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평화네트워크 자문위원)


양심선언 조주형 대령의 3차 공판이 진행된 지난 6월 26일은 더없이 청명한 날씨였다. 그 맑고 푸른 하늘처럼 좋은 예감이 스치면서 들어선 계룡대는 마침 체육행사의 날이어서 그런지 매우 평화로와 보였다. 군복보다 체육복이 더 많이 눈에 띄는 영내를 한참 지나서 공군 보통군사 법원에 도착했다.

뒤늦게 도착한 법정 안은 바깥의 평화로운 분위기도 아랑 곳 없다는 듯, 매우 열띤 공방이 오고가는 용광로 그 자체였다. 변호인과 검찰간의 치열한 설전도 그렇지만 약5시간 반 동안 진행된 재판에서 미동도 없이 재판을 끝까지 지켜 본 수녀님들과 신부님과 신자들, NGO 관계자들, 가족들, 모두가 빈틈없이 자리를 메워 2백 명은 족히 되는 듯한 그들 모두가 이 재판에 대한 관심을 말해주고 있었다.

조주형 대령은 맨 앞의 중간 자리에 두 명의 헌병이 양쪽에서 지키고 있는 가운데 기나긴 재판 동안 거의 움직임이 없이 앉아 있었다. 약 3주전에 필자가 면회할 때보다 다소 수척해 보였으나, 조 대령 특유의 맑은 눈빛은 여전히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어떤 역사적 진실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갈증으로 가득 차 있는 듯 했다.
  
이날 공판의 주요내용은 변호인 측의 증인신문과 검찰 측의 구형, 변호인들의 변론 및 조주형 대령의 최후진술이다. 지난 2차에 걸친 공판에서 이미 검찰과 변호인 측은 조주형 대령에게 적용된 △ 군사기밀 누설 △ 공무상 비밀누설 △ 금품수수의 근거가 되는 사실관계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이미 진행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날 재판은 사실 여부보다 주로 법리논쟁에 치우친 공판이었다는 느낌이다.

한 사람의 직무수행을 놓고 검찰과 변호인과의 너무도 다른 시각차이는 동일한 사실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해석을 제기하였다. 예컨대 공급업체를 상대로 한 조 대령의 과거 언행 중 일부가 검찰 측에 의하면 공적인 직무 수행 외에 특정업체를 유리하게 하기 위한 사적인 의도가 있는 `기밀누설`에 해당되는 범죄로 취급된 반면, 변호인 측은 국가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이었으며, 정상적인 협상의 일환임을 강조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필자가 알게 된 것은 이 재판이야말로 그동안 많은 언론들이 참새들 입방아 찧듯이 쏟아 낸 그 많은 보도와 논평을 다 합친 것보다도 많은 진실을 담고 있으며, 그런 만큼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았던 필자에게는 매우 소중한 체험이었다. 다만 그처럼 요란스럽던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빠르게 식어가는 것 같아 아쉬움도 그에 못지 않게 컸다.

각기 다른 진실의 잣대
  
이날 변호인 측 증인들은 보잉사 국내 대행사의 고문, 유로파이터 인터내셔날 한국지사 고문, 닷소사 한국지사 대행업무 관계자, 항공사업단 단장 4명이다. 앞의 3명의 증인들은 조 대령과 여러 차례의 만남, 전화통화 등이 공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사사로운 대화는 아니었으며, 조 대령으로부터 기밀을 넘겨받아 업체가 기종경쟁을 하는 데 특혜를 받은 일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주심 변호사로 증인 신문을 주도한 이덕우 변호사는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바에 따라 증언을 효율적으로 이끌어냈다.
  
변호인 측의 신문을 통해 밝혀진 것은 조 대령이 주로 공급업체에 어떤 요구로 협상에 임했는가 하는 것이다. 조 대령은 미국 보잉사에 성능이 미흡한 것으로 알려진 공대지 미사일 JSOW를 성능이 향상된 미사일을 요구하여 SLAM-ER 공대지 미사일로 교체를 요구하였으며, 이것은 추후에 성사되었다.

이 외에도 기계식 레이더인 MSA를 전자식 레이더 AESA로 교체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데이터 링크가 가능하도록 체계통합을 요구했다. 또한 전자파 시험장비, 환경 시험장비와 시설도 차질없이 이전해 줄 것을 요구받았다. 보잉 대행사 고문은 이러한 요구들은 주로 조 대령에게서 처음으로 받은 것이며, 그에 따라 상당부분 보잉사 측도 응하게 된 것이라고 증언했다.

두 번째로 나온 유로파이터 인터내셔날 고문은 가급적 기술이전을 많이 할 것과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라는 조 대령의 요구를 받았으며, 스페인 공군이 현재 훈련기를 필요로 하여 스웨덴의 그리펜을 검토하고 있다는데, 한국이 개발한 고등훈련기를 대응구매해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들은 바 있다고 했다. 또한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공대지 성능을 개선하고 전자파 시험장비, 환경 시험장비 등을 차질 없이 공급하고 데이터 링크를 보장하라는 요구가 있었음을 증언했다.

여기에서 증언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미처 개발되지 않은 유로 파이터의 공대지 성능을 한국 공군의 요구대로 보완하는데 있어 가격산출이 어렵고, 그로 인해 만일 2001년 말 경에 기종결정이 되었더라면 유로파이터는 중도 탈락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 덧붙여졌다.
  
세 번째 증언자로 나선 닷소 대행사 관계자는 2000년 10월경 최초 협상이 시작될 당시부터 라팔이 값이 비싸다는 지적이 여러 곳에서 이미 나온 상황이었고, 연말 2차 협상시에 닷소 측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엔진과 레이다를 구형으로 할 경우 가격 인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제시했으나 공군이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밝혔다. 또한 라팔에 장착되는 미카 미사일의 가격이 지나치게 고가이므로 이에 대한 가격인하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받았다.

조 대령 측이 라팔을 가격 인하하도록 강력히 압박한 것은 경쟁회사의 가격정보를 조 대령이 알려주면서 된 것이 아니라 한국 공군의 F-X 가용예산이 제한되어 있다는 공지된 사실과 일부 언론보도 및 정황에 근거해서 이루어 진 것이라는 증언을 했다.
  
이 점이 바로 변호인 측과 검찰 측의 상반된 논점이라고 하겠는데, 검찰 측은 닷소 대행사 관계자를 압수 수색하여 얻은 자료(이 모씨가 경쟁사에 비해 닷소 측의 가격이 높아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요지로 닷소 본사에 보낸 보고서)를 근거로 조 대령이 가격정보를 닷소 측에 누설하였으며, 이를 근거로 닷소 측이 가격 협상 전략을 수립하는데 부당한 도움을 준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변호인 측은 가용예산이 제한된 공군의 현실상 가격인하 압박은 당연한 것이며, 군사기밀 누설은 이루어진 바 없고, 닷소 대행사 관계자가 보고서에 명기한 가격자료는 세부 가격자료가 도착하기 이전에 작성된 것이고 잘못된 수치를 근거로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기밀누설의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닷소 측에 기밀을 누설했다고 하는 환경시험장비, 전자파 시험장비와 시설, 데이터 링크 등에 관한 사항은 이미 다른 업체에도 수시로 요구한 사항이므로 특정업체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이미 업체에 통보된 RFP에 명기된 사항이다. 더구나 이 부분은 닷소 측이 한국 공군에 제공하기로 했던 것이기 때문에 추가로 이점에 대해 말했다고 해서 기종평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시험평가 결과 라팔이 제일 우수하게 나왔다는 점을 닷소 측에 알려주어 기밀을 누설했다고 하는 작년 5월은 이미 시험평가에 대한 최종 보고가 완료된 상황이므로 사실 여부를 떠나 의미가 없다. 이점에 대해 이덕우 변호사는 "이미 임신을 했는데 아들인지, 딸인지 알면 뭐하냐"는 비유로써 기밀누설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시험평가에 대한 일부 내용이 닷소 측에 흘러 들어간데 대해 법적용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물론 그 사실관계조차 조 대령과 변호인들은 강력히 부인하였다.
  
이러한 변호인 측에 의한 업체 관계자들의 일련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조 대령이 여러 기종에 대해 각기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압박을 하였으며, 그 내용은 대부분 사업 착수 시에 제시된 통합제안요구서(RFP)에 근거한 것이므로 새삼스레 기밀누설 운운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조 대령이 특정 기종을 편파적으로 밀고 있었다면 왜 4개 기종을 상대로 그처럼 집요한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최대한 얻어내기 위해 노력했는가도 의문으로 남는다.

그러면 바꿔 말해서 조 대령이 이처럼 각 기종들에 대해 한국 공군의 요구사항을 명료하고 강력하게 제시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지금과 같은 호조건에서 기종결정이 가능했겠느냐는 반문도 가능하다고 보여졌다. 이것은 조 대령이 한국 공군이 확보해야 할 전투기의 개략적 수준과 목표 기준을 설정하고 여기에 각 기종이 미달되는 부분에 대해 가차없이 요구사항을 제기하며 압박했다는 그간의 정황이 말해주는 것이다.

만약 닷소사에 유리하게 정보를 누설한 것이라면 보잉 측에 JSOW 미사일이 추진력이 없는 AGM 미사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성능이 우수한 SLAM-ER 미사일을 제공토록 요구한 것은 보잉에 유리한 기밀누설이 아니겠는가. 결국 조 대령은 모든 업체에 유리하도록 했다는 말이 된다.

이 때문에 조 대령을 협상과정에서 겪은 한 증인은 증언 후 재판부에 추가발언을 자청하여, 조 대령의 협상과정에 보여준 전문지식과 보안의식은 매우 철저하였으며, 이 때문에 자신은 어느 기종이 결정되었는가 여부와 관계없이 조 대령을 애국자로 본다는 소신을 당당하게 피력했다. 이 순간 숨죽이고 있던 방청석에는 뜨거운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필자도 작년부터 올해 초 각 기종들의 성능에 대한 공군의 평가와 일부 가격에 대한 여러 소문들이 언론에 보도된 사실들이 떠올랐다. 그 보도들은 일부 공군 내에서 유출된 것일지도 모르고, 또는 어느 유능한 기자들이 업체를 상대로 휘젓고 다니면서 퍼 온 정보일런지 모른다. 그러면 그런 정보들이 간간이 언론에 보도되어 대한민국은 과연 어떠한 손실을 입었는가.

이덕우 변호사는 공군 내 최고 전투기 전문가인 조 대령은 여러 경쟁업체에 열성적으로 협상에 임하여 끝내 공군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킨 철저한 공인이었다는 점을 주장했다. 검찰 측이 주장하는 기밀누설은 이미 언론에 공지되었거나 또는 정황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무리한 주장이며, 따라서 금품수수 역시 뇌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폈다.

실종된 진실

이처럼 연이은 증인들이 조 대령의 결백을 주장하는 증언들이 나오자 검찰 측은 반대 신문을 통해 증인들이 대부분 공군 예비역 장교들임을 고려한 듯, 조 대령과 사적인 친분관계가 있는가 여부를 집중적으로 따졌다. 고향이 어디고, 언제 조 대령을 처음 알게 되었고, 학교는 어디를 나왔으며 하는 등등의 질문이 태반이었다. 또한 조 대령으로부터 혹시 사무실과 같은 공적인 장소가 아닌 식당 같은데서 만나서 증언한 내용의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닌지, 하는 등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대해 증인들은 대부분 조 대령과 공적인 자리에서 이루어진 대화이며, 기밀누설과 금품 제공 사실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설령 검찰 주장대로 사무실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면 왜 안되는가. 검찰 논조는 마치 스님이 절을 나와서는 부처님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논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그것이 마치 어떤 범죄사실을 입증하는데 커다란 근거나 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또한 업체 관계자들이 대부분 공군의 고급장교 출신들인데 조 대령과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알만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일견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막연히 공군의 한솥밥을 먹었다는 인연을, 또는 우연히 고향이 같다는 알 수 없는 인연을 굳이 비리를 입증하는 근거로 찾아내려는 것은 무리한 시도 같았다. 
  
이어 네 번째로 나온 공군의 한 현역장교는 조심스럽게 국방부와 공군간에 이견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현역 신분이라는 제한 때문인지 공군 조종사들과 국방부가 간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 할지라도 국방부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았다는 일각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선뜻 인정하기를 주저하는 듯 했다. 그러나 조 대령이 국방부 압력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은 바 있으며, 이에 대해 증인 본인은 원칙과 소신에 따라서 하라고 충고했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조 대령이 국방부 태도에 대해 몹시 고뇌하고 있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더불어 기종결정 과정에 있어 국방부에 대한 불만은 조 대령 혼자만 말한 것이 아니고,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다른 조종사들로부터도 수시로 들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증인에 따르면 올해 2월 23일 사업단의 공군 참모총장 보고 시에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 독자개발은 4세대급 이상의 성능을 가져야 하며 최소한 스웨덴의 그리펜 수준이어야 한다는 점과 이번 F-X사업에서 이에 필요한 기술축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지의 보고가 있었음을 증언했다. 또한 이 증인에 따르면 한국형 전투기 개발을 관리하는데 있어 미국은 못 가진 자의 설움을 톡톡히 느끼게 할 만큼 기술을 잘 안주는 태도라는 점을 볼 때 유럽 국가의 핵심 기술이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도 공군 내에 있었음을 확인했다.

언젠가 조주형 대령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한국형 전투기 독자개발에 대한 앞서 공군 보고서의 취지와 달리 국방부 획득실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이번 F-X사업이 아닌 다른 경로로 한국형 전투기 독자개발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확보할 것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비로소 그 진상이 밝혀졌는데, 기술이전이 어려운 F-15K가 선정될 경우 한국형 전투기 생산이 어렵다는 공군의 보고에 대해 2001년 7월 국방부 획득실장은 기술이전에 대해서는 공군의 보고와 달리 다른 경로로의 모색, 즉 F-X사업에서 핵심기술 이전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국방부 시각이 `재지시`라는 형태로 조 대령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전의 2차 공판 때까지와 달리 이날 공판은 조 대령과 변호인들의 입장이 비교적 자유롭게 개진된 공판이었다. 그러나 이 공판이 국방부의 외압여부와 기종평가의 공정성을 논하는 재판이 아니라는 재판부의 입장에 따라 그동안 변호인 측에 의한 외압 시비 논란은 수시로 제지 당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번 재판도 이 점에 대해 논쟁할 수 있는 완전한 자리는 못된다는 것이 역시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여러 언론을 통해 제기된 이 사업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논쟁은 비로소 이 재판을 통해 진상에 접근할 실마리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껏 조 대령이 닷소사 고문에게 누설했다고 하는 기밀의 구체적 내용과 금품수수의 대가성 여부는 아직 논쟁 중이다. 그러나 이 논쟁을 통해 그간 미국에 끊임없이 의존해오던 국방의 타성을 벗고 자주성이 충만한 새로운 국방세력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우리 국방의 커다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드디어 검찰의 논고와 구형이 시작되었다. 검찰관들은 조 대령이 기밀누설과 금품수수로 공군 내에서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실망을 안겨준 사건이며 기밀누설로 인한 공군의 기강의 해이가 초래되었고, 피고는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징역 5년의 중형을 구형한다고 했다. 순간 법정은 싸늘한 냉기가 흐르며 곳곳에서 실망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이덕우 변호사의 최후 변론이 시작되었다. 이 변호사는 1996년에 대법원에 의해 형법상 127조에 의한 기밀누설죄 적용은 비밀의 가치가 있을 때 비로소 적용된다는 판례가 있었음을 상기시키며 무죄를 주장했다. 더불어 그동안 많은 양심선언 공직자들이 조 대령과 같은 고통을 겪었음을 볼 때, 이제는 상관의 위법한 지시에 대해 복종하지 않는 공직자의 양심의 의무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한 그간 기무사와 검찰의 무리한 수사 때문에 성립될 수 없는 범죄혐의로 조 대령이 희생되었다며 공소내용에 대한 대부분을 부인했다. 5월에 누설했다는 가격정보는 실제로 6월에서야 입수할 수 있었던 사항이고, 각종 시험장비와 시설에 대한 이전요구는 기밀누설이 아니라 타 업체에도 공통적으로 요구한 공무상 행위에 불과하고, 훈련기의 역구매안을 제시한 것도 여러 업체에 공히 제시한 사항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며 이러한 내용들이 마치 닷소사에만 편파적으로 누설된 기밀일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조 대령의 최후 진술이 시작되었다. 그는 "미국의 이익과 우리나라 지도층 일부의 사대주의가 문제"라며 그간 미국 무기에 깊이 중독되어 헤어나올 줄 모르는 무감각과 타성이 군의 전반에 스며들어 끊임없이 속으로 병들어 가는 국방의 현실을 실감나게 제시했다. 과거 공중 조기경보기 도입 검토시에도 그러하였으며, 최근 F-X사업에서의 상부의 태도도 그러하였다. 조 대령 본인은 항상 이에 대해 저항하여 왔으나 그 때마다 어려움을 겪어왔으며, 이러한 군의 타성이 통일 이후까지 고려한 자주국방을 설계하는데 하나의 장벽처럼 다가왔다는 점을 담담하게 이어나갔다.

특히 F-X사업은 물론이고, 미래 독자적인 한국형 전투기 개발에 대한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데 대한 아쉬움, 이러한 본인의 뜻이 예기치 않은 수사와 범죄자라는 멍에로 희석되는데 대한 안타까움, 변함없이 남아있는 공군에 대한 애정과 동료 및 후배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 그리고 이제는 청산되어야 할 식민주의 등등 그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너무 많았으리라. 조 대령의 논조는 자못 비장하였으며, 차제에 그동안 억눌러온 울분과 비애를 모두 토해내려는 듯 했다. 최후진술 중에 두 번의 재판부 제지가 있었으나 그는 40여분에 걸친 최후진술을 무사히 마쳤다.

눈물의 강

긴 재판이 끝나고 변호사와 가족들, 필자는 조 대령을 면담했다. 최후진술을 마치고 난 그의 표정은 한편 허탈해 보이기도 했다. 저 거대한 집단을 상대로 싸우는 그의 모습은 한편으로 지친 듯 보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뒤이어 가족들과 재회한 그의 표정은 금새 밝아졌다.
  
그리고 아쉬움이 남은 필자와 조 대령간에는 또다시 긴 대화가 이어졌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밝히기로 하자. 조 대령을 남겨두고 계룡대를 나와 헤어지기 아쉬운 사람들과 인근에서 저녁식사 자리가 조촐하게 있었다. 이 자리에서 문규현 신부님은 처남인 조 대령을 `바보 처남`이라며 이제껏 무모하리만큼 국방부와 싸워온 조 대령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내보였다.

그리고 조 대령 부인인 문면옥 여사는 조 대령의 동료 장교들에게 증언을 부탁하며 동분서주 뛰어다닐 때마다 냉담한 태도를 겪으면서 가졌던 아쉬움, 서운함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조 대령이 구속되고 나서 후배 시험평가단 장교들이 일제히 기무사 보안검열을 받아 크고 작은 징계를 받고 몹시 고생하였다는 말도 있었다. 기무사령부는 F-X 1차 기종평가가 진행되기 직전까지도, 또는 그 이후에도 사실상 기밀누설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공군 조종사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말하며 몹시 안타까와 했다.

그렇다보니 조 대령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 줄 동료나 후배들이 나타날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 이덕우 변호사는 공군 내에서도 조 대령 양심선언을 `뜻은 좋으나 방법이 잘못되었다`며 돌아서는 방관파, `혼자 양심선언하면 우리는 비양심자냐`며 거꾸로 조 대령을 비난하는 비난파가 다수인 것 같다며, 언젠가 이 역사적 진실이 밝혀질 때가지 오늘을 잊지 말자고 했다. 이 사건의 진실이 언젠가 햇볕을 보게될 때, 본인은 특별검사로 참여하고 싶다는 희망도 내보였다.
  
장기간 구속이 이어지고, 공군 내에서나 어디에서도 여러 가지 조직 내 사정을 이유로, 또는 생계문제로 알면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다수가 있기에 당장 그들에게 최소한의 도움조차 요청할 수 없는 고립된 소수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어둠이 언제 끝나고 저들에게 해맑은 웃음을 되돌려 줄 것인가. 돌아오는 발길은 무겁기만 했다. 그러나 그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진실의 편에 있는 이들의 조용한 힘은 언제나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고 먼 훗날에 승리를 기약하고 있다. 아마도 이날 밤 조주형 대령은 평화로운 한반도에서 자주적인 군을 갖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유난히 별이 맑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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