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 ‎
‎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최종 빙하기가 끝나고 13,0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세계의 한편에서는 문자와 철기를 가진 산업 사회가 발달했고, 다른 곳에서는 문맹 상태의 농경 사회가 발달했으며, 또 다른 지역에서는 석기를 가진 수렵 채집민 사회가 발전했다. 그러한 역사의 불균형은 현대 세계에까지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문자와 철기를 가진 사회들은 그런 편리하고 강한 힘을 발휘하는 이기를 갖지 못한 다른 사회들을 정복하거나 멸망시켰기 때문이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에서

 

뉴기니의 정치가 얄리가 재레드 교수에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하는 겁니까?”

‘총·균·쇠’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나는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라는 이 책을 읽으며 깊은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뉴기니의 정치가 얄리가 재래드 교수에게 한 질문에는 ‘백인들은 발전’했고, ‘흑인들은 발전하지 않았다’는 대 전제가 깔려 있다.

발전의 기준은 무엇인가? 물질의 힘으로 아름답게 살던 원주민들을 집단 살해하고 그 땅을 차지한 것이 ‘발전’이란 말인가!

제레드는 말한다. “인종과 민족 간의 삶이 불균형해진 것은 지리적, 환경적 요인 때문입니다. 따뜻하고 기름진 땅에서 발전을 시작한 사람들이 더 빠르게 총·균·쇠를 지닐 수 있었습니다. 총·균·쇠라는 유리한 카드를 들고 시작한 행운아들은 이 게임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었습니다.”

재레드는 문자와 철기, 총균쇠로 무장한 사회가 그렇지 않은 종족을 정복하고 멸망한 것을 ‘발전한 문명’으로 보는 것이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말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끝없는 대화다.”

우리는 재레드가 역사적 사실인양 기록한 이 책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의 ‘시각’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는 현재 어떤 마음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있는가?

지금 인류는 코로나 19로 전 지구적인 재앙을 겪고 있다. 이런 재앙을 불러온 문명은 무엇인가? 바로 서구문명이 아닌가?

그는 이 서구문명을 가장 발전한 문명으로 본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후 위기, 자원고갈, 불평등 문제 등을 인류에게 닥친 큰 문제로 본다.

서구문명 자체가 환골탈태하지 않고서 그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까? 앞으로 닥칠 그런 엄청난 재앙들이 서구문명이 온존하고서 해결될 수 있을까?

총균쇠를 갖고 들어간 문명인들이 학살한 원시사회는 얼마나 많은가? 왕이 없는 사랑 가득한 평등의 세상을 이뤘던 인디언을 대량 학살한 현대서구문명을 발전이라는 기준으로 볼 수 있는가?

그의 이름 앞에 석학이란 말이 붙는다. 끔찍하다. 더없이 평화롭게 살던 원시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문명인들을 환영해 주었다. 그들은 이방인을 환대하는 인간의 본성을 잘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명인들은 그들의 환대하는 얼굴에 총균쇠로 답했다. 이런 문명이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칭송된다면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약육강식의 현 신자유주의는 발전한 문명이기에 우리는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인간에게는 우주와 하나로 통하는 ‘영혼(참나)’이 있다. 이 영혼을 마음의 중심에 놓았던 원시인들은 삼라만상을 경건하게 대하며 지극히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다 농업혁명이 일어나 ‘소유’가 생기면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가 생겨났다. 이때부터 인간 사회에는 차츰 사랑과 평화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자아’가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영혼이 인간 전체의 마음(의식과 무의식)의 중심인데 반해, 자아는 의식의 중심이다. 의식이란 인간 정신의 일부에 불과하다. 인간의 진짜 마음, 무의식을 합리화하는 가짜의 마음이다.

재레드가 인류사를 바라보는 ‘과학’은 자아의 사고다. 근대과학이다. 현대과학(상대성원리와 양자물리학)은 인간의 전체 마음과 우주를 하나의 관계망으로 본다. 원시인들과 동서양 성현들의 마음이다.

자아는 자신밖에 모른다. 서구의 근대 문명은 자아를 중심에 놓는 사회다. 자아의 탐욕이 자본주의를 통해 끝없이 분출되었다. 양차 세계 대전, 홀로코스트, 기후 변화로 인한 온갖 재앙들, 자원문제, 빈부격차 등 인류사회 전체가 풍전등화다.

그동안 독일의 비판철학, 프랑스의 현대 사상가들은 온갖 재앙을 낳은 근대서구문명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다해왔다. 재레미의 자아 중심의 과학적 사고는 그 동안 축적한 인류의 지혜를 일거에 무화시킨다는 느낌이 든다.

그의 근대적 사고로 보는 인류사가 작금의 재앙들을 극복할 지혜를 줄까? 오히려 그의 사고가 온갖 재앙을 낳고 있는 신자유주의, 다국적 자본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새로운 문명사회를 꿈꿔야 한다. 현대문명사회에서 행복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아직도 지구상엔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소수 민족들의 원시사회가 있다. 그런 사회가 발전한 문명이 아닌가!

인간은 지극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데, 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현대문명을 발전한 문명으로 보아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가!

임제 선사는 말했다. “이 땅을 걷는 것이 바로 기적이다.” 기적을 이상하고 괴이한데서 찾는 현대문명. 본성대로 살자 않아 우리 모두 정신질환에 걸렸다.

백거이 시인은 한가롭게 서 있는 ‘학’을 노래한다.

 

누가 너를 일러
춤을 잘 춘다 하는가
한가롭게 서 있을 때만 못한 것을.


                                                                         - 백거이, 《학》 부분

 

현대인은 한가롭게 서 있는 학에게서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우아하게 춤을 추는 학이라야 학답게 보일 것이다.

그들은 무언가 새롭고 신기한 걸 좋아한다. 한가로움을 잃은 그들의 마음은 끝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선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