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관계, 평가와 교훈

3년 전 봄은 ‘평화의 봄’이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3년 전 봄은 ‘평화의 봄’이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3년 전 봄은 ‘평화의 봄’이었다.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 남과 북이 단결하면 번영과 통일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환희가 한반도에 차넘쳤다. 3년이 지난 지금 그 많던 희망과 환희는 모두 물거품이 되고 있다. 현재 남북관계는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돌아가는 모양새이다.

대체 그 많던 희망과 환희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3년 전의 ‘평화의 봄’은 어떤 힘이 작동했기에 사라졌는가. 판문점선언 3주년을 맞고 있는 지금, 면밀히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1. 판문점 정상회담의 특징

우선 판문점 정상회담의 특징부터 제대로 규명해야 한다. 그저 단순히 1차 정상회담과 2차 정상회담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가 아니면 이전 정상회담과는 다른 특징과 의미를 갖고 있는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4.27 판문점선언은 그 이전의 남북 정상회담과는 다른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첫째, 남북 주도성이다. 1999년부터 북과 미국은 미사일회담 등에서 일부 진전을 보이면서 대화 국면을 이어갔다. 2000년 6월의 남북 정상회담은 그 흐름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었다. 2007년 북미 양국은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1단계, 2단계 조치를 합의(2.13 합의, 10.3 합의)했다. 역시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은 북미 대화의 연장선에 놓여있었다. 이는 북미 대화가 진행되어야 남북 관계 진전도 가능하다는 한반도 문제의 전통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2018년 4월 27일 3차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당시 그 어떤 북미대화도 없었다. 그럼에도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되었다. 우리가 모두 목도했듯이 남북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을 견인하는 형국이었다. 한반도 문제에서 남북 주도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판문점선언이 정상적으로 이행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면 남북주도성은 더욱 확고해졌을 것이다.

둘째, 군사문제 중심성이다. 6.15 공동선언도, 10.4 선언도 군사문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사회문화 교류와 경제 협력이 주를 이루었다. 이에 반해 판문점선언은 군사문제가 중심이었다. 전체 3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는 판문점선언은 두 번째 항에서 “한반도 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 위험 해소”를 합의했다.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관건적 문제”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는 워낙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판문점선언의 해당 내용을 아래 붙인다.

2.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위험을 해소하는 것은 민족의 운명과 관련되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며 우리 겨레의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관건적인 문제이다.

①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하였다.

③ 남과 북은 상호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이 활성화 되는 데 따른 여러 가지 군사적 보장대책을 취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쌍방 사이에 제기되는 군사적 문제를 지체 없이 협의 해결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회담을 비롯한 군사당국자회담을 자주 개최하며 5월 중에 먼저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기로 하였다.

군사 부문의 합의는 2018년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이하 ‘판문점군사합의서’)가 별도로 채택될 정도로 발전한다. 군사문제가 2018년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판문점선언을 평가하고 그 이행 여부를 판단하는 첫 번째 기준은 남북 주도성과 군사문제 중심성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 발전 여부를 경제사회 분야의 교류와 협력으로 판단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판문점선언은 그 기준을 변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관계의 전개

이제 이 같은 기준에 입각해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관계를 평가할 시간이다. 남북 주도성과 군사문제 중심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세 개의 국면을 지나 네 번째 국면을 맞고 있다.

1> 1국면: 전진 국면

4.27 판문점선언 이후 남과 북은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면서 남북관계를 전전시켜 나간다. 5월 1일부터 남과 북은 확성기 철거를 시작한다. 5월 24일에는 북이 풍계리 핵시험장을 폭파한다. 6월 1일에는 남북고위급회담을 개최하여 판문점선언 이행 방안을 협의하고,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 위한 협의에 착수한다. 이 외에도 동서해지구 군통신선을 복구하고,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다양한 남북 회담이 진행되고, 이산가족 상봉 행사 등이 개최되었다.

9월에는 남측의 대통령 특사가 방북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소하였고, 이 같은 과정은 9월 평양 정상회담으로 이어졌으며, 9월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군사합의서’가 채택됨으로써 남북 관계는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판문점군사합의서’에 따라 군사분야 협력이 시작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판문점군사합의서’에 따라 군사분야 협력이 시작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과정에서 확인된 군사문제 중심성이다. 5월 확성기 철거가 완료되었고, 6월 14일 남북장성급회담이 개최되어 2004년 6월 4일 장성급회담 합의를 이행하고, 동서해지구 군통신선을 복구하는 문제를 협의한다. 6월 25일엔 군통신선 복구를 위한 실무접촉이 진행되고, 7월 1일 연평도 인근 남측 해군경비함과 북측 경비함이 통신함으로써 중단된지 10년 만에 남북 군통신이 재개되었다.

7월 31일 남북 장성급회담이 개최되어 JSA 비무장화, DMZ 내 유해공동발굴, 시범적 GP 철수, 서해상 적대행위 중지 방안 등이 논의되었고, 9월 13일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개최되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체결 문제를 협의하였고, 이 같은 과정은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판문점군사합의서’ 체결로 결실을 맺었다.

‘판문점군사합의서’는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이행된다. 10월 1일부터 공동경비구역(JSA) 지뢰 제거작업이 시작되어 10월 20일 완료되었으며, JSA 초소와 인원, 화기가 철수되었고(10.25), 11월부터 남북 상호 11개 GP에 대한 화기, 장비 및 인원 그리고 시설물들이 철수, 철거되었다. 한강하구를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해 11월 5일부터 시작된 공동수로조사가 12월 9일 완료되었다.

특히 ‘판문점군사합의서’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하기로 합의함으로써 군사적 적대행위가 중지되었다. 지상에서는 포병 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이 중지되었고, 해상에서는 포사격 및 해상기동훈련이 중지되었고, 해안포와 함포의 덮개를 설치하고 포문이 폐쇄되었다. 공중에서는 비행 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금지구역 내에서 공대지유도무기 사격 등 실탄 사격을 동반한 전술훈련이 금지되었다.

따라서 ‘판문점군사합의서’는 남과 북의 군사적 충돌이 중단되는, 사실상 불가침선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10월부터 시작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적대행위 중단은 한반도 전체 차원에서 군사적 적대행위를 중단하기 위한 1단계 조치라는 성격을 갖는다. 이 같은 과정이 정상적으로 이행된다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양 정상이 선언한대로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었다.

2> 2국면: 퇴보 국면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무위로 끝나면서부터 남북 관계가 정체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남북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은 2019년 2월까지 이어졌고, 하노이 정상회담이 불발로 끝난 2019년 3월부터 북미 책임공방이 진행되고, 한미 군사연습이 재개되고(3.4~12), 북측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인원을 철수시키는 조치(3.22)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분석은 표면적이고 일면적이다. 앞서 제시한 것처럼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 관계는 남북 주도성과 군사문제 중심성을 놓고 분석되어야 한다. 남북 주도성을 상실하는 순간 남북 합의 이행은 정체되고, 남북 관계의 퇴보로 이어진다.

판문점선언의 이행이 정체되는 결정적 계기는 2018년 11월 한미워킹그룹의 출범이었다. 남측 당국은 대북정책에서 미국과의 원만한 협의와 그를 통한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기대하면서 한미워킹그룹 창설에 동의 혹은 창설을 주도했는지 모르나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2018년 11월 예정되었던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개성공단 방북이 1차 한미워킹그룹회의(11월 20일)의 결과 무산되었다. 한미 워킹그룹회의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남북 주도성은 약화시키고 한미 주도성이 강화되는 결정적 후과를 초래한 것이다.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철도와 도로 연결 및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12.26)이 열렸으나 공사 계획은 전혀 잡히지 않는 형식적인 착공식이었다. 착공식 5일 전인 12월 21일 2차 한미워킹그룹회의가 열렸다.

1차와 2차 한미워킹그룹회의가 진행되던 2018년 11월과 12월 남북 합의가 이행되기는 했으나 점차 남북 주도성은 약화되고 한미 주도성(사실상 미국 주도성)이 강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2019년 3월 이후의 상황은 그 결과였을 뿐이다. 한미워킹그룹회의는 남과 북이 주도하는 한반도 문제를 미국이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범되었다.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 이후 남측 정부가 5.24 해제 가능성을 언급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나서 “한국은 우리의 승인(approval)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며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11월 한미워킹그룹회의 출범 브리핑에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한반도 평화와 북한 비핵화가 남북 관계 발전보다 뒤쳐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한국 정부에 분명히 밝혔다”고 발언한다.

We have made clear to the Republic of Korea that we do want to make sure that peace on the Peninsula and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aren’t lagging behind the increase in the amount of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the two Koreas.

북이 비핵화 하기 전에 남북 관계가 발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미워킹그룹회의를 출범시킨 목적을 분명하게 드러낸 발언이다. 미국은 남측 정부의 대북정책을 ‘승인’하는 장치로 워킹그룹회의를 출범시킨 것이고, 그 목적은 충분히 성공적으로 달성된 것이다.

타미플루 제공이 무산되고, ‘전제조건이 대가없이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을 재개하자’는 북측의 제안을 거부한 것도 한미워킹그룹회의 출범 이후의 일이다. 한미워킹그룹회의와의 직접적인 상관성은 추후에 밝혀지겠지만, 남북 주도성 상실의 원인이자 결과가 된 것은 분명하다.

남북 주도성의 상실은 판문점선언 이행 정체를 초래하고, 판문점선언 이행의 정체는 군사적 긴장고조로 이어진다. 한미 양국은 2019년 3월 한미군사연습을 재개하고, 4월에도 한미연합공중훈련이 진행되었다. 북측은 5월 4일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하고 연이어(5.9, 7.25, 7.31, 8.2, 8.6, 8.10) 발사체 훈련을 실시한다. 이 같은 점 때문에 ‘판문점군사합의서’를 북측이 먼저 위반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이미 2019년 3월부터 한미군사연습이 재개됨으로써 ‘판문점군사합의서’는 역행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3> 3국면: 악화 국면

흔히들 남북 관계가 악화된 시기를 2020년 상반기로 꼽는다. 대북전단이 살포되고, 북이 이에 거세게 항의하고 그 결과 개성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등의 표면적 사건이 2020년 상반기에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된 것은 2019년 8월 한미군사연습(8.5~20)이었다.

2019년 3월과 4월에도 한미군사연습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8월 한미군사연습을 남북관계 악화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지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 ‘수복지역에 대한 치안질서 유지’와 ‘북한 안정화작전’이 한미군사연습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수복지역’이란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한미 양국이 북에 대한 군사적 흡수 통일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안정화작전’은 북 붕괴 시 한미연합군이 북쪽 지역에 침투하는 작전이다. 이건 명백하게 군사적 적대 행위이며, 이는 판문점선언과 군사분야이행합의서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이다.

북측 당국이 그 전까지 간헐적으로 남측 당국을 비난하다가 2019년 8월 이후, 정확하게는 ‘수복지역 질서유지’, ‘북한 안정화작전’이 포함된 한미군사연습 이후 본격적인 비난을 퍼붓는 이유이기도 하다. 8월 16일 북측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는 정확하게 이 부분을 지적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비난한다.

“우리 군대의 주력을 90일 내에 괴멸시키고 대량살륙무기 제거와 주민생활안정 등을 골자로 하는 전쟁 씨나리오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합동군사훈련이 맹렬하게 진행되고 있고 그 무슨 반격훈련이라는 것까지 시작되고 있는 시점에 북남 사이의 ‘대화’를 운운하는 사람의 사고가 과연 건전한가 하는 것이 의문스러울 뿐”

덧붙여 “이번 합동군사연습이 끝난 다음 아무런 계산 없이 계절이 바뀌듯 저절로 대화국면이 찾아오리라고 망상하면서 조미대화에서 어부지리를 얻이보려고 목을 빼들고 기웃거리고 있지만 그런 부실한 미련은 미리 접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남북 대화 가능성을 차단했다.

이 담화가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문재인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난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구체적으로 지목하면서 “보기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해 4월 한미연합 공중훈련에 대한 조평통 대변인 담화에서 ‘남조선당국’이라고 표현한 것에 비교하면 8월의 담화는 명확하게 ‘대통령 문재인’을 지목한 것이다.

이 때부터 북측은 남쪽에 대한 접근법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10월 2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을 방문하여 “남측시설들을 남측의 관계부분과 협의하여 싹 드러내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금강산 시설 철거를 남측에 통보한다. 남측이 금강산 관광 실무회담을 제의하지만 북측은 문서교환을 하자고 역제안하면서 남측 당국을 만나지 않을 의사를 재확인했다.

2020년 남북관계의 악화는 그 결과이다. 남측에서 진행된 대북전단 살포는 거기에 불씨를 제공했으며 불안정한 남북관계로 인해 그 불씨는 삽시간에 ‘대형 화재’로 이어진 것이다. 남북연락사무소의 폭파는 ‘판문점선언은 사실상 무효가 되었다’는 사실을 북측 특유의 행동방식으로 선언한 것이다.

판문점선언이 무효화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여기서 다시 판문점선언의 중요한 특징으로서 군사문제 중심성을 호명해야 한다. 판문점선언이 군사문제 중심성을 갖는 것이라면 판문점선언이 무효화된 결과 역시 군사문제 중심성을 갖게 된다. 남북 사이의 군사적 충돌로 비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6월 17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발표한 군사행동 계획은 북측 호전성의 발로가 아니라 판문점선언 무효화의 정해진 수순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1.우리 공화국주권이 행사되는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에 이 지역 방어임무를 수행할 련대급부대들과 필요한 화력구분대들을 전개하게 될 것이다.

2.북남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에서 철수하였던 민경초소들을 다시 진출전개하여 전선경계근무를 철통같이 강화할 것이다.

3.서남해상전선을 비롯한 전 전선에 배치된 포병부대들의 전투직일근무를 증강하고 전반적전선에서 전선경계근무급수를 1호전투근무체계로 격상시키며 접경지역부근에서 정상적인 각종 군사훈련들을 재개하게 될 것이다.

4.전 전선에서 대남삐라살포에 유리한 지역(구역)들을 개방하고 우리 인민들의 대남삐라살포투쟁을 군사적으로 철저히 보장하며 빈틈없는 안전대책을 세울 것이다.

이 같은 조치가 실시된다면 ‘판문점군사합의서’까지 파기되는 것을 의미하며, 남북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판문점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한반도 평화는 물거품이 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월 23일 회의를 소집하여 이 같은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시킨 것은 남북 군사적 충돌을 보류시킨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2020년 6월의 위기’는 보류된다. 이 위기는 봉합된 것도, 종료된 것도 아니다. 다만 보류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현재의 남북관계는 정확하게 2020년 6월 16일에 멈춰져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남북 관계에서 제3의 길은 없다.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는 길로 가느냐, 군사적 긴장 고조의 길로 가느냐 두 개의 선택지가 있을 뿐이다.

남북 관계 악화의 원인이 북측의 대남 비난 때문인가 아니면 한미군사연습 때문인가. 그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2020년 6월의 위기는 2019년 8월부터 악화된 남북관계의 결과라는 것이다. 정치가 살아있는 생명이듯이 남북관계 역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다. 남북 관계는 ‘런닝 머신’에 비유될 수 있다. 움직이는 런닝 머신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움직임을 멈추면 넘어진다. 남북관계 역시 대화와 협력이 중단되면 그것은 ‘정체’가 아니라 ‘퇴보’이다. 또한 남북 관계의 퇴보는 악화를 초래하게 된다. 악화의 결과는 ‘군사적 긴장 고조’로 귀결되는 것이다.

3. 판문점선언 해석: 세 가지 쟁점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계기에 ‘판문점군사합의서’가 채택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계기에 ‘판문점군사합의서’가 채택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판문점선언이 발표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판문점선언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대목이 있다. 판문점선언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는 판문점선언을 누가 먼저 위반했는가 하는 책임론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을 모색하는 데서도 논란의 소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1> 판문점선언과 한미군사연습의 관계

첫째, 판문점선언(4.27 판문점선언, 9월 평양선언, ‘판문점군사합의서’를 판문점선언으로 통칭하기로 한다)과 한미 군사연습과의 관계이다. 즉 판문점선언에서 언급하고 있는 군사적 적대행위의 중단은 한미군사연습을 포함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판문점선언은 남과 북이 합의한 것이므로 판문점선언 상의 합의는 남과 북을 구속하는 것이지 한국과 미국을 구속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한다. 한미군사연습은 실시하면서도, 북측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문재인 정부 역시 이 같은 해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은 한미군사연습을 판문점선언 위반으로 본다. 1시기와 2시기의 대표적인 책임공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2018년 4월

한미 키졸브훈련과 쌍용훈련 그리고 한미독수리훈련 실시

5월 11일

한미연합공중훈련 맥스 썬더 실시

5월 16일

북측, 한미연합공중훈련을 이유로 남북고위급회담 무기한 연기 통보

6월 19일

한미, 8월 예정이었던 프리덤가디언 군사연습 유예결정 발표

6월 22일

한미 해병대 연합훈련 유예 발표

7월 10일

남측 정부, 전시대응태세 점검훈련 ‘을지연습’ 유예 발표

10월 10일

한미연합공중훈련 연기 발표

2019년 3월

기존 키리졸브, 독수리훈련의 명칭을 ‘동맹연습’으로 변경하여 실시

4월 22일

한미연합공중훈련

4월 25일

조평통, “한미연합공중훈련은 군사분야 합의 위반”

5월 4일

북,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 발사, 남 “9.19 군사합의 취지에 어긋남”

5월 10일

대통령 “이런 행위 계속된다면 대화와 협상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 문제는 두 측면에서 접근해볼 수 있다. 첫째, 한미군사연습의 성격의 측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한미군사연습을 ‘방어적’이라고 주장하지만, 한미군사연습은 북에 대한 공격의 성격을 분명히 갖고 있다. 따라서 한미군사연습은 대북 적대성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한반도의 복잡한 군사군조의 측면이다. 그 구조상 남북 군사문제와 한미 군사문제는 연동성을 갖는다. 남북 군사 구조가 적대적으로 형성되면 한미 군사 구조 역시 적대적으로 나아가며, 역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미 군사연습이 대북 적대성을 띤다면 여기에 동참하는 한국 정부가 대북 적대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되며, 이는 남북 군사 구조에도 적용된다. 남북 군사 구조가 오른손이라면 한미 군사 구조는 왼손이다. 오른 손으로 악수를 하면서, 왼손으로 주먹질을 한다면 그 행위자는 악수를 하는 것인가, 주먹질을 하는 것인가. 그 대답은 지극히 간단하고 상식적이다.

문제는 전시작전권을 반환하기 위해 ‘최소한의 한미군사훈련’은 불가피하다는 사고이다. 그러나 이같은 사고는 판문점선언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이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한미 작전계획을 변경하는 것이다. 기존의 5027 작전계획은 2015년 5015 작전계획으로 변경되었다. ‘전쟁 발발 90일 이내 미 증원군 파견’이라는 5027 작전계획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북의 남침 징후가 파악되면 반격한다’는 작계 5015로 바꾼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작계 5015는 ‘선제 타격’이다. ‘징후’ 판단을 누가 하는지는 불문가지다. 전작권 반환 이후에도 작계 5015를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한미군사연습이 실시되면 필연적으로 그 훈련은 대북 적대성·대북 침공성을 가질 수 밖에 없으며 ‘최소한의 한미군사훈련’은 존재할 수 없다.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정신에 기초해서 한미작전계획을 변경해서 ‘최소한의 한미군사훈련’을 실시하거나 작계 변경이 어렵다면 한미군사연습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

남북 대화를 고려하여 한미군사연습이 중단된 사례는 존재한다. 위의 표에서도 확인되듯이, 2018년 하반기 몇 개의 한미군사훈련이 중단된 바 있다. 그 외에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동시에 진행되던 1992년에도 키리졸브연습의 전신이었던 팀스피리트 훈련이 중단된 바 있다.

2> 미사일 발사대 ‘우선’ 폐기의 해석

9월 평양공동선언 5항에 북측이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우선’ 폐기하기로 했는데 북측이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다. 북측이 9월 평양공동선언을 먼저 위반했으며 그 결과 하노이 회담도 결렬되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 같은 주장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해당 항목을 자세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5.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

① 북측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하였다.

②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5항의 약속을 북이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의 근거는 ‘우선’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북측이 ‘우선’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를 폐기한다는 약속을 위반했으니 북미 하노이 회담의 결렬 책임도 북측에 있다는 논리이고, 그 결과 남북 관계도 악화되었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우선’이라는 단어만 보고 그 앞에 있는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이라는 단어는 보지 못했거나 애써 외면한 결과이다. ‘유관국 참관’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은 미사일 문제는 남북 사이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4.27 판문점선언과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 9월 평양공동선언의 일련의 흐름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 선언에 4.27 판문점선언이 언급되어 있고, 9월 평양공동선언에는 6.15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이 문장의 정확한 해석은 판문점선언, 싱가포르 공동성명, 9월 평양공동선언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남북미’, ‘남북미중’ 혹은 그 이상의 관련 국가의 전문가들이 참관할 만큼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면, 제일 먼저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를 폐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장의 ‘우선’이라는 표현은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외의 다른 조치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위 주장과 반대로 북측의 비핵화 의지를 보인 대목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3> 종전선언의 주체 문제

4.27 판문점선언의 종전선언과 관련한 해석의 문제가 있다. 판문점선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는데, 아래 문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 문장은 어디에서 끊어 읽느냐에 따라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남과 북은-필자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렇게 끊어 읽으면 종전선언의 주체는 남과 북이 된다. 즉 남과 북이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남과 북은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추진한다는 두 가지 사항을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끊어 읽으면 전혀 다른 해석이 된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렇게 끊어 읽으면 남과 북은 ‘남북미 3자 혹은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 추진’이라는 한 가지 사항을 합의한 것이 된다.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전환,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은 ‘남북미 3자 혹은 남북미중 4자회담’의 안건이 된다. 이렇게 해석하면 종전선언은 남북이 주체가 아니라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이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석은 남과 북이 공동으로 유엔에 제출한 영역본을 확인하면 정확해진다. 2018년 8월 6일 유엔의 남북 대사는 판문점선언을 유엔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의 공식문서로 회람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공동 명의로 판문점선언 영역본을 유엔에 제출한다. 따라서 이 영역본은 남북 합의로 작성된 것이다. 여기에는 해당 문장이 다음과 같이 영역되어 있다.

The two sides agreed to declare the end of war this year that marks the 65th anniversary of the Armistice Agreement and actively promote the holding of t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sides and the United States, or quad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sides, the United states and China with a view to replacing the Armistice Agreement with a peace agreement and establishing a permanent and solid peace regime.

영역본은 위의 첫 번째 해석과 일치한다. 종전 선언은 남과 북이 하는 것으로 양 정상이 합의한 것이다. 이는 “남과 북은 <중략>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한 2007년 10.4 선언과 차이를 갖는다. 종전선언의 주체를 3자 혹은 4자 정상으로 명기한 10.4 선언과 달리 판문점선언은 남북을 종전선언의 주체로 명기한 것이다. 이 대목 역시 판문점선언의 ‘남북 주도성’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4. 2021년의 남북관계 : 파국의 기로

‘2020년 6월 위기’ 이후에도 남측 정부는 여러 계기를 통해 남북 대화 재개 의사를 피력한다. 2020년 9월 남측 어업지도원의 사망 관련하여 남북 정상은 친서를 교환하기도 했다. 여기서 김정은 위원장은 “끔찍한 올해의 시간이 흘러가고 좋은 일들이 차례로 기다릴 그런 날들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기다”린다며 대화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북 대화가 쉽게 재개될 것 같지 않다. 우선 남과 북의 접근법이 너무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신년사에서 다음과 같이 대남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에 발맞추어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멈춰있는 북미대화와 남북대화에서 대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마지막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중략>

코로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상생과 평화’의 물꼬가 트이기를 희망합니다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 ‘한-아세안 포괄적 보건의료 협력’을 비롯한 역내 대화에 남북이 함께할 수 있길 바랍니다.코로나 협력은 가축전염병과 자연재해 등 남북 국민들의 안전과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들에 대한 협력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대남 입장을 밝힌다.

북남관계에서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려는 입장과 자세를 가져야 하며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일체 중지하며 북남선언들을 무겁게 대하고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중략>

현재 남조선당국은 방역협력, 인도주의적협력, 개별관광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꺼내들고 북남관계개선에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첨단군사장비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외면하면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군사적 안정을 보장할 데 대한 북남합의 이행에 역행하고 있다.

남측은 방역 협력으로 대화를 재개하자고 주장하고, 북측은 근본문제 즉 군사적 문제 해결이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사회 문제 해결을 우선하는 남측의 입장과 정치군사 문제 해결을 우선하는 북측의 입장차가 너무 크다.

이같은 입장차는 2021년 3월 한미군사연습이 재개됨으로써 다시 확인되었고, 북측은 이에 대해 김여정 담화(3.16)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다시 밝혔다. 김여정 담화는 남북관계를 전망하는 데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에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는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참고로 김여정 부부장은 북측에서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지위에 있다.

1> 우리를 겨냥한 침략적 한미 군사연습이 진행되었다.

2> 우리는 지난 당대회에서 남측 태도여하에 따라 남북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3> 한미군사연습의 재개는 남측 당국이 ‘따뜻한 3월’이 아니라 ‘전쟁의 3월’, ‘위기의 3월’을 선택한 것으로 간주한다.

4> 우리는 남측 당국의 동족대결의식과 적대행위가 치료불능 상태에 도달했으며, 우리를 적으로 대하는 남측 당국과는 협력과 교류가 필요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5> 대남 기구인 조평통, 금강산국제관광국 등을 없애는 문제를 검토 중에 있으며, 남측 당국의 행동 여하에 따라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도 파기될 수 있다.

4번까지는 북측이 내린 결론이고, 5번은 미래형이다. 조평통이 남북 당국간 대화창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조평통을 없앤다는 것은 남북 당국간 대화 기구를 없앤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2018년 1월 3일 김정은 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평창 올림픽 대표단 파견 실무 협의를 진행했던 기구가 바로 조평통이다. 따라서 조평통은 2018년 ‘3월의 봄’을 만들었던 북측 기구였던 것이다. 만약 조평통을 없애는 결정을 내린다면 문재인 정부에서의 남북 대화의 문은 완전히 막히는 것이 된다.

‘판문점군사합의서’가 파기된다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군사합의서의 파기는 ‘2020년 6월 위기’ 당시 보류되었던 ‘조선인민군의 군사행동 계획’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남북 관계는 악화 국면을 넘어 파국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4.27 판문점선언 이후 전진하던 남북관계는 한미 워킹그룹회의 출범 이후 퇴보하기 시작했고, 악화 국면으로 나아갔다. 2019년 8월 한미 군사연습의 실시와 2020년 대북전단 살포 그리고 북의 대적 선언과 연락사무소 폭파까지의 일련의 경과는 판문점선언이 파기되는 경로였다. 다만 김정은 위원장이 보류 결정을 내림으로써 ‘판문점군사합의서’는 존재했으나 이제 그것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제 남북관계는 남북대화 재개를 운운할 한가한 상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2021년 3월의 ‘김여정 담화’는 남북 관계가 4국면으로 진입할 것인가의 갈림길을 예고하는 것이다. 3국면이 판문점선언으로 돌아가느냐 군사적 위기가 고조되느냐의 시기였다면, 4시기는 군사적 충돌 보류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 그것마저 파괴되어 군사적 충돌 즉 파국 상태로 갈 것인가의 마지막 기로에 놓여 있는 형국이다.

참고로 북측은 지난 해 5월 24일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를 열고 “전략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을 채택했고, “조선인민군 포병의 화력타격능력을 결정적으로 높이는 중대한 조치들”을 취한 바 있다.

5. 3년의 교훈

3년 전과 달리 2021년의 남북 관계는 파국의 기로에 서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3년 전과 달리 2021년의 남북 관계는 파국의 기로에 서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민간 진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역시 쉽게 바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 조건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 운동을 하는 것도, 남북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것도 현재 상태에서는 현실성을 갖기 어렵다. 다만 판문점선언 발표 이후 3년의 교훈을 정리하는 것은 이후 과제를 도출하는 데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첫째, 전진 국면에서 퇴보 국면으로 그리고 악화 국면으로 바꾸는 변곡점에는 한결같이 한미 동맹이 작동했다. 발전 국면에서 퇴보 국면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계기는 한미워킹그룹의 출범이었다. 그 시점부터 남측 당국의 대북 정책은 남북 주도성을 상실하고 한미 주도성이 힘을 발휘했다. 한미 주도성은 미국 주도성이다. 남측 당국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퇴보 국면에서 악화 국면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계기는 2019년 8월 한미군사연습이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수복지구 치안유지’, ‘북한 안정화작전’이라는 대북 적대적 군사훈련이 남측 당국 ‘주도’ 하에 진행되었다. 남측(한국)이 주도하는 대북 군사적 적대훈련, 이것이 퇴보 국면에서 악화 국면으로 남북 관계를 이끌었다.

남북 관계의 속성 상 퇴보와 파국의 경계선은 분명하지 않다. 남북 관계가 퇴보하는 순간 자체가 파국의 전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퇴보 국면이 2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이유는 판문점선언 구체적으로는 판문점군사합의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그 마지막 안전핀으로 작동했던 판문점군사합의서마저 무효화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평화와 안전을 위해 존재한다던 한미 동맹이 남북 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정책 기조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행위인가.

둘째, 비핵화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핵화의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압박을 통한 비핵화이고 다른 하나는 협상을 통한 비핵화이다. 압박은 경제적 압박, 군사적 압박으로 나뉘어진다.

군사적 압박은 군사적 충돌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군사력을 통한 비핵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군사적 압박 즉 군사력을 통한 비핵화는 북이 2017년 11월 29일 화성 15형 시험발사, 2020년 10월 당창건 열병식에 등장한 11축 ICBM을 등장시키는 등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전략무기(ICBM)를 개발함으로써 더 이상 유용한 카드가 될 수 없다.

또한 경제적 압박 즉 제재를 통한 압박 역시 북이 정면돌파전을 선택함으로써 효과성을 상실했다. 경제제재는 북을 고통스럽게 하고 경제 발전에 장애를 조성할 수는 있어도 북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유도하지는 못한다.

남는 것은 협상을 통한 비핵화인데,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협상 당사국들 사이의 신뢰 구축이 필수이다. 2018년 6.12 북미 정상이 합의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바로 신뢰구축이 한반도 비핵화를 추동한다고 하여 협상을 통한 비핵화를 합의한 것이다.

문제는 북미 사이에 신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함으로써 북미 양 정상이 자랑하던 ‘북미 정상간 신뢰’는 효력을 상실했다. 북과 미국의 당국간 신뢰 역시 사실상 사라졌다. 비핵화의 동력이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이 동력인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은 신뢰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북의 비핵화만을 강조한다. 신뢰 구축은 사라지고 비핵화만을 강조하는 순간 남북 주도성은 상실된다. 지난 3년이 그러했다. 그리고 2021년의 남북 관계는 파국의 기로에 서있다. 비핵화의 벗어나지 못하면 한반도 평화는 파괴된다. 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사고인가.

 

※ 외부 필진 기고는 통일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