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 ‎
‎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 딸들아, 짐은 이제부터 국가의 통치권이며 영토 소유권이며 행정 관리권 등을 모두 벗어버릴 작정인데, 대체 너희들 중 누가 제일 이 아비를 사랑하고 있는지 말해봐라. 짐에 대한 사랑과 효성이 가장 많은 딸에게 짐은 제일 큰 몫을 주겠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리어왕』에서

 

늙은 리어왕은 세 딸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보라 한다. ‘사랑의 양’에 따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상속시켜주겠다고 한다.

첫째와 둘째 딸은 온갖 감언이설로 리어왕의 환심을 사지만, 리어왕이 가장 사랑하는 막내딸은 거짓말을 할 줄 몰라 상속을 전혀 받지 못한다.

리어왕은 자신이 왕의 권력을 내놓아도 딸들이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리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권력을 내려놓자마자 첫째와 둘째 딸의 사랑도 함께 사라진다. 몸뚱이만 남은 그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들판을 헤매며 울부짖는다.

사랑의 욕구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일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 일여 년 동안은 자궁속의 아기처럼 누워서 지낸다. 남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 산다.

성장하여 걸어 다니게 되더라도 남의 도움 없이는 생존하지 못한다. 그래서 원시인들은 성인식을 가혹하게 하여 스스로 ‘아이’를 떨쳐버리게 했다.

문명사회에서는 성인식이 사라지면서 대다수의 어른들은 여전히 아이의 정신세계에 머물러 있다.

다들 나르시시즘 환자다. 우리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스스로 삶을 개척해 가야 한다.

하지만 그런 개성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현대자본주의는 나르시시즘을 부추긴다. 우리는 한평생 과소비하고 과소비하기 위해 일벌레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만 잘 굴러간다.

나르시스트는 오로지 남의 사랑을 먹고 산다. 남의 사랑을 받기 위해 항상 연기한다. 그는 사랑은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최고의 자리에 있던 리어왕은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권력 때문이라는 것을 잊어 패가망신한다. 대다수의 나르시스트들은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권력의 힘을 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교묘히 조종한다. 그들의 모든 인간과계는 권력 관계일 뿐이다. 갑질, 진상, 가스라이팅...... 그들의 삶의 방식이다.

자기 계발서에서는 그들의 심리를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그들에게 피해를 받지 않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사람의 지혜는 시행착오를 거쳐야 형성된다. 나르시스트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받고 나서야 그들이 보인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나르스시트들을 잘 구별해내어 그들과 상종하려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가만히 있을까? 그들은 잔인한 복수를 하려 할 것이다. 세상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되어버린다.

그들을 낳은 건, 바로 우리 사회의 구조다. 돈을 유일신으로 섬기고, 아들과 딸을 차별하고, 잘난 자식과 못난 자식을 차별하는 우리 사회가 그들을 잉태하고 낳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나르시시즘을 일정정도 갖고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그것을 병적인 요소로 간주한다. 의학에 의해 병자로 분류되니 우리는 점점 이 사회체제에 순종하는 나약한 존재가 된다.

기독교에서 원죄를 만들고 불교에서 전생의 죄를 만들어 인간을 통제한 과거의 통치술과 같다. 현대 지배세력은 과학, 학문의 이름으로 우리를 통치한다.

따라서 나르시스트에 대한 대처법은 이 사회구조를 바꾸는 길밖에 없다. 가정, 학교, 직장, 각종 조직, 모임 등에서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상처는 사랑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말했다. “인간은 유적(類的)존재다.” 인간 전체가 하나다. 어느 한 인간도 소외되어서는 인간 세상의 평화는 없다.

이생진 시인은 ‘벌레 먹은 나뭇잎’이 예쁘다고 노래한다.

 

떡갈나무 잎에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 이생진, 《벌레 먹은 나뭇잎》 부분

 

건강하다는 건, 병이 없는 게 아니다. 병과 더불어 잘 살아가는 것이다. 상처가 상처의 손을 잡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나르시스트들은 누군가에게서 엄청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 상처를 우리는 함께 안고 가야 한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