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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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열등감을 극복하고 남보다 우월한 역할을 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는 사랑스런 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완전한 의미에서 인간은 인류애라는 깊은 감정을 고양시키지 않은 채로는, 그리고 인간 존재로서의 의무를 실천하지 못한 채로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 알프레트 아들러, 『인간이해』에서

 

아주 어릴 적 잠자다 악몽을 꾸었는지 놀라서 깨어났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이 황급히 내 곁으로 달려와서 나를 달래주었다. 나는 어슴푸레 깨달았다. 놀라서 깼을 때는 내가 ‘왕’이라는 것을.

부모님께 사랑을 받고 싶을 때는 놀라 깨어서는 일부러 머리까지 흔들며 목 놓아 울었다. 부모님은 안절부절 못했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이 방법을 쓸 수 없었다. 아우들이 태어면서 나는 ‘형’이 되어야 했다. 또래들과 어울리면서 나의 존재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물 위의 기름’이 되었다. 새까만 시골 아이인 나는 희멀건 읍내 아이들 곁을 맴돌았다.

기성회비를 못내, 수업도 못하고 집으로 자주 쫓겨났다. 긴 신작로를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위대한 과학자가 될 거야!’ 하지만 집에 가면 소꼴을 베러 가거나 채소밭으로 일하러 가야했다.

중학교 때는 홈즈와 루팡이 나오는 탐정 소설을 많이 읽었다. 어른이 되어 탐정이 된 나를 상상하며 외로운 나를 견뎠다.

3학년이 되며 나는 사춘기가 된 것 같다. 헤세, 바이런 등의 사랑시를 읽었다. 그러다 사랑시 한 편을 썼다. 합격생이라는 잡지에 투고했다. 아이들이 잡지에 실린 내 시를 읽고는 나를 달리 보는 듯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외로운 아이였다. 자취방에 돌아오면 새벽까지 무협지를 읽었다. 나는 무림의 절대 지존이 되어 정파의 위선자들과 사파들을 처단하며 강호를 떠돌았다. 내 곁엔 항상 미녀들이 있었다.

언젠가는 나한테 편지를 썼다. 우체통에서 가져온 내 편지를 읽으며 기분이 묘했다. 버스 안내양과의 풋사랑을 그린 소설 한 편을 써서 학원이라는 잡지에 투고했다. 내 글을 읽은 아이들이 내게 다가왔다.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동안 외로운 나를 견디려 논문 한 편을 썼다. 다음 해 학교에서 논문현상 모집을 했다. 투고했더니 당선이었다.

지도 교수님이 내게 대학원에 진학해 교수가 되라고 하셨다. 공납금보다 훨씬 많은 장학금을 졸업할 때까지 주셨다. 나는 처음으로 ‘월급쟁이’ 이상의 삶을 꿈꾸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말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열등감을 극복하고 남보다 우월한 역할을 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는 사랑스런 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내 지나온 삶은 내게 항상 끈적이며 달라붙는 외로움,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독서를 하며 공상세계로 도피하거나, 글쓰기로 나의 허영을 드러내며 외롭고 힘겨운 시간을 견뎌내던 시간이었다. 나의 삶을, 나의 운명을 소중히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주 어릴 적 깨달은 ‘권력’을 향해 나아갔다면 나는 나만 아는 냉혈한으로 성장해 갔을지 모른다. 빈농의 자식이 너무나 싫었으니까.

1987년 6월 항쟁,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했다. 나는 그때까지 ‘영웅사관’을 갖고 있었다. ‘세상은 엘리트가 이끄는 거야!’

나는 철학자가 되어 ‘이상사회’라는 대작을 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책대로만 하면 이상사회는 오는 거야!’

대학원에 진학할 돈을 모으던 교사 시절, 나는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군중을 보며 굽이굽이 흘러가는 거대한 역사의 강물을 보았다. 아, 나는 전율했다. ‘역사는 영웅이 아닌 대중이 이끌어가는 거였구나!’

나는 그 뒤 전교조와 빈민단체 활동을 하며 ‘네 운명을 사랑하라(니체)’는 말이 뜨겁게 와 닿았다. 나는 이 땅 이 시대에서 가야 할 나의 소명을 생각했다.

내가 ‘개인’에 머물지 않고 ‘더 큰 나’로 나아간 게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완전한 의미에서 인간은 인류애라는 깊은 감정을 고양시키지 않은 채로는, 그리고 인간 존재로서의 의무를 실천하지 못한 채로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기에(아들러).’

인간은 열등감을 극복하며 나아가다 사회, 공동체를 잊고 나만 아는 속물로 갈 수도 있고, 속물을 넘어 온갖 반사회적인 범인이 될 수도 있다.

아들러 심리학을 ‘개인심리학’이라고 한다. 개인에서 출발하는 그의 심리학은 그가 강조하는 사회를 잊기가 쉽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유적 존재이기에 인간은 각자 하나이면서 인류 전체가 하나다. 인간을 개인으로 떼어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의 심리학은 그가 강조하는 사회, 공동체는 빠지고 ‘자기계발서’가 되어가고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의 각자도생의 이데올로기가 되고 말 것이다.

기형도 시인은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슬프게 노래하고 있다.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부분

 

질투의 힘이 그를 사랑까지 이끌어 가기 전에 그는 요절했다. 좀 더 오래 살았다면 그는 분명히 사랑을 알았을 텐데.

그의 영혼은 깊은 지하 동굴로 떨어졌다 다시는 위로 오르지 못했다.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낸 아우구스티누스가 성인(聖人)이 된 것처럼. 그는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 텐데.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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