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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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그대의 포고령이 신들의 변함없는 불문율들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나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려고 태어났어요.

                                                                           - 소포클레스, 『안티고네』에서

 

멀리 할수록 좋은 곳이 ‘병원과 경찰서’라는 말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갈일이 없겠지만 경철서는 어떨까? ‘법 없이 살 사람’이 되면 경찰서에 갈 일이 없을까?

아테네의 소피스트들은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고 했다. 정의 대신 법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그 뜻이 명확히 와 닿을 것이다.

‘유전무죄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누구에게나 맞는 보편적인 정의를 세우고자 했다. 그래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악법도 법’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깊은 내면에서 ‘도망가라!’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한평생을 내면의 소리에 따라 살다 죽었다. 이 ‘내면의 소리’가 자연법이다. 누구에게나 자연스레 있는 법, 양심이다.

노자가 말한 ‘하늘의 그물은 성기지만 놓치는 법이 없는’ 천지자연, 삼라만상의 법칙이고 소우주인 인간의 법칙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으로써 아테네 시민에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 법을 어기면 천벌(天罰)을 받는다고.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인 폴로니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왕권 다툼을 벌이다 둘 다 전사한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크레온은 테베를 지키려 했던 에테오클레스에게는 성대한 장례를 베풀어주되, 반역자인 폴로니케스의 주검은 매장과 애도를 금하며 광야에 버려 짐승들이 뜯어먹게 한다는 칙령을 선포한다.

죽은 형제의 누이인 안티고네는 왕의 칙령에도 오빠 폴로니케스의 주검을 매장하려다 잡혀 오게 된다.

안티고네는 당당하게 말한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그대의 포고령이 신들의 변함없는 불문율들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그녀는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를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려고 태어났어요.”

독재자들은 항상 법치를 강조한다. 그들이 말하는 법은 자신들이 만든 법, 실정법이다. 우리는 안다. 그 법들보다 우위에 있는 게 바로 자연법이라는 것을.

오래 전에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법정에서 ‘증거를 대시오!’하고 다그치는 판사를 향해 피고인이 나직이 중얼거렸단다. ‘증거는 무슨 증거?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데...... .”

그 피고인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증거를 대라니! 도대체 증거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증거가 없으면 무죄다. 또한 누가 누명을 씌워도 증거가 있으면 유죄다. 이 얼마나 황당한 법치주의인가?

우리가 실정법만 법으로 알고 살아가게 되면 법치주의라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 되고 말 것이다.

법치와 정의를 내세웠던 긴 군사독재를 끝장 낸 것은 자연법이었다. ‘행동하는 양심’들이 강자의 이익이 되어버렸던 법과 정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지금은 돈이라는 유일신이 통치하는 ‘자본독재시대’다. 자본독재자들도 여전히 법치를 강조한다. 총칼이 사라진 자리에 법전이 놓여있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주인인 세상이다.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법(실정법)은 최소한이 되고 양심(자연법)이 최대한이 될 수 있도록.

일본의 저항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 시인은 안중근 의사를 위하여 ‘코코아 한 잔’을 노래했다고 한다.

 

그것은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이
늘 갖는 슬픔인 것을.

끝없는 논쟁후의
차갑게 식어버린
코코아 한 모금을 홀짝이며,

혀끝에 닿는
그 씁쓸한 맛으로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프고도 슬픈 마음을.

                                                      - 이시카와 타쿠보쿠, 《코코아 한 잔》 부분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합법적으로’ 병합하여 삼천리강토를 마구 유린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시인은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 안다고 한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이 늘 갖는 슬픔’을.

우리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헤매는 예수의 마음으로 테러리스트들을 대해야 한다. ‘테러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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