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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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위협에 따른 공포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인 무정부 상태의 공포보다는 작다. 무정부 상태보다는 국가가 좀 더 나은 대안이다.〔......〕최소국가는 우리를 불가침의 개인들로 취급한다. 우리는 이 국가 안에서 타인에 의해 도구나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는다. 최소국가에서 우리는 존엄성을 가진 개인이자, 인격을 보호받는 권리자다.

                                             - 로버트 노직,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에서

 

미국의 자유지상주의자 노직은 인간의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본다. 오래 전에 ‘파리 대왕’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소년들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끔찍한 소설이다.

지금도 그 소설을 읽을 때의 전율을 기억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구나! 자연 상태가 되면 안 되겠어.’ 국가가 있는 것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노직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 뒤 알았다. 실제 자연 상태의 원시인들은 아주 평화롭게 살았다는 것을. 백인들이 들어가지 전의 아메리카 인디언들, 호주의 원주민들....... . 지금도 원시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오래된 미래’의 라다크, 모계사회의 모쒀족...... .

파리 대왕의 소년들은 탐욕을 배운 문명인들이었다. 문명인은 자연 상태가 되면 한순간에 탐욕적인 인간과 짐승의 폭력성이 결합한다. 괴물이 된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삶을 결단할 수 있는 고귀한 존재다.

1945년 8.15 이후 해방공간에서 우리는 자치를 했다. 국가가 만들어지기 전인데 평화로운 질서를 유지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은 어떤가? 공권력이 사라진 공간에서도 시민들은 절도범 하나 없는 아름다운 질서를 유지했다.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는 약육강식의 끔찍한 야수가 되어 국가가 생겨났다는 노직의 주장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인간과 세상을 연구한 것인가?

그는 이어서 ‘개인의 존엄성과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 국가’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의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는 1974년에 출간되었다. 그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휩쓸 때 노직이 주장한 최소 국가들은 초토화되었다. 코로나 19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 국가는 그 존재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국가 없이도 평화롭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인간에게 국가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최소한 국민을 어떤 위기 앞에서도 보호해야 하지 않는가?

지금은 자본이 세계를 하나로 평정한 시대다. 개별 국가들은 다국적 자본 앞에서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본이 인간의 영혼까지 지배하는 시대. 노직의 사상을 받아들인 국가들에서 국민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노자는 말했다. “한 사람의 마음은 천만 인의 마음이다.” 인간에겐 ‘참나(self)’가 있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 참나가 사라진 개인의 ‘자아(ego)’는 허상이다. 자아는 참나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한다.

노직의 자유는 자아의 자유다. 그는 이 자유가 지상에서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한다. 그의 자유는 코로나 19의 위기 앞에서 자신의 쾌락만 좇는 서구 문명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진정으로 자유로움을 느낄까?

인간에게는 ‘인의예지(仁義禮智)와 진선미(眞善美)’라는 고귀한 본성이 있다. 이 본성이 사라진 자아는 자기밖에 모르는 탐욕에 젖어든다. 끝없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다. 노직의 사상은 신자유주의의 자본가들이 원하는 인간상을 옹호한다.

뇌졸중(중풍) 걸렸다 깨어난 뇌 과학자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중풍에 걸렸을 때 깨어나기 싫었다고 한다. 사고가 멈춘 상태. 명상 상태다. 불교에서 말하는 법열이다. 그는 참나를 만난 것이다.

자아 중심의 사고에 익숙했던 뇌 과학자는 인간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게, 참나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자아는 돈, 권력, 명예욕으로 살아간다. 참나 없는 자아는 결국 우울과 권태에 빠진다. 견딜 수 없어 더 강한 쾌락, 향락을 찾는다.

롤스, 노직, 센델 같은 자유주의자들의 저서가 우리나라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는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의 심성과 상상력이 그들의 ‘개인과 자유’에 갇혀버렸다는 것을 말할 것이다.

‘천만인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나 하나의 마음만 달랑 남은 개인, 그 개인의 자유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을 때 세상은 어떻게 될까? 최근의 ‘묻지마 범행’ ‘자녀 학대 살해’ 등 끔찍한 범행들은 참나를 잃어버린 ‘개인, 자유’의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백석 시인은 애타게 가족을 찾는 개미들을 보며 ‘수라(修羅)- 생지옥’가 되어버린 이 세상을 본다.

 

거미새끼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 백석,《수라(修羅)》부분

 

누가 개미 가족을 이산가족으로 만들었을까? 인간들이 아닌가? 큰 집을 지어 살며 다른 생명체들 살 곳을 다 빼앗아버리지 않았는가?

개미 가족은 그냥 두기만 하면 된다. 자기들끼리 오순도순 잘 산다.

시인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슬픈 조국을 본다. 수라가 되어버린 일본군국주의자들의 만행과 망상을 본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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