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 ‎
‎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쿤타는 그의 혈관 속에서 아프리카적인 것이 고동치고 있음─자신으로부터 그의 분신인 아기에게 흘러가는 것─을 느끼면서 발길을 멈추고 담요 한 귀퉁이를 벗겼다. 그리고 조그맣고 까만 아기의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만딩카어로 크게 “보라, 너보다 위대한 유일한 것을!”하고 외쳤다. 

                                                                                               - 알렉스 헤일리, 『뿌리』에서


 성인식을 무사히 치러내 의젓한 만딩카족의 전사가 된 쿤타 킨테는 동생에게 북을 만들어주려 숲을 헤매다 노예 사냥꾼에 의해 잡히고 만다.  

 미국 흑인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는 주인공 쿤타 킨테의 ‘자유’가 대를 이어 내려가 끝내 자유의 꽃을 피워내는 이야기다.

 먼 이국땅에서 노예가 된 쿤타 킨테는 어떻게 가슴 속에 불타오르는 자유의 불꽃을 고이 간직할 수 있었을까?

 백인 주인이 그에게 ‘토비’라는 이름을 지어주지만, 그는 자신의 가슴에 깊이 새긴 ‘쿤타 킨테’라는 이름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그는 ‘쿤타 킨테’라는 이름을 통해 ‘그의 혈관 속에서 아프리카적인 것이 고동치고 있음─자신으로부터 그의 분신인 아기에게 흘러가는 것─을’을 항상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나는 누구인가?’이다. 정체성은 하늘의 태양처럼 달처럼 별처럼 그에게 길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토비’라는 이름으로 살았다면, 그는 자신이 충실한 노예가 될 때까지 스스로에게 가혹하게 채찍질을 휘둘렀을 것이다.

 그는 ‘쿤타 킨테’로 한평생을 살았기에 발이 잘려 겉으로는 비록 노예로 굽실거렸지만, 마음만큼은 당당한 ‘만딩카족의 전사’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꺾이지 않는 자유를 향한 꿈은 어디서 나올까? 그는 ‘조그맣고 까만 아기의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만딩카어로 크게 “보라, 너보다 위대한 유일한 것을!”하고 외쳤다.’

 그는 그의 분신인 딸의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너보다 위대한 유일한 것’을 가르쳐 준다.

 하늘은 ‘거룩한 그 무엇’이다. 신성(神性), 인간에게 오만에 빠져 길을 잃지 않게 하는 무한한 내적 힘이다.     

 인간에겐 ‘자아(Ego)’라는 게 있어, 언제라도 ‘작디작은 나’가 될 수 있다.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 인간, 자신외의 모든 것을 함부로 해치는 탐욕스러운 인간,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다 끝내 파멸하는 어리석은 인간...... . 

 그래서 인간은 ‘자신보다 더 위대한 유일한 것’을 우러러 받들 수 있어야 한다. 공자가 한평생 ‘하늘의 명령’을 따르고, 소크라테스가 항상 ‘마음속의 다이몬 소리’를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자유(自由)는 글자 그대로 ‘스스로에게서 삶이 생성되어 나오는 것’이다. 자신보다 거룩한 것을 항상 잊지 않고 살아갈 때, 우리는 지상(地上)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쿤타 킨테가 민딩카족의 전사로 살아가는 것이 ‘자유’인 것이다. 그런데 현대문명사회에 사는 우리는 어떤가?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가? 

 현대인에게 ‘자신보다 위대한 유일한 것’이 있을까? 우리는 돈을 유일신으로 숭배하지만, 그것이 거룩한 것이 아님을 잘 안다. 

 그래서 현대인은 자신이 가야할 길을 모른다. 오직 돈의 노예일 뿐이다. 그는 돈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 그 길은 얼마나 허망한가!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지 않는 현대인,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노예의 삶은 가혹하다. 고뇌와 권태와 쾌락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게 현대인의 삶 전부다.      

 브레히트 시인은 자신의 방 벽에 걸려있는 ‘악한 자의 가면’을 슬프게 노래한다.
  

 그 불거져 나온 이마의 핏줄을 보고 있노라면
 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악한 자의 가면》 부분 


 악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지만 주인과 노예가 있는 세상에서, 자유를 향한 꿈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은 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 가슴 속에는 선(善)을 향한 자유가 언제나 하늘의 별처럼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는데.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