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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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상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 순수한 채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말하자면 그것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곡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책을 읽으려 할 때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 속에 어떤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라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라는 문제이다.〔......〕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 E. H 카,『역사란 무엇인가』에서 

 

 TV에서 한 강사가 역사를 열강하고 있다. ‘청일 전쟁’ ‘러일 전쟁’ 몇 명의 연예인 수강생들이 맞장구를 치며 열공하고 있다. 

 아마 이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을 것이다. 다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류의 언론매체 프로그램을 접할 때마다 분노가 솟구쳐 오른다. 우리는 학창시절부터 이런 류의 역사 강의를 수없이 들어왔다. 

 역사가 카는 말한다. “그 책 속에 어떤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라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라는 문제이다.” 

 역사는 사실이 아니다. 역사가 과거를 보는 눈. 이게 중요하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에 저런 역사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국가가 무엇일까? 영화 ‘변호인’에서 고문당한 학생을 변호하는 변호인에게 그 학생을 고문한 경관이 국가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큰소리치자 변호인은 그 경찰을 향해 열변을 토한다. 

 “압니다. 너무 잘 알지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국민이 빠진 국가를 이야기해 왔다. 
 
 그 영화가 준 감동이 아직 국민들 가슴에 뜨겁게 남아 있는데, 언론매체에는 여전히 국민이 없는 국가를 역사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군이 청과 러시아군을 일망타진하고 조선을 점령해갈 때, 일본국민들도 승리의 함성을 질렀을까? 

 도대체 전쟁의 승리자는 누구이고 패배자는 누구였을까? 일본군이 승리하면 일본국민들도 승리했나? 패배한 청과 러시아의 정치인, 장군들도 패배했나? 

 미국 애틀랜타에서는 총격사건으로 한인 4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백인여성이 한인 여성에게 ‘중국으로 돌아가라!’며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인종차별’이라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버리는 이런 사건은 무수히 많다.    

 동양인에게 분노하는 백인들. 도대체 동양인이 그들에게 무슨 피해를 줬단 말인가? 그들이 정녕 분노해야 할 대상은 미국국가가 아닌가? 그들의 눈에는 잘못된 의료체계로 인해 코로나 19 앞에서 떼죽음을 당하는 자신들이 보이지 않는가? 

 이런 뉴스를 접할 때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런 사건이 왜 벌어지나? ‘국가, 민족’이라는 마법의 언어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는다. 많은 사람들이 ‘TV에서 하는 역사 강의’ 류의 공부를 하며 눈과 귀가 멀어져버린다. 

 그들의 가슴에는 국가, 민족의 뜨거운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 불꽃이 총탄이 되어 다른 국가, 민족을 향해 날아간다. 

 우리는 인종 차별의 총격사건이나 모욕발언에는 분노하면서도 그런 류의 강의를 즐겁게 시청하고 있다. 이 아이러니!   

 신동엽 시인은 슬픈 ‘조국(祖國)’을 노래한다.


 화창한
 가을, 코스모스 아스팔트가에 몰려나와
 눈먼 깃발 흔든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여기 이렇게 금강 연변
 무를 다듬고 있지 않은가.

 무더운 여름
 불쌍한 원주민에게 총쏘러 간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여기 이렇게
 쓸쓸한 간이역 신문을 들추며
 비통(悲痛) 삼키고 있지 않은가.

〔......〕

 그 멀고 어두운 겨울날
 이방인들이 대포 끌고 와
 강산의 이마 금그어 놓았을 때도
 그 벽(壁) 핑계삼아 딴 나라 차렸던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꽃 피는 남북평야에서
 주림 참으며 말없이
 밭을 갈고 있지 않은가.

                                                                                     - 신동엽,《조국(祖國)》부분


 인천상륙작전, 베트남전 파병, 남북분단...... .  

 언제나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강물이 굽이굽이 흘러갔다. 그때마다 국가는 ‘국민’이었나?  

 시인은 조용히 읊조린다. ‘우리는 역사의 그늘’ ‘소리없이 뜨개질하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나니.’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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