 다만 그것에 의존할 뿐이다.

                                                                       - 찰스 부코우스키, 『팩토텀』에서

 

철인 디오게네스는 아테네 광장에서 자위행위를 하고는 배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단다. ‘배고픔도 손으로 쓰다듬어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는 두 가지다. 식(食)과 성(性). 디오게네스는 기본 욕구에 충실한 인간이었다. 그는 그 두 욕구만 만족하면 더 이상의 욕심은 헛된 것으로 보아 소박하게 살았다. 그를 견유(犬儒)학파라고 한다. 개의 삶의 추구한다. 개는 배만 부르면 성자(聖者)가 된다.

그는 몸으로 철학을 한 사람이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는 플라톤과 대비된다. 플라톤은 아카데미아를 만들어 철학자를 양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찰스 부코우스키의 소설 ‘팩토텀’을 읽으며 디오게네스를 생각했다. 주인공 치나스키는 디오게네스의 후예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욕구만 채우며 유유자적 살아간다.

그는 하루하루 뱅글뱅글 돌아가는 삶, 기계가 되어가는 삶을 강하게 거부한다. ‘도대체 어떤 빌어먹을 인간이 그런 삶을 기꺼이 받아들인단 말인가?’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가? 그런 삶이 이 시대의 이상상이 아닌가?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삶을 향하여 줄달음치는 게 우리의 삶이다. 이런 삶에서 벗어나면 ‘루저’가 된다.

한평생 일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어도 만족하지 못한다. 새로운 욕망을 찾아 달음박질치고 새로운 욕망을 위해 일을 한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그들. 그러다 문득 그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본성에 맞지 않는 이런 헛된 삶에서 이탈한 치나스키. 새벽이면 인력 시장에 나와 어슬렁거리는 그를 사람들은 뭐라 부를까? 가족이나 동창생 중에 그런 인간이 있으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대할까?

치나스크는 술, 여자, 그리고 잡일이 삶의 전부다, 얼마나 소박한가!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술을 마시고 여자와 함께 뒹구는 삶을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삶에 집착이 없다. 흡사 불교의 선사 같다. 모든 인간관계가 회자정리(會者定離)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 아무런 미련이 없다. 우리는 집착을 사랑으로 포장한다. 세상은 만인 대 만인의 싸움터가 된다. 그는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길을 간다.

그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술을 마시다 회사에 복귀하지 않았다. 다음 날 모두 해고를 당했다. 하지만 마지막 하루를 일하며 그들은 유쾌하다. 흡사 아이들 같다. 카르페 디엠(지금 이 순간에 충실 하라).

이런 영혼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모두 근면성실하게 일한다면? 끔찍한 광경이 떠오르지 않는가? 조지 오웰의 ‘1984’가? 치나스키는 이 시대의 광대다. 몸으로 진실을 증언하는.

우리는 플라톤의 후예들을 본다. 그들을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강의실에서 연구실에서 머리가 터지도록 공부한 그들을 철학의 전문가라고 한다.

나는 학창 시절에 ‘소크라테스’ ‘니체’ ‘장자’ ‘왕양명’ 등의 강의를 들으며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이렇게 공부하여 그들처럼 될 수 있을까? 몸으로 살아내지 않는 지식의 흡수가 철학 공부란 말인가?

그래서 대학원에 가지 않고 여기저기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진정한 공부는 주로 뒤풀이에서 이루어졌다. 술에 취해 바라보는 인간, 세상. 철학은 펄펄 거리는 생명체였다. 우리의 삶이었다.

니체는 말했다. “나는 오직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우리는 살아내지 못한 글들, 머리로 짜낸 글들을 읽고 공부했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을 보면 다들 죽어 있다. 그들의 입과 뇌에서는 죽은 활자들이 난무한다.

치나스키가 날것의 인간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글쓰기’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는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어가는 자신을 다 드러냈다. 다 드러내고 나면 새살이 돋아나온다. 그는 항상 새로이 태어나는 인간이었다. 그는 ‘고독이 없는 하루하루는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이성복 시인은 그날이 그날인 어느 하루의 아픔을 노래한다.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 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이성복, 『그날』에서

 

모두 병 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날들. 아무도 신음 소리를 내지 않기에 세상은 무사하다.

시인만이 신음 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오늘도 무사히...... .’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견딘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