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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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으로 라다크 마을은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모든 농가가 대부분 완벽하게 자급 생활을 하고 있고 대부분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개인의 이익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상충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경쟁이 아닌 상호협조를 통해 경제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상호발전과 통합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혹독한 기후와 부족한 자원에도 라다크 사람들은 단순한 생존 이상의 의미를 갖는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에서 


 아프리카 개미들이 어떻게 높이 2미터의 집을 설계도도 없이, 건축전문가도 없이 지을 수 있을까? 학자들이 10년간 연구한 결론. ‘각자 알아서 하기’란다.

 개미들은 페르몬을 발사하여 의사소통을 한다. 한 개미가 길을 가다 ‘어? 습기가 많아 비가 올 것 같아.’하고 느끼면 그 느낌을 페르몬으로 발사한다. 그러면 그 냄새를 맡은 다른 개미가 ‘나도 그런데.’하고 느끼면 그 개미도 같은 페르몬을 발사한다.    

 이렇게 하여 개미 세계는 한 순간에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비가 오기 전날 개미들이 장사진을 이루며 이사를 가는 장면을 쉽게 접하게 된다.

 개미의 세계는 완전한 민주주의다. 지배자가 없다. 여왕개미는 단지 알을 낳을 뿐이다. 명령하는 지도자 없이 개미들은 각자 자신의 소명을 다하며 멋지게 산다.

 개미도 이럴 진데 인간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탁월한 지도자, 전문가들이 있어야 인간 세계가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계급사회에 길들여져서 그렇다. 

 영국의 언어학자 헬레나는 히말라야 산맥의 오지에 있는 라다크를 찾았다가 17년을 원주민들과 함께 산다. 그들이 삶에 반해서다. 그녀는 충격을 받는다. ‘아, 인류의 오래된 미래가 여기에 있었구나!’ 

 그녀는 말한다. “전통적으로 라다크 마을은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모든 농가가 대부분 완벽하게 자급 생활을 하고 있고 대부분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각자 알아서 살아간다.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다. 각자 알아서 살아가지만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상충되지 않는 사회’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하나를 위하는 사회다. 

 매미 같은 미물이나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나 ‘각자 알아서 하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런데 계급과 신분이 있는 문명사회에서는 이런 자유로운 개인이 드물다. 

 공자는 “나이 70이 되어서야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더라.”라고 했다. 원시생활을 하는 인간은 누구나 도달하는 경지인데.   

 헬레나는 이어서 말한다. “혹독한 기후와 부족한 자원에도 라다크 사람들은 단순한 생존 이상의 의미를 갖는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문명사회에 사는 우리는 ‘생존’을 위해 한평생을 보내지 않는가! 우리는 그들이 누리는 ‘행복’을 상상하기 힘들다. 

 행복은 ‘자유로운 인간’이 되어야 맛볼 수 있다. 행복은 자유로운 개인의 깊은 내면에서 솟아올라온다. 대다수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행복감’이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착각. 문명인은 말초적 쾌락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 문명인인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기생충’만 없으면 된다. 우리들에게 빨대를 꽂아 피와 영양분을 빨아먹는 ‘왕’ ‘귀족’ 같은 특권층들만 없으면 된다. 

 ‘촛불집회’에 가보면 안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그들은 각자 알아서 한다. 라다크 마을처럼 ‘공동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각자의 깊은 내면에서 들여오는 소리대로 행동을 한다. 누가 소리친다. “상여를 지고 가는 농민들의 이마에 땀이 너무 많이 흘러요. 우리 음료수라도 사 줍시다!” 한순간에 돈이 수북이 쌓인다.  

 촛불의 집단지성이 수구기득권 세력의 박근혜 정부를 몰락시키고 민주개혁정부를 탄생시켰다. 촛불은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타오를 것이다.

 라다크의 원주민들은 다들 당당하고 위엄이 있다. 문명사회에서는 다들 ‘쫄아’있다. 머리 위에 다른 인간들이 있어 항상 짓눌려 있다. 몸과 마음이 비틀어져 있다. 탐욕과 질시와 혐오가 그득하다. 

 야생 동물과 가축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축의 얼굴은 언제 봐도 슬프다. 항상 표정 없는 얼굴이다.

 산에서 쉽게 만나는 다람쥐 한 마리에게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있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새들을 보라! 얼마나 위엄이 넘치는가!

 이 시대의 신화,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만든 애플이 대학원 같은 회사가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자유로운 개인이 만들어가는 직장, 인류의 꿈일 것이다. 

 많은 조직들이 팀제를 택하고 있다. 팀이 알아서 해! 하지만 그 팀이 자유롭지 않으면 무늬만 팀이 될 것이다. 팀제를 잘 운영하는 작은 회사들이 성공하는 사례가 많다.

 애플, 팀의 정신이 세계, 국가, 사회...... 모든 조직으로 흘러가 거대한 인류사의 강물이 되어 도도히 흘러가길 간절히 빈다. 

 내게도 심호택 시인처럼 ‘그만큼 행복한 날이’ 있었다. 


 싸리빗자루 둘러메고 
 살금살금 잠자리 쫓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어 돌아오던 날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먹을 것 없던 날

 
                                                           - 심호택, 《그만큼 행복한 날이》 부분


 나는 어린 시절을 ‘잘난 사람이 없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보냈다. 동무들과 ‘싸리빗자루 둘러메고’ ‘살금살금 잠자리 쫓을 때’ 우리들 마음은 얼마나 풍요로웠던가! 

 우리는 산과 들, 시냇가를 마구 뛰어다녔다. 하나의 마음이었기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각자 하나의 마음을 지녔기에 우리의 마음은 마냥 부풀어 올랐다.

 나는 ‘오래된 미래’를 살아보았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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